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에 백색가루 손 안에, 쾌락 못 잊어 ‘허우적’

2009.04.28 15:37:11 호수 0호

환각에 빠진 사람들<실태추적>

대한민국이 백색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한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은 고단한 삶을 잊기 위해, 순간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서슴없이 마약을 선택하고 있다. 때문에 ‘마약청정국’이란 국가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처지다. 예전에는 일부 범죄자들이나 접했던 마약을 평범한 이들까지도 접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마약유통경로가 다양해졌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마약범죄 역시 증가한 것 등이 그것이다. 환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모(40)씨는 자신의 집 안에서 버젓이 필로폰을 투약하다가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에게 현장에서 잡혔다. 이날 검찰이 김씨의 집을 급습한 것은 마약복용혐의를 받고 있던 그의 남편을 잡기 위해서였다. 결국 김씨는 남편 때문에 억울(?)하게 덜미를 잡힌 것. 이들 부부는 며칠 뒤 나란히 구속됐다.
2000년 탈북해 국내에서 건설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는 최모(45)씨도 마약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케이스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것은 지난해 6월 중국에서였다.

주부, 일용직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도 중독자?

국내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최씨는 돈벌이를 찾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동포 무역업자를 만났다. 그는 최씨에게 “마음이 답답할 때 도움이 된다”며 필로폰을 건넸고 쾌락의 세계를 맞본 최씨는 그 후에도 4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돼 구속 기소됐다.
이처럼 최근 마약을 접하는 사람들은 주부나 노동자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힘든 현실을 잠깐이라도 잊기 위해서, 한번 느껴본 쾌락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백색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쇼핑몰이나 국제우편 등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유통경로가 다양해졌다는 것도 마약인구를 늘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클릭 몇 번이면 안방에 앉아서도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이 ‘나도 한번 해볼까’란 유혹을 만들어낸다는 것.

경기침체 등 힘든 현실서 고통 받는 이들 마약유혹에 ‘덥썩’
인터넷쇼핑몰, 국제우편 등 마약 공수 경로 ‘기상천외’


또 한 가지 마약사범 증가에 영향을 준 것은 외국인 마약범죄자가 늘어난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자국에서 맛봤던 마약의 맛을 한국인에게 전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약 범죄로 적발된 외국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범죄로 덜미를 잡힌 외국인은 928명으로 2007년 298명인 것과 비교하면 211%나 증가했다.
이들의 직업은 근로자에서 학생, 영어학원 강사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원어민강사들이 환각에 빠진 채 아이들을 가르친 사건까지 벌어져 충격을 줬다.

경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9명을 적발, 캐나다인 영어강사 P(34)씨와 H(29)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유학생 출신 내국인 영어강사 한모(30)씨와 태국인 근로자 등 3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번에 적발된 영어강사 3명은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와 용인지역의 학원 영어강사들로 짧게는 3개월에서 3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강남과 홍대인근, 이태원 일대 등의 테크노바에서 엑스터시를 복용하고 다음날까지 환각파티를 즐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엑스터시의 약효가 하루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새벽에 약을 복용하고 환각에서 깨기도 전 수업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초등학생 등 어린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아찔한 사건이었다.
한국으로 온 외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유학생들의 마약범죄도 잇달아 벌어졌다. 부모의 품을 떠나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유학생들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들이 귀국을 한 후에도 마약을 즐기고 한국 학생들에게까지 전수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 같은 행각을 벌인 유학생이 잡혔다.

해외에서 마약 맛본 이들
국내에 들어와 전파하기도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자신의 집과 놀이터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워온 혐의(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로 포항 H대 재학생 N(22)씨, Y(25)씨와 서울 H대 재학생 S(25) 씨 등 대학생 3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알고 지내는 이에게 대마초를 공급받아 서울과 포항 등지의 집과 공터 등에서 각각 1~4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워왔다. 이 가운데 구속된 Y씨는 해외에서 대마씨를 들여와 자신의 집에서 직접 대마를 재배해 피워 온 혐의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 가운데 4명이 미국 등 해외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국내 대학에 입학한 조기유학생 출신으로, 마약복용이 범죄행위라는 개념조차 없이 마약을 즐기고 국내 학생들에게까지 전파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집 안에서 버젓이 마약의 재료가 되는 식물을 길러 판매한 간 큰 범죄자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피스텔에서 대마를 재배한 일당이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대마초를 길러 판매·흡연한 김모(25)씨와 영어강사 임모(26)씨 등 3명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판매를 알선하고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구입해 흡연한 대학생 장모(23)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윤모(21)씨 등 군인 4명을 헌병대로 이첩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해 9월 중순 인터넷으로 주문한 영국산 대마씨 35개를 국제우편으로 밀반입한 뒤 경기 오산시의 한 상가건물 2층 사무실 50여㎡(15평) 공간에 대마재배시설을 마련했다. 이후 7개월 동안 조명·환풍 시설과 디지털 온도계까지 갖추고 전문적으로 대마를 재배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재배한 대마초는 실제로 팔려나갔다. 이들 일당은 지난해 11~12월 대마초 300g을 유학생과 대학생 등 22명에게 팔아넘겼다. g당 가격은 10만원 정도로 3000만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인·조기유학생 등 해외에서 마약 맛본 이들이 전파
아파트 안에서 대마 기르는 등 대범해진 마약사범 기승

이들 일당은 경찰조사에서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대마재배법을 보고 따라했다”고 말해 마약재배의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상가 사무실에 남아 있는 1억7000만원 상당의 대마 32그루와 대마초 1㎏, 대마재배 장비를 압수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마약성분이 든 약품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약에 중독되어 가는 경우도 있다. 무심코 살 빼는 약을 먹었다가 마약성분에 길들여지는 경우다.

일부 향정신성 다이어트 약 가운데 마약 성분인 펜메트라진이 함유된 약이 적지 않은데 특별한 주의 없이 약을 복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이들 약을 불법으로 판매한 주부 등이 적발됐다.
경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없는 다이어트 약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매매한 강모씨 등 19명을 적발해 조사 중이다.
강씨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을 통해 마약 성분인 펜메트라진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 ‘푸링정’ 등을 30정에 현금 7만원을 받고 판매하거나 사들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여러 곳의 병·의원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빌려 처방전을 받아 1500여 정을 약국에서 사들여 불법으로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 청정국은 옛말
‘기호식품’ 될 지경

푸링정 등과 같은 마약성분의 다이어트 제제는 복용 시 혈압이 상승하고 불안감과 현기증, 불면증, 과민증 등의 부작용 때문에 의사 처방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으며 처방전도 단기간 분량으로 제한하고 있다.
적발된 이들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회사원 등 20대 여성이나 주부들이 대부분으로 주로 관련 카페 게시판 등을 통해 이 약들을 팔고 산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각종 마약은 우리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누구나 쉽게 구하고 접할 수 있는 기호식품 정도로 진화할 위기에 처했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경기불황으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것은 마약인구의 증가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며 “마약을 구하는 루트가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만큼 철저히 유통경로를 봉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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