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충무공 고택터 경매 막전막후

2009.03.31 09:19:55 호수 0호

‘문중의 분(憤) vs 종부의 한(恨)’


이순신 장군 지하서 통곡할 후손들의 ‘진흙탕 땅 전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고택 터와 인근 임야 등이 법원 경매로 나온 탓이다. 경매가 진행 중인 이 부지는 충무공이 소년시절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를 연마하던 역사적인 현장이란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비보를 접한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충무공 후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다. 충무공의 얼이 깃든 부지가 어떻게 경매에 부쳐진 것일까. 어이없는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충무공 문중의 재산 싸움부터 되짚어봤다.

‘역사적’ 현충사 집터·임야 등 법원 경매물 전락
15대 종손 며느리 사유지…사업실패로 담보 설정
종회-종부 수년간 ‘땅 소송’ 얼룩
공방 거듭 며느리 소유 최종 결론

최근 법원 경매로 나온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의 사유토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택 부지 3필지 7만4711㎡와 문화재 보호구역 내 임야와 농지 4필지 등 모두 7건 9만8000여㎡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3월30일 1차 경매를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만약 유찰될 경우 5월4일 2차, 6월8일 3차, 7월13일 4차 경매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법원 측은 “사유재산인 충무공 관련 문화재 시설은 누구나 매입이 가능하지만 용지변경이 어려워 낙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깃든 역사적인 장소가 경매물로 전락할 수 있냐”는 탄성이 전국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가히 지난해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로 전소될 때와 견줄 만한 참담한 상황이다.

채권자 청구액 7억원
감정가 19억6000만원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선 현충사가 건립된 지 40년이 넘도록 국유화하지 않은 채 ‘나몰라라’한 국가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충무공의 고택 부지 등을 경매에 넘긴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에게 집중적인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조상님 얼굴에 먹칠했다’는 까닭이다.

덕수이씨 충무공파종회는 “충무공의 후손으로서 국난극복을 위해 몸을 바치셨던 선조와 국민들께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경매로 나온 부지 등을 종회에서 매입을 적극 검토 중이지만 예산이 부족해 녹록치 않을 것 같다”는 게 종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법원 경매에 부쳐진 매물은 종회 소유가 아니다. 바로 충무공 15대 후손 종부인 최모씨의 사유지다. 남편 이모씨가 사망한 뒤 자식이 없어 재산을 상속받은 최씨가 이 부지 등을 담보로 채무를 얻어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해 지난해 11월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충무공의 ‘영지’를 정부에서 관리해도 모자랄 판에 종회도 아닌 종부가 ‘땅 문서’를 쥔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 발단은 최씨의 남편이자 충무공의 15대 종손인 이씨가 사망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재산은 당초 종회 소유였으나 1972년 14대 종손 개인 명의로 바뀐 뒤 1993년 사망하면서 이씨가 물려받았다가 2002년 2월 자식 없이 세상을 뜨자 부인인 최씨의 손에 들어갔다. 이씨는 평소 지병을 앓은 탓에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후손 없이 숨지자 종회에선 “적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그해 3월 이씨의 재당질(6촌 형제의 아들) A씨를 16대 종손으로 결정했지만 최씨가 반발하면서 지루한 법적 공방이 예고됐다.

종회 측은 “갑자기 사망한 이씨의 장례식에서 양자 문제가 처음 논의됐고 최씨가 A씨를 입양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종회의 뜻을 받들어 A씨의 생부는 충무공의 정신과 위업을 계승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양자 입적을 승낙했고, 물론 양모인 최씨도 별다른 이견 없이 입양신고서를 작성하는 등 동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종손 자식없이 사망
부인 집안재산 상속


다시 말해 입양신고 등 양자 입적에 대한 모든 절차가 최씨의 동의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
그러나 최씨의 주장은 다르다. 최씨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회의 강요로 반강제적으로 양자를 입적시켰다”며 “이는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충무공 후손 대대로 내려온 땅의 소유권을 놓고 종부와 문중간 갈등이 촉발됐고 급기야 치열한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문제의 땅은 법원 경매에 넘어간 대지 등이 포함된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주변에 있는 16필지 4만1226㎡(약 1만2500평). 논과 밭, 임야 등으로 돼 있는 이 땅은 당시 시가 20억원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씨는 양자 A씨에게 재산상속권 포기를 요구했지만 종회에서 이를 무시하자 곧바로 입양무효소송을 제기해 파양 판결을 받아냈다. 남편에게 상속받은 땅을 다시 찾은 것.

