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트럼프는 왜 호르무즈를 ‘아메리카 해협’으로 만들려 하나

2026.03.30 09:07:45 호수 0호

전쟁의 승리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다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신호를 던졌다. 지난 28일(현지시각) 외신은 도널드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명칭을 ‘트럼프 해협’ 혹은 ‘아메리카 해협’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현재 검토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달랐다. “내게는 우연이 없다”는 이 한 문장은 농담을 정책으로 바꾸는 정치인의 방식이다.



이름 하나가 아니라, 질서를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해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부르겠다고 했고, 문화시설과 기관에도 자신의 이름을 붙여왔다. 표면적으로는 과장된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름은 소유의 가장 간단한 형태다. 그리고 국제정치에서 이름은 곧 통제권의 언어다.

2년 전 필자는 ‘김삼기의 시사펀치’ 칼럼에 “서해와 멕시코만은 각각 한국과 미국의 DNA가 모여 있는 바다”라고 썼다. 그때의 문제의식은 단순했다. 바다는 단순한 지리 공간이 아니라,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 경제 흐름이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관점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국의 지형은 동과 서가 높고 중앙이 열려 있다. 애팔래치아 산맥과 로키산맥 사이를 가로지르는 내륙 평야는 거대한 물길을 만든다. 그 중심이 바로 미시시피강이다. 이 강은 미국 전역의 물을 모아 남쪽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모이는 곳이 멕시코만이다.

멕시코만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 산업, 농업, 물류, 에너지가 최종적으로 집결되는 공간이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온 모든 흐름이 그곳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래서 멕시코만은 미국의 ‘결과’이자 ‘집합’이다. 말 그대로 미국의 DNA가 모인 장소다. 그래서 2년 전 필자는 멕시코만이 ‘아메리카만’으로 불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한반도의 강들은 대부분 서쪽으로 흐른다. 압록강, 대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물줄기들은 결국 서해로 향한다. 동고서저의 지형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단순한 물의 이동이 아니라, 삶과 역사, 산업과 문화의 축적이다.

그래서 서해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기억이 모인 장소다. 우리의 농업, 산업, 도시, 인구, 삶의 흔적이 결국 그곳으로 흘러간다. 서해는 한국의 DNA가 축적된 공간이다. 필자가 말했던 것은 한 국가의 강이 최종 모이는 바다는 국가의 ‘결과물’이라는 의미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부르겠다는 트럼프의 시도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다. 세계 전체의 관심이 모이는 공간을 ‘미국의 중심’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다.

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이름까지 바꾸려 하는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분명하다. 이번 중동 전쟁을 통해 전 세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충격을 주는지를 확인했고, 미국은 바로 그 가장 위험한 순간을 통제하고 질서를 복원한 주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이 좁은 해협 하나가 막히면 국제유가가 출렁이고, 물류가 흔들리며,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는다. 에너지는 산업의 기반이고, 산업은 국가의 힘이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숨통을 쥔 전략 공간이다.

이번 중동 전쟁에서 드러났듯,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위협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압박이었고, 시장과 항로와 에너지 가격을 동시에 흔드는 힘이었다. 바로 그 엄청난 위기 앞에서 미국은 “우리가 막았고, 우리가 열었고, 우리가 지켰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단순하다. 미국이 막대한 비용과 군사력, 외교력을 투입해 이 해협의 안전을 확보했다면, 이제 그 성과를 상징적으로 미국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승리는 단순히 전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름과 기억, 상징까지 장악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아메리카 해협’이라는 명칭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이번 전쟁의 최종 승자는 미국”이라는 정치적 문장에 가깝다.

그래서 이 명칭 변경 언급은 단순한 지명 논란이 아니다. 미국이 이번 이란 전쟁에서 던지는 상징적 메시지다. 호르무즈는 더 이상 이란이 세계를 흔드는 협박의 공간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 질서를 지켜낸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름을 바꾸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 승리를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가장 과감한 방식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심리적 지배다. 국제정치는 물리적 통제만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식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그 해협을 무엇이라 부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이름은 지역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지만, ‘아메리카 해협’은 권력과 질서를 상징한다. 이름이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질서가 바뀐다.


이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트럼프는 정책보다 메시지를 먼저 던지는 정치인이다. 말실수처럼 보이는 발언 뒤에 항상 숨은 의도가 있다. “내게는 우연이 없다”는 말은 바로 이 전략을 설명한다. 그는 이름을 통해 질서를 재설계하려 한다.

더 깊이 보면, 이것은 에너지 패권의 문제다. 호르무즈를 통제한다는 것은 단순한 해협 하나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가격, 물류 흐름, 산업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권력을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행위다. 결국 이 해협은 군사 거점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스위치를 쥐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래다. 트럼프가 말하는 ‘아메리카 해협’은 과거의 전쟁이나 현재의 긴장을 넘어선 개념이다. 그것은 앞으로 이 해협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질서를 선점하려는 시도다. 이름을 먼저 바꾸겠다는 발상 자체가 미래 권력의 방향을 미리 그어놓는 행위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된다. 서해와 멕시코만이 각각 한국과 미국의 DNA가 모인 공간이라면,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누가 세계의 흐름을 장악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곳은 특정 국가의 DNA가 아니라, 글로벌 권력이 모이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 해협은 지리가 아니라 시대의 권력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는 지금 바다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바다를 설명하는 언어를 바꾸려 한다. 그리고 국제정치에서 언어를 바꾸는 순간, 현실도 따라 바뀐다.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지는 국제정치 몫이다.

이제 문제는 바다가 아니다. 그 바다를 누가 어떻게 이름 붙이느냐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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