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안중근 동상 ‘찬밥신세’현장

2009.12.22 09:15:00 호수 0호

부천시청·백화점 끼고 있어도 찾는 발길 ‘뚝’
낮엔 산책로 밤엔 불량청소년 놀이터로 전락



지난 10월 부천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안중근 동상’이 찬밥신세로 전락할 위기다. 중국에서 돌아와 고국의 품을 찾은 뒤에도 마땅한 안식처를 찾지 못해 처량한 신세를 맞았던 동상이기에 시민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국민적 영웅의 동상이 자리 잡기엔 협소한 공간인데다 광화문과 같은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닌 곳에 세워졌단 사실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게다가 밤이 되면 청소년들의 놀이터로 전락해 불꽃놀이를 벌이는 등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다. 그 현장을 찾았다.

지난 10월26일 부천에 입성한 안중근 동상은 부천시청 옆 중동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명칭도 ‘안중근 공원’으로 바뀌었다. 당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제막식을 가졌으며 한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헌화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안중근 동상은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헌화를 하는 손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외면받는 게 안타까워”

지난 15일 오후 4시, 기자가 찾은 안중근 공원은 산책에 나선 사람들로 붐볐다. 공원 옆은 대형 마트와 쇼핑몰, 백화점이 줄지어 있어 쇼핑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하지만 안중근 동상을 의미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동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적어보였다.


운동복 차림으로 공원 주변을 산책하고 있던 조모(36·여·주부)씨는 “운동 삼아 매일 이곳에 오지만 일부러 안중근 동상을 찾아오는 사람은 갈수록 뜸해지는 것 같다”며 “초기엔 꽃을 들고 와 절을 올리는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요즘엔 보기 힘든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조씨는 이어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공적을 알리는 공간으로 조성되는 것 같은데 어록을 새긴 비문이나 기념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며 “하얼빈 동산에 설치된 일부 기념물도 이전될 모양인데 그마저도 외면 받지나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공원을 거닐고 있는 송모(63)씨는 안중근 동상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얼빈에서 먼 길을 돌아 우리나라에 왔는데 공공전시 반대에 부딪치고 장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뒤 겨우 보금자리를 잡은 것도 안타까운데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는 게 송씨의 말이다.

송씨는 “가까이에 시청과 백화점이 있어 나름대로 번화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광화문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도 아니고 경건한 장소도 아닌 것 같다”며 “서울시에 외면받던 영웅의 동상을 모신 부천시는 칭찬할 만하지만 안타까움은 말로 할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옆에 있던 임모(65)씨는 “함평 사람들에게 부끄럽다. 중국 하얼빈 시내에 세워졌다가 철거돼 국회 헌정기념관 앞 잔디광장에 임시 전시 중이던 안중근 동상을 유치하려다가 부천시로 오게 되자 안중근 동상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는 외면하고 있으니 통곡할 일이 아닌가”라고 개탄했다.

기자는 이곳 시민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경건한 장소가 되어야 할 안중근 공원이 밤이면 청소년들의 탈선현장으로 바뀐다는 것. 청소년들이 불꽃놀이를 하는가 하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판을 벌이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이날 저녁 8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안중근 공원을 다시 찾았다. 어둠이 깔린 공원에는 한눈에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쪽에선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벌이는 10대 커플도 눈에 띄었다. 그때 갑자기 ‘펑’하는 굉음이 들렸다. 시민들의 말대로 공원 한가운데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불꽃놀이를 즐기는 여학생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이곳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묻자 “예전부터 이 공원에는 언니나 오빠들이 모여 놀았다”며 “밤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아서 담배 피우거나 술 마시기 좋다”고 말했다. 이곳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진 걸 아느냐고 묻자 “오며가며 보기는 했지만 옛날과 다를 건 없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사실 이 공원은 불량청소년들이 자주 모여 놀아 밤에는 혼자 지나가기도 겁나는 장소였다”며 “동상이 세워진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제막식 때만 해도 시민들의 손에 하나같이 태극기가 들려 있는 등 안중근 의사의 추모 열기가 기득했다”면서 “유언 퍼포먼스와 손도장 찍기 등을 할 때는 애국심마저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어 “앞으로 시민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방법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반영시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애국혼이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오롯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못난 후손 안됐으면…”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안중근 동상이 외면 받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사실 안중근 의사는 현재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넘어서 동양평화와 협력의 주창자로 재평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만 100편이 넘는 관련 논문이 쌓였고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은 올해 각종 기념행사와 언론 특집 등을 통해 안중근은 집중적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것. 이 같은 이유로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이고 선구자적인 면모가 강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감동과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며 “안중근에 대한 이해조차 다른 나라 학자들에 의존하는 못난 후손이 되지 않으려면 현재 세워져 있는 안중근 공원을 중심으로 안중근 연구의 거점 마련과 세계사나 동북아의 관점에서 안중근을 조명하는 보다 넓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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