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논란에 휘말렸다. AIG 소속 보험설계사들이 초등학교 동창의 가족을 상대로 수십억원의 사기를 치는가 하면 고객에게 “향응 접대를 받은 게 있느냐”며 막말 전화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막말 전화를 일삼았던 설계사는 타 설꼐사의 개인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고객의 개인 정보를 마음대로 유용해 사용한 것으로 전해져 ‘고객 정보관리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AIG측은 “설계사와의 관계는 사업자와 사업자간의 관계”라는 입장을 고수,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향응이나 접대 받지 않았냐” 고객에게 막말
초등학교 동창 가족에겐 수십억원 사기극 펼쳐
지난 2월9일, 경기 분당경찰서 인터넷 게시판에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AIG 소속 보험설계사인 A씨가 고객인 B씨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해 ‘향응이나 접대를 받은 게 있느냐’며 캐물어 불쾌했고 고객정보가 허술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내용이 주요골자다.
분당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같은 직장 동료이자 여자친구인 C씨의 부정한 관계를 의심, C씨의 개인컴퓨터에 저장된 고객폴더에서 의심이 가는 B씨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자신을 본사 심사평가실 소속으로 소개한 A씨는 “보험가입 당시 보험설계사 C씨로부터 향응이나 접대를 받지 않았냐”며 B씨를 추궁했다. B씨는 이에 “보험가입 뒤로는 만난 적이 없다”고 답하자 A씨는 “C씨가 성접대를 통해 보험계약을 따낸 전력이 적발돼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고 해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객에겐 ‘막말’ 해명은 ‘모르쇠’
그러나 막말에 가까운 추궁 전화와 고객정보의 허술한 관리에 불쾌해진 B씨는 AIG 본사에 항의 전화를 했고 분당경찰서 인터넷 게시판에 민원을 띄우게 됐다.
기자는 이와 관련 지난 6일 AIG측에 입장을 확인했으나 AIG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AIG 한 관계자는 “직원이 800명이고 설계사만 몇천 명이라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며 “경찰에서 민원인 신분을 알려주지 않아 사실관계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회사차원에서의 정보유출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의 전화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본사에 전화를 했는지 지점에 전화를 했는지도 알 수 없다”며 “심사평가실 소속이라 밝혔다고 하는데 그런 부서는 없고 계약인수부가 있어 알아보니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경찰에 문의한 결과 A씨는 AIG생명 서울 모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사건이 터지자 팀장까지 나서 B씨에게 사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지난 10일 AIG측은 “입사 시 준법감식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수시로 교육을 실시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면서 “설계사와 회사의 관계는 사업자와 사업자와의 관계로 독립돼 있다”고 거리를 뒀다. 이어 “문제가 발생하면 보고를 해야 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민원이 접수된 것도 아니고 실제 성접대를 한 것도 아니며 전화 내용이 녹음 된 것도 아니다”면서 “상호간 처벌을 원하지 않고 형사 처벌할 근거가 없어 반려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AIG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동창의 가족을 상대로 수십억원의 사기극을 벌이던 AIG 소속 보험설계사가 경찰에 붙잡힌 게 단초가 됐다.
지난 5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초등학교 동창인 조모씨에게 접근해 있지도 않은 보험 상품을 소개한 뒤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챈 이모(33)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07년 3월22일 조씨의 집에 찾아와 “보험에 가입하면 원금의 20%를 선수익금으로 돌려준다”고 속여 허위의 보험 상품을 가입하게 하는 등 지난해 7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조씨와 조씨의 가족들로부터 24억원을 가로챘다.
이씨는 지난 2007년 1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조씨가 부유한 사실을 알고 ‘프라임예금 1형’이란 허위 보험증서를 만든 뒤 “우수한 사원들에게만 판매하는 상품인데 친구 가족이니까 특별히 가입하게 해주겠다”며 조씨의 아버지에게 접근했다.
우수 사원만 판매하는 상품?
또 조씨의 어머니(62)와 누나(38)는 먼저 보험에 가입한 조씨 아버지의 소개로 각각 13억원과 2억원 상당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고 조씨는 9억원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씨는 이렇게 받은 돈 중 20%를 선수익금이라며 돌려줘 조씨 가족들을 안심시킨 뒤 나머지 돈은 주식투자와 사채를 갚는 데 사용했다.
문제는 AIG측의 수수방관 자세다. 이렇듯 AIG 소속 보험설계사들이 도덕적 해이로 인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지만 방관하는 자세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다.
AIG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킨 이씨가 이미 경찰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소환됐는데도 “해촉이 된 걸로 알지만 확실하진 않다”며 해촉 여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피해자의 보상에 대해서도 “경찰조사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방지대책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실시하고 있는 교육이 언제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