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내부 권력다툼이 불씨 키웠다

2009.12.08 09:33:07 호수 0호

<단독>‘TK패밀리 안원구’ 1년 뒤 민주당과 손잡은 사연



TK 국세청 상륙작전서 희비 엇갈린 한상률·안원구
한상률, 치밀하게 계획된 골프로 옷 벗고 미국으로
실세와 연 닿았던 안원구 끈 떨어지자 ‘너 죽고 나 죽자’

여의도가 국세청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민주당과 손잡은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로 때문이다. ‘그림로비’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연임 로비, 도곡동 땅 실소유 문제, ‘박연차 게이트’ 등 여권을 뒤흔들 폭풍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상득, 정두언 의원과 주호영 특임장관 등 정권 실세들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며 긴장감을 더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지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사건의 열쇠인 녹취록과 ‘안원구 문건’이 숨긴 사건의 본질이 국세청 내부의 권력다툼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권 심장부에 폭탄을 터뜨렸던 민주당이 ‘다음’ 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녹취록은 일부가 공개된 후 감감무소식이다. 안 국장이 직접 작성한 ‘안원구 문건’은 ‘한상률 게이트’로 명명된 사건을 맡고 있는 핵심 인사만이 접근 가능하다. 폭로전으로 치달을 것 같았던 ‘한상률 게이트’ 이면에 조심스러운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숨 고르는 민주당
‘안원구 문건’ 밀착해부

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는 녹취록과 안원구 문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껏 제기한 의혹이 덧없이 묻히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도곡동땅 실소유 문제에 대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이미 다 끝난 사건”이라며 “검찰이 수사도 하고 특검까지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소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재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혀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안원구 문건’을 기초로 의혹을 제기할 뿐 아니라 증거자료까지 내미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의도와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공중에 뜨기 시작한 것은 사건의 본질이 ‘내부 권력다툼’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 논제가 이미 ‘헛방’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곁가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주장은 현 정권 출범 후 국세청 내부의 권력경쟁과 닿아있다.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안 국장은 국세청 대구·경북(TK) 대표주자로 꼽히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대구 영신고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대구지방국세청에서 부가가치세과장, 법인세과장, 총무과장을 지냈다. 본격적으로 고속승진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김중권 비서실장의 추천으로 청와대 파견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6년간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다.

2005년 4월 국세청 총무과장으로 복귀한 안 국장은 2006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2007년에는 국제조세관리관과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대구지방국세청장은 국세청 내에서도 요직으로 TK 실세들과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던 안 국장이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같은 경북대 선배인 전군표 전 청장이 그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는 그렇지 못했다. 다만 현 정권 TK 실세들과 친분을 통해 한 전 청장의 유임에 힘을 쓰며 ‘밀월관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친하게 지내온 이상득 의원 아들인 이지형 골드만삭스 대표이사를 통해 2008년 1월 국회 부의장실, 같은 해 3월에는 포항 지역 사무실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 국장은 “한상률 청장이 괜찮은 사람이다, 참여정부 때 총무비서관이었던 정상문과 연관된 것으로 일부 알려졌는데 그것은 오해”라는 취지로 한 전 청장을 변론함으로써 현 정부에서 유임해도 좋다는 취지의 로비를 했다.

충청도 출신인 한 전 청장의 취약한 현 정권 인맥을 안 국장이 채웠다는 것이다. 결국 참여정부 임기 말 국세청장이 된 한 전 청장은 현 정권까지 유임하게 됐다.

안 국장과 친분이 있던 현 정권 인사로는 이지형 대표 외에도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주호영 특임장관이 있다. 당시 이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정권 초기 인수위와 정부 인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 박 차장과는 직접 교류 관계를 맺은 적은 없지만 친구의 친구인 관계로 서로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안 국장이 한 전 청장의 시야에서 멀어진 것은 지난해 4월이다. 안 국장은 국세청 차장 물망에 오르며 ‘위’를 바라봤지만 한 전 청장은 자신의 첫 인사에서 그를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좌천시켰다. 급기야 2009년 1월에는 대기발령을 받았다.


국세청의 ‘주류’에서 그가 내몰리기 시작한 데는 한 전 청장의 ‘그림로비’가 있었다. 안 국장이 이를 언론에 전한 인물로 찍힌 것.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다는 이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홀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안 국장에 대한 질시의 눈초리도 한몫했다.

국세청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정권 교체 후 국세청에 ‘물갈이’가 진행됐다. 10년을 거치며 ‘호남시대’를 이어갔던 것을 영남 중심으로 재단장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국세청 TK 대표주자로 꼽히던 안 국장이 나름의 역할을 하려 했지만 결국 내쳐졌다”고 해 내부경쟁에서 밀렸음을 시사했다.

