증권가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코스닥시장에서 주가조작 등으로 개미투자자들의 돈을 노리는 흡혈귀(작전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탓이다. 회계사가 직접 나서 기업의 건강진단서인 회계보고서를 ‘가짜’로 만들어 개미투자자들을 일순간에 알거지로 만드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런가하면 코스닥업체 대표와 컨설팅사 간부, 일명 ‘작전’ 전문가들이 한통속이 돼 짜고 치며 100억대 주가조작을 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코스닥 흡혈귀들이 날뛰면서 선의의 개미투자자들의 가슴은 멍들고 있다. 흡혈귀들의 기상천외한 수법을 추적했다.
회계사가 직접 기획서부터 실행까지 도맡아 처리
신종 ‘메뚜기’들 종횡무진하며 개미들 돈 꿀꺽
코스닥 상장사였던 신명비앤에프(현재 케이디세코)에 투자했던 개미들이 초토화됐다. 의사역할을 담당하던 회계사의 부정이 원인이었다.
신명비앤에프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은 지난해 2006년 말. 당시 이 회사는 대주주가 400억여 원을 횡령하거나 배임하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회사는 공인회계사 김모(37)씨를 소개받았다. 김씨는 업계에서 상장폐지를 당하지 않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 그는 이때부터 주도적으로 대규모 분식회계를 기획해 실행에 옮겼다.
믿었던 회계사가 어떻게…
김씨는 일단 재무제표를 다시 가짜로 만들어 화인에 재감사를 요구했다. 허위 재무제표 작성이 합법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변호사도 섭외했다. 채권자도 끌어들였고 뒤늦게 의견거절을 내 신명비앤에프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질 위기에 몰린 회계법인 화인도 한배에 실었다.
분식회계에 착수한 회계사들은 회수가능성이 없는 채권 220억여 원어치와 자회사 자본잠식으로 물어줘야 할 지급보증 90억여 원을 대손충당금이나 충당부채로 설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수법으로 당기순손실 314억원을 ‘제로(0)’로 만든 것.
그 다음 역할은 화인이 담당했다. 화인은 이를 근거로 2008년 5월 신명비앤에프에 대해 자기자본 11억원으로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한정의견’을 냈다. 자기자본 10억원 미만이면 상장폐지되는 기준을 교묘하게 빠져 나간 것이다. 이 같은 허위 보고서를 믿고 이 회사에 투자했던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상장폐지(2009년 4월)되면서 쪽박을 찼다.
지난 14일 구속된 현직목사 김모씨도 코스닥업체 주가를 조작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수법은 가장매매, 고가주문 매수, 허위주문 매수 등. 이 같은 시세 조종성 주문을 8600여 차례 사용하면서 개미들의 돈을 가로챘다.
김 목사는 신도 명의 21개 계좌를 이용해 코스닥업체 D금속의 주가를 주당 2만원에서 10만원까지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챙긴 부당이익은 22억원. 그는 이에 앞서 2007년 4월부터 2008년 1월 저축은행 8곳으로부터 58억원을 차입했다.
뿐만 아니다. 100억원대 주가조작을 하던 작전세력 때문에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깡통’을 찼다. 컨설팅업체 E사 부사장 이모(35)씨와 지디코프 전 대표 유모(42)씨, 주가조작 전문가 전모씨 등이 그 주역들이다.
이들의 수법은 고가매수와 허수매수 주문을 이용한 시세조종. 이씨 일당은 100억여 원의 차익을 얻기 위해 100억여 원의 자금과 4개 작전세력, 차명계좌 25개를 이용했다. 그리고 502회에 걸쳐 시세를 조종했다.
이들이 개입할 당시 지디코프 주가는 730원이었으나 개입 후 1000원까지 상승했다. 결국 지디코프는 지난해 6월 코스닥에서 상장 폐지돼 수많은 개미투자들을 울렸다.
이처럼 코스닥 흡혈귀로 통하는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 오로지 개미투자자들의 돈을 빼앗아가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거리로 내몰려도, 가정파탄이 나도, 목숨을 버려도 그들에게는 관심 밖이다.
코스닥 흡혈귀 중에는 재벌가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실례는 두산가 4세 박중원씨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아들인 박씨는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한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띄우고 개미들의 투자금을 챙겼다.
박씨가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은 지난 2007년 2월. 당시 그는 코스닥 상장사 뉴월코프의 주식 130만주를 30억원에 자기자본으로 인수한 것처럼 공시했다. 같은해 7월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 304만주를 31억원에 자기자본으로 취득한 것으로 공시했다. 이 같은 공시에 개미투자자들은 박씨를 믿고 투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허위공시였다. 결과도 참담했다. 뉴월코프를 샀던 개미투자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주식시장의 신뢰성도 떨어졌다.
주가 올리고 ‘튀어’
코스닥시장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신종 ‘메뚜기 흡혈귀’들이다. 메뚜기형 주가조작을 하는 이들은 테마주를 가장해 주가를 올린 뒤 ‘먹튀(먹고 튀는 수법)’다.
이 수법은 단기간에 주가를 갑절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예컨대 하루 평균 거래량 100만주 정도인 종목을 하루 50만주 사들이면서 주가를 올린다. 매도 타이밍은 개미투자자들이 추격매수를 시작할 때다. 이때 순식간에 매수했던 물량을 쏟아내고 유유히 사라지면 개미투자자들만 피해를 입는다.
얼마 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계좌와 자금을 모집해 수십 개 종목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약속한 수익을 배분하며 초기 가담자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적극 가담·조력하게 했지만 이들은 고스란히 작전물량을 넘겨받았고 그것은 큰 손실로 이어졌다.
허위공사와 전환사채(CB) 편법 발행과 허위 공시 등 다양한 수법도 개미투자자들을 울리는 단골 메뉴다. 허위공사는 테마주를 이용한다. 상장된 회사를 인수한 뒤 개발 사업이 계속 진행되는 것처럼 허위로 공시하고 주가상승을 유도한 뒤 시세차익을 챙겨 달아난다.
CB 편법 발행은 재무구조가 극도로 부실했던 회사가 주로 애용한다. 감자(자본감소)를 하더라도 전환비율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사채업자에게 소액의 전환사채(CB)를 발행시켜 사채업자들의 배를 불려준다. 하지만 그 돈은 개미투자자들의 것.
금감원 한 관계자는 “개미투자자들은 투자에 나설 때 상장사 경영?재무상태 공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신중해야 임해야 한다”면서 “그럴싸한 공시도 수시로 뜨고 귓속말로 전해지는 호재도 많은 종목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증권전문가는 “회계보고서를 엉터리로 작성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라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