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민들 사이에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검찰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벌금 대신 사회봉사행을 택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전국 검찰청은 서민들로 인해 홍역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같은 기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난달 26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사회봉사특례법에 기인한다. 사회봉사특례법은 벌금을 낼 경제적 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상대로 벌금 징수 대신 사회봉사를 허용하는 제도. 서민들은 이 혜택을 받기 위해 갖가지 사연을 안고 검찰청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현장을 찾았다.
추석 연휴가 갓 끝난 지난 10월5일 오후 서울 목동의 남부지검. 허름한 점퍼를 걸쳐 입은 김모(47·무직)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후 벌금 납부대신 사회봉사행을 택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기자가 그에게 이유를 묻자 김씨는 “출퇴근 방식으로 집과 사회봉사 대상지를 오가며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 망설임 없이 사회봉사를 신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걸음 가벼운 ‘서민’
분주한 ‘검찰청’
서울 신월동에서 왔다는 이모(59·무직)씨는 사회봉사를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160시간을 허가받았다. 직장을 잃어 낙담하던 중 술을 마시다가 옆자리 손님과 싸운 사건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았지만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사회봉사를 신청한 케이스.
이씨는 기자에게 “모두 80시간의 사회봉사를 이행하던 중 체납금을 받게 돼 그때까지 이행한 사회봉사 80시간에 해당하는 금액인 50만원을 제외한 잔액 50만원을 검찰청에 납입했다”며 “남은 사회봉사도 면제받고 벌금도 모두 내게 돼 안심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날 오후 내내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특혜법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이 법이 시행 초기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
지방검찰청과 법원들도 이에 따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청자들의 봉사 가능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보호관찰소 등도 덩달아 바빠지기는 마찬가지다.
가난한 서민 벌금 미납 노역 대신 사회봉사로 대체 러시
농촌 일손돕기·연탄배달·나무심기·등산로 정비 다양
검찰청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시행 초기지만 매일 50~60건의 전화 문의가 꾸준히 이어질 정도로 호응이 매우 높다”며 “시행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 101명의 서민이 사회봉사를 선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간 300만원 이하 벌금 부과자는 127만여 명,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인원은 3만2000여 명, 300만원 이하 벌금미납에 따른 지명수배자는 23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며 “현재 벌금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된 2437명 중 3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은 생계곤란자는 855명으로 이들은 모두 사회봉사 신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 서울 마포 서부지검을 찾았다. 호명을 기다리고 있는 임모(60·무직)씨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서울 홍은동에 산다고 소개한 그는 최근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관할 검찰청인 서부지검을 찾아 사회봉사를 신청했다고.
임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당장 목돈을 구할 능력이 없는데다 환경정화운동 등 비교적 손쉬운 사회봉사만 하면 벌금 납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노역장 유치와 달리 주변 시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50대 남자가 얘기에 끼어들었다. 위모(42·무직)씨는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벌금을 내지 못해 도피 중 이곳을 찾았다고.
위씨는 “이혼 후 혼자 2명의 딸을 키우고 있는데 도저히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검찰청으로부터 지명수배 중이었다”면서 “검찰청에 자진 출석해 사회봉사를 신청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더 이상 도망을 다니지 않고 자녀를 돌보며 미납 벌금을 사회봉사로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자는 허름한 양복을 걸쳐 입은 한 중년의 남자에게 ‘사회봉사특례법’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그는 “사실 그동안 벌금형 판결을 받았지만 돈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교도소에서 노동으로 대신하는 ‘노역장 유치’를 감수해야 했다”면서 “때문에 경제적 능력에 의해 형벌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고 벌금 미납자가 노역장 유치 과정에서 범죄를 학습하거나 가족관계가 단절되는 등의 폐해가 많았다. 하지만 서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이 같은 법이 제정돼 희망이 보이며 빠른 시일 안에 정착됐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사회봉사를 해야 할까. 검찰에 따르면 사회봉사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농번기 일손돕기, 재해복구지원, 연탄 배달, 푸드뱅크사업, 생태복원, 나무 심기, 등산로 정비, 문화재 보수 등에 걸쳐 이뤄진다. 예컨대 ▲공공서비스 분야 ▲서민생활 지원 분야 ▲환경 친화적 집행 분야 등이 그것이다. 물론 보호관찰관의 직접 집행이란 원칙이 따른다.
지명수배 풀고
사회봉사도 하고
일례로 공공서비스 분야를 선택하면 공공 체육시설 정비, 문화재 보수, 지역사회 환경 개선작업 등에 참여하게 된다. 환경 친화적 집행 분야를 택하면 생태복원ㆍ나무 심기ㆍ등산로 정비 등이나 자연보호 활동 또는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을 하게 된다.
서민생활 지원 분야를 택하면 농번기 일손 돕기, 폭우ㆍ폭설 등 재해복구지원, 연탄 배달 등 계절적 특수성 및 환경변화에 따른 민생지원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장애인ㆍ독거노인ㆍ결손가정ㆍ소년소녀가장 등 수혜자 특성에 맞는 푸드뱅크 사업이나 장애인재활작업장 지원 등 수혜자별 맞춤형 사회봉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한편 법무부는 매년 9만명 정도의 벌금미납자가 사회봉사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소요정원에 대해 협의 중에 있다. 범죄예방 자원봉사위원 2500여 명으로 지역별 전담팀을 구성해 현장 감독에 활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