국세청 내부 물갈이에
알력관계 고스란히 노출

실제 국세청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1999년 5월 전남 영암 출신인 안정남 국세청장이 호남 출신 첫 국세청장으로 임명된 후 전남 보성 출신인 손영래 국세청장, 전남 함평 출신인 이용섭 국세청장까지 3대에 걸쳐 내리 국세청장 ‘호남시대’를 이어왔다.

국세청 요직에도 호남 출신들이 영역을 넓혔다. 지난 2001년 권철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1999년 9월 국세청 조직개편 이후 국세청 주요 요직의 전·현직 역임자 39명 중 호남 출신이 21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DJ정권 18개 국세청 요직 호남편중 실태’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 요직 역임자 39명 중 호남 출신이 21명(53.8%)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산경남 8명(20.5%), 대구경북 6명(15.4%), 서울 경기 2명(5.1%) 등으로 나타났다.

권 대변인은 또 같은 기간 국세청장·국세차장·본청조사국장·서울청장·중부청장 등 한나라당이 꼽은 5대 핵심요직을 거쳐 간 전·현직 인사 10명 중 8명이 호남 출신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국세청 4급 이상 간부 256명의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 ▲서울·경기·인천 32명 ▲대전, 충남·북 46명 ▲대구·경북 47명 ▲부산·경남 52명 ▲광주, 전남·북 68명 ▲강원 9명 ▲기타(제주 등) 2명이었다. 단순하게 수치만으로 따진다면 영남 99명, 호남 68명으로 영·호남 역전 현상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계획 하에 진행된
성탄절 골프장 회동

국세청 고위공무원 30명의 출신 지역은 ▲서울·경기·인천 3명 ▲대전, 충남·북 4명 ▲대구·경북 8명 ▲부산·경남 7명 ▲광주, 전남·북 6명 ▲강원 2명이었다. 15명으로 전체 고위공무원 중 절반 가까이가 영남 출신 인사들이었다. 현 정권 출범 후 국세청에 ‘물갈이’가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지난 10월6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에서 열린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고위공무원단 총 31명 중 27명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영남 지역 출신이 17명으로 63%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남과 충청 출신은 각 3명으로 각각 11%를 차지했다. 영남 출신 17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이 11명으로 나타났다.

강성종 의원은 “본청 국장급도 50%가 영남 인사로 채워졌고 요직이라 할 수 있는 서울청장, 서울청 조사 1~4국장, 중부청 조사 1, 2국장 자리를 모두 영남 출신이 차지했다”면서 “국세청 고위직을 보면 마치 영남 향우회를 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안팎에는 현 정권 들어 진행된 물갈이가 한 전 청장의 ‘예정된 낙마’로 첫 단추를 뀄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투명세정’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 전 청장은 ‘그림’과 ‘골프’에 무너졌다. 이 중 한 전 청장에게 치명타가 됐던 골프파동이 계획 하에 진행됐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12월25일 경주의 한 골프장에서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이인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김은호 중소기업이업종교류회 대구경북연합회장과 골프회동을 가졌다.

한 청장은 대구의 한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전·현직 대구지역 포항향우회장, 지역병원장, 지역의 한 세무서장 등 5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 등과 함께했다. 국세청장이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 기업인들과 부적절한 모임을 가진 것. 이 사건이 권력형 로비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한 전 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전 청장과 현 정권 인사들과의 골프자리는 허병익 당시 부산국세청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허 청장은 국세청 차장으로 고속 승진했으며 지난 7월 국세청 청장 직무대행으로 퇴임했다.

안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허 전 청장 직무대행은 그림로비의혹 발설자로 지목된 안 국장을 해외에 파견키로 하고 대기발령을 낸 인물이기도 하다.

국세청 내부의 권력다툼에는 또 다른 이름도 자주 거론된다. 이현동 국세청 차장이다.

안 국장은 지난 추석 주호영 특임장관에게 보낸 구명편지에서 “2년 가까이 한상률씨에 이어 허병익씨, 이현동씨까지 3대를 이어가며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방법으로 나를 쫓아내려 한다”면서 “한 전 청장이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 정부 사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안 국장이 현 정부 출범 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TK 세력의 경쟁자였던 이 차장은 1년 만에 두 단계 승진을 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 차장이 ‘뜨기’ 시작한 것은 인수위에 파견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한몫하면서부터다. 인수위 파견은 안 국장이 희망했던 것이었으나 한 전 청장의 거부로 좌절됐다.

이 차장은 인수위 해체 후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4개월가량 일했다. 국세청으로 복귀하면서 핵심요직인 조사국장에 발탁됐다. 6개월 뒤에는 서울국세청장에 임명됐고 국세청 차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 같은 정황과 국세청 내부의 목소리로 인해 일각에서는 현 정권 출범 후 국세청 실권은 한상률, 허병익, 이현동의 삼각구도 아래 있었고 한 전 청장의 낙마로 이들과 안 국장 사이의 대결구도에 금이 가면서 ‘막장 폭로’가 움트기 시작한 것이라는 데 상당부분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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