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결국 역할의 문제다.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고,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경기도는 긴장이 누적된 상황으로 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럴 때 필요한 리더는 더 크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정리하는 사람이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인물 경쟁이 아니라 역할 경쟁이다. 강함이 아니라 안정이 기준이 되는 선거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이미 강한 이미지로 각인돼있다. 권력의 중심에서 정면으로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추다르크’라는 이름을 얻었다. 결단과 추진력, 물러서지 않는 태도는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같은 힘도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달라져야 한다.
지난 29일 국회의원직 사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정치적 역할을 바꾸는 분기점이다. 이 출발선에서 선택은 분명하다. 과거의 이름을 입고 갈 것인가, 새로운 역할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것인가. 경기도가 요구하는 것은 후자다. 추다르크의 방식으로는 이 공간을 감당할 수 없다.
경기도는 1300만 도민의 삶이 움직이는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구호보다 예산이, 선언보다 실행이 우선이다. 도지사는 방향을 외치는 자리가 아니라 시스템을 굴리는 자리다. 정치의 중심이 대립에서 운영으로 이동하는 순간, 리더의 기준도 바뀐다. 표현이 아니라 결과, 속도가 아니라 안정이 기준이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름이 ‘추메르켈’이다. 이는 별명이 아니라 역할의 정의다. 앙겔라 메르켈의 리더십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오래 지속됐다. 감정보다 상황을 관리했고, 카리스마보다 신뢰로 기억됐다. 지금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신뢰다.
필자는 추미애가 장관 시절까지는 사법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추다르크에 가까웠다고 본다. 분명한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 리더십은 그 시기에 필요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법사위원장 이후에는 결이 달라졌다. 조율과 균형, 긴장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이 변화는 추메르켈로의 전환 신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지속 가능한 리더십으로 완성하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초기에는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 말보다 정책, 표현보다 실행을 앞세웠다. 대선 과정에서는 통합형 리더로 스탠스를 확장했다. 발언의 정치인에서 성과의 행정가, 그리고 통합의 리더로 이동한 것이다. 이 흐름은 역할 변화가 곧 정치의 확장임을 보여준다.
메르켈형 리더십의 핵심은 단순하다. 결정을 늦추지 않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긴장을 피하지 않되 불필요하게 키우지 않으며 결과로 말한다. 이 기본이 지금 정치에서 가장 어렵다. 감정이 앞서면 행정은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후보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참모 조직 역시 전환해야 한다. 추다르크에 익숙한 팀은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 능하지만, 추메르켈의 선거는 설득과 운영의 싸움이다. 메시지는 낮아지고, 설명은 정교해지며, 정책은 체계적으로 전달돼야 한다. 공격의 속도가 아니라 설득의 밀도가 기준이 된다. 팀이 바뀌지 않으면 후보의 변화도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의 선택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의 언어만 커지고 삶은 바뀌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기능의 전환이다.
문제는 이 전환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권자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판단한다. 추메르켈이 의미를 가지려면 표현은 줄고 결과는 늘어나야 한다. 변화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증명된다.
경기도는 ‘더 강한 리더인가, 더 안정적인 리더인가. 더 큰 표현인가, 더 정확한 실행인가’라는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이 질문은 정치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행정이 흔들리면 삶이 흔들리고, 행정이 안정되면 삶도 안정된다.
이 지점에서 이념의 구분은 힘을 잃는다. 행정은 좌우로 나뉘지 않는다. 남는 것은 능력이다.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고,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며,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는가. 이 세 가지 앞에서는 어떤 이념도 설득력을 잃는다.
여기서 하나 더 분명해진다. 추다르크는 과거의 상징이고, 추메르켈은 현재의 요구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있다. 잔다르크처럼 방향을 만들고, 메르켈처럼 운영하며, 마거릿 대처처럼 구조를 설계하는 단계다. 혁명의 프랑스, 경제의 독일, 안정의 영국으로 이어지는 리더십의 진화다.
이 흐름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지 변화가 아니라 국가 리더로의 진입이다. 경기도의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정치의 방식을 결정하는 일이다. 이번 선거는 인물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정치의 다음 단계를 선택하는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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