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치인의 언어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 표현을 넘어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적 기준을 형성하고, 공적 담론의 방향을 좌우하며, 때로는 공동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장예찬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의 “늙은이들 제정신인가”라는 발언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앞서 지난 12일, 장 부원장은 유튜브 채널 ‘여의도 너머’에 출연해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 주장했던 ‘오세훈‧이준석‧한동훈 연대설’에 대해 “이 늙은이들이 제정신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젊은 사람을 발사대로 쓰려고 한다. 결국 양상훈이 말한 오세훈, 이준석, 한동훈 연대와 조갑제 이 분도 이준석 전 대표한테는 나름 우호적이지만 결국 자기들이 미는 한동훈 살려주려고 젊은 이준석 희생하고 발사대로 깔려고 하는 것”이라며 “조갑제나 양상훈 주필이나 진짜 양심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 여지없이 드러난 사례다.
또 노골적인 연령 차별을 드러내는 것으로 특정 세대를 ‘늙은이들’로 뭉뚱그려 비하하고, 그들의 판단 능력을 ‘제정신이냐’는 말로 폄하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성 그 자체마저 부정하는 행위다. 나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주장과 행동을 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연령대를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혐오 발언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체제로, 특히 선거를 통해 모든 시민이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고령층 역시 엄연한 유권자이며, 그들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세대의 정치적 판단을 비하하는 것은 곧 그들의 투표권과 정치적 참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결국 ‘내 생각과 다르면 비정상’이라는 위험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발언은 세대 갈등마저 부추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청년층과 고령층 간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특정 세대를 조롱하는 발언을 한다면 사회 통합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고 공존의 해법을 찾는 데 있으나 오히려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든다.
특히나 정치인의 언어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공적 발언은 개인적 감정이나 즉흥적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신중한 메시지여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거나 공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상대를 비판하더라도 최소한의 품격과 논리적 근거를 갖추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물론 정치적 비판 자체는 필요하다. 특정 정책이나 결정이 잘못됐다면 날카롭게 지적해야 하나 그 비판은 대상의 주장과 행동을 겨냥해야지, 나이와 같은 본질과 무관한 요소를 공격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비판이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순간, 그 정당성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번 발언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의 수준은 결국 ‘언어의 수준’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거친 표현과 혐오의 언어가 난무할수록 정치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반대로,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말실수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정치권 전반이 스스로의 언어를 돌아보고, 공적 발언의 책임과 품격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대를 갈라치고 상대를 비하하는 언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언어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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