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공사 잇단 자살 왜?

2013.10.29 10:43:42 호수 0호

공포에 질려 '죽음의 질주'

[일요시사=취재2팀] 장례 4일째. 고인의 빈소는 유가족과 일부 동료들이 지키고 있었다. 지난 18일 서울도시철도공사(5·6·7·8호선) 소속 정재규 기관사는 경기도 양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2명의 동료를 먼저 떠나보낸 고인은 자기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불어 닥친 죽음의 행렬. 안타까운 사건들의 이면엔 공통된 원인이 있었다.






"죽음으로 내몰린 그 분 입장에서 무엇이 (고인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성과급? 봉사활동? 조직문화? 제 생각으로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일이 너무 힘든데, 월급은 너무 적습니다. 힘들어요. 정말."

정재규 기관사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김태훈 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 승무본부장은 자신에게 도착한 기관사들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독한 기관사

1년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벌써 3번째 장례를 치르는 김 본부장은 "언제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8일 새벽 경기도 양주 한 자택에서 정 기관사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족에 따르면 정 기관사는 4년 전 첫 우울증을 진단받은 뒤 최근까지 다량의 약물을 복용해왔다.


앞서 정 기관사는 지난달 차도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아내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1인승무로 인한 압박감과 4대 차종(도시바, 미쓰비시, SR, GEC)의 각기 다른 운전법, 쏟아지는 민원과 지하 터널의 공포가 정 기관사를 죄어오고 있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문제점은 이미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현재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1·2·3·4호선(2호선 신정지선 제외)의 전 구간은 2인승무로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5·6·7·8호선은 전 구간이 1인 승무로 고정돼있다.

일찍이 2인 승무체계를 도입해 운행업무와 안전업무를 분리한 서울메트로와 달리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은 지하철 운전, 출입문 개폐, 안내 방송, 객실 민원 해결 등을 홀로 떠맡고 있다.

기관사 세번째 자살…열악한 근무 도마
1인승무 압박 등 극심한 스트레스 호소

정 기관사가 차량을 운전했던 지하철 7호선의 경우 장암역부터 부평구청까지 모두 50개의 역이 있으며, 전체 운행 소요시간은 106분이다. 기관사 입장에선 2분마다 한 번씩 각 역에서 승객이 모두 탔는지를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문을 닫고 출발하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거나 민원이 접수됐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관사에게 전가된다. 지하철 5·6호선의 경우 하루 4시간42분의 운행시간 동안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단 1분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노조 관계자는 "우리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내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회사 내부에 만연한 강압적인 조직 문화다.

동료 기관사의 증언에 따르면 정 기관사는 과거 코레일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께 서울도시철도공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입사 1년 후 정 기관사는 공황장애란 병을 얻었다. 노조 측은 정 기관사의 발병과 직무 특성이 서로 연관돼 있다는 입장.

그러나 사측은 "지난 4월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임시건강검진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했고, 당시 어떠한 이상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음으로 직무 연관성은 희박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즉 고인이 생전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면 왜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동료 기관사는 다른 증언을 내놨다. 자신이 정 기관사였어도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 거란 설명. 만약 공황장애와 같은 병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인사고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익명의 노조 관계자는 "운행을 담당하고 있는 인력이 부족해 기관사들이 휴가는커녕 조퇴마저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이라며 "현장직이 병가를 내거나 휴식을 취하면 관리직 혹은 내근직이 대체 업무조로 투입되는데 사실상 이들이 사업 다이아(업무 편성표)를 짜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가지 않기 위해 기관사들의 조퇴를 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도 거들었다. 그는 "외부 민원을 기관사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시키면 하라'는 강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책임 한 번 지는 일이 없다"며 "고인이 운행에 고충을 호소한 SR 차종의 경우 도입 단계부터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났음에도 결과적으론 (관리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명을 달리한 고 황선웅 기관사의 경우는 생전 가족들을 위한 휴가를 냈는데도 사측의 요구에 의해 몇 달 전부터 약속한 제주도 여행을 취소하는 일을 겪었다.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상명하복 문화가 서울도시철도공사를 병들게 한 것이다.

"책임없다 발뺌만"

지난 22일 노조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정 기관사의 미망인 A씨는 "오늘은 남편과 나의 결혼기념일"이라며 "불규칙한 스케줄과 과도한 업무에도 본인 책임을 다하려했던 남편의 죽음 앞에서 회사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A씨 등이 요구하고 있는 보상 문제는 쉽사리 결론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3월 공황장애로 목숨을 끊은 이재민 기관사는 산업재해가 인정되지 않아 지금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단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은 황 기관사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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