[종회 “위토마저 부채로 날릴라”]
[종부 “질곡의 세월 보상받아야”]
[국민 “양쪽다 조상 얼굴에 먹칠”]


이에 맞서 종회 측도 2002년 10월 “현충사 주변 16필지의 땅이 원래 70명의 문종 종원 공동명의로 돼 있었는데 최씨의 시아버지인 14대 종손이 불법으로 서류를 조작해 자신의 명의로 돌려놨다”며 최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소송을 냈다.
“정당하게 상속받은 땅을 돌려줄 수 없다”는 종부와 “충무공 가문의 공동재산을 며느리가 가로챘다”는 문중간 ‘땅 싸움’은 수년째 치열한 공방을 거듭하다가 결국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졌다.

1심과 2심은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문중 재산 처분에 필요한 문중총회 결의가 없었고 종회에서 주장한 종원 70명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4년 11월 “종원 70명 가운데 1명이라도 실체규명이 가능하면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전지법은 이듬해 6월 “명의 신탁이 인정되는 2만1780㎡(6600평) 가운데 최씨가 처분한 6600㎡(2000평)을 제외한 1만5180㎡(4600평)을 문중에 돌려주라”고 화해를 유도한 판결을 내렸지만 양측 모두 불복,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최씨가 소유권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회 측은 경매에 넘어간 충무공 고택 터 등이 법적으로 최씨의 땅인 관계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종회 관계자는 우선 최씨와의 땅 싸움에 대해 “전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돈에 눈이 멀어 재산다툼을 벌인 것으로 오해할까 우려된다”며 “종회가 종갓집 며느리의 개인재산을 탐내 소송을 벌인 게 아니라 위토(충무공의 제사와 묘지관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경작하는 논밭)만은 대대로 지키기 위한 문중의 충심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현충사 땅 소유 놓고
치열한 법정다툼 벌여

그러나 최씨에 대해선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최씨가 수많은 집안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시부모와 남편이 사망한 뒤 충무공의 위토마저 부채로 날리게 생겼다”며 “나라를 지킨 뿌리 있는 가문에 여자가 잘못 들어와 집안 망신을 톡톡히 시키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씨도 할 말은 있다. 평생 종가와 선조를 봉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보상받을 명문이 있다는 것.

최씨 측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엄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최씨는 1986년 충무공의 종갓집으로 출가해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남편 이씨가 자신의 의사조차 표현 못할 정도의 투병생활로 가문의 대를 이을 자녀를 얻지 못했고 2002년 6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군의 간병인으로만 살았다. 이 와중에도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다 사망한 시부모와 꼬박꼬박 문중 대소사를 챙기며 묵묵히 지냈다.

홀로 남은 최씨는 수억원의 빚을 내 현충사 매점과 웨딩샵 등을 운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다른 사업을 모색하다 어음 사기까지 당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당시 빚은 4억원 정도로 현재 배 이상으로 불어나 담보로 잡힌 최씨 소유의 충무공 고택 터 등이 채무자에 의해 경매에 부쳐진 것이다. 채권자는 김모씨로 청구금액은 7억원이며 감정가는 19억6000만원이다.

최씨는 “집안의 대소사 경비는 물론 시부모를 부양하고 남편의 병원비를 대려고 시작한 사업을 하다 빚을 지게 됐는데 문중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산을 뺏으려 했다”며 “재산 한 푼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죽고 살길이 막막했다.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문중은 구경만 했다”고 토로했다.
4월28일은 충무공 탄신 463주년이다. 지금 아산에선 ‘이순신 축제’를 앞두고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뒤늦게 여기저기서 경매에 넘겨진 충무공의 고택을 매입해 기부하겠다는 온정이 잇따르고 있어 그나마 안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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