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종편이 만든 건강식품 집단 최면

2026.03.08 08:24:13 호수 0호

광고와 건강 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반복 노출의 함정

요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채널을 돌려도, 시간을 바꿔도, 프로그램이 달라도 광고 화면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알부민’ 광고가 끝나면 또 알부민 광고가 나오고, 다른 채널로 옮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마치 모든 방송사가 하나의 광고 대본을 공유하는 듯한 풍경이다. 시청자는 어느 순간 “요즘은 알부민이 대세인가 보다”라는 인식을 한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어느 시기에는 홍삼 광고가, 또 다른 시기에는 오메가3가, 비타민이, 관절 건강식품이 방송을 장악했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반년 넘게 특정 품목이 종편 광고를 독점했다.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지를 접하기보다 특정 상품군만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광고 편성은 유행처럼 움직이고, 방송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흐름을 탄다.

문제는 광고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인다. 광고 상품에 맞춰 전문가 인터뷰와 실험 자료, 체험 사례까지 동원되며 사실상 광고와 유사한 메시지가 반복된다. 시청자는 광고 시간뿐 아니라 프로그램 시청 과정에서도 같은 건강식품을 지속적으로 접한다. 정보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광고와 프로그램이 같은 건강식품을 반복 노출하면 시청자의 인식은 더욱 강화된다. 광고가 인지도를 만들고, 프로그램이 신뢰도를 보완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건강식품은 ‘상품’이 아니라 ‘상식’처럼 자리 잡는다. 의학적 필요성에 대한 개별 판단보다 방송 노출 빈도가 판단 기준이 된다.

이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식을 설계하는 구조이며,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반복 노출이 만들어낸 ‘집단 최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이 있다. 바로 ‘단순 노출 효과’다. 사람은 어떤 대상이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그것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정보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익숙함이 먼저 감정을 지배한다. 결국 많이 본 것이 좋은 것처럼 느껴지고, 자주 들은 말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광고는 이 심리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정교하게 활용하는 영역이다.


여기에 ‘가용성 휴리스틱’이라는 인지 편향도 더해진다. 사람은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TV를 켤 때마다 같은 건강식품 광고나 건강 프로그램이 반복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건강식품과 건강이 자동으로 연결된다. 의학적 필요성과 무관하게 노출 빈도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또 ‘사회적 증거 심리’도 작동한다. 모든 채널에서 같은 건강식품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정도면 다들 챙기는 것 아닐까.” “이렇게 자주 나오면 효과가 검증된 것 아닐까.” 다수가 선택한다는 인상이 개인의 판단을 압도한다. 실제 소비량이나 의학적 권고와 무관하게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 신뢰의 근거로 둔갑한다.

문제는 이 같은 심리 작용이 소비자의 합리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식품은 개인별 필요성이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누구에게는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는 혈관 개선이 더 시급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타민이 먼저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절 관리가 우선이다.

건강은 유행이 아니라 개인 맞춤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방송은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특정 상품을 ‘익숙한 선택’으로 만드는 노출 설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방송 광고 편성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특정 시기에 광고주들이 한 건강식품에 집중하면 방송사 역시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비슷한 광고를 반복 편성하게 된다. 동시에 관련 건강 프로그램에서도 해당 건강식품을 집중 조명하며 광고 효과를 배가시킨다. 시청자는 다양한 정보를 접할 기회를 잃는다. 광고와 건강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소비 선택의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결국 시청자가 접하는 것은 ‘정보의 경쟁’이 아니라 ‘노출의 집중’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의 불안 심리가 자극된다. “나만 안 챙기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결국 광고는 필요를 설명하기보다 결핍을 암시하게 된다. 결핍의 공포는 구매를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건강 불안과 반복 노출이 결합하면 소비자는 합리적 비교 대신 즉각적 선택을 하게 된다. 판단은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에 의해 내려진다.

최근 이런 종편의 구조적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달 26일 김종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편채널 4사의 제작 현장을 방문했다. 글로벌 OTT와의 경쟁 속에서 채널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제작진들은 제작 환경 변화와 인력 수급 문제를 호소했고, 경영진은 광고·편성·심의 관련 규제 완화와 재승인 조건 개선을 건의했다.

정부는 콘텐츠 투자 확대와 제작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시청자가 체감하는 방송의 공공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유행 건강식품이 광고와 건강 프로그램을 동시에 장악하는 현상, 특정 상품군이 전 채널을 뒤덮는 편성 구조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규제 완화와 산업 지원 논의는 있었지만, 방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따끔한 질책은 들리지 않았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장면을 떠올린다. 장관에게 정책의 허점을 집요하게 묻고, 국민이 체감하는 문제를 직설적으로 지적하던 모습 말이다. 만약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이라면, “왜 요즘 종편은 특정 건강식품이 광고와 건강 프로그램을 동시에 싹쓸이하고 있습니까? 방송사들이 사실상 담합한 것 아닙니까?”라고 따져 물었어야 했다. 산업 경쟁력 강화 이전에 공공성에 대한 점검과 질책이 먼저였어야 했다.

방송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국민의 인식과 소비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 매체다. 건강 정보는 특히 더 엄격한 균형성이 요구된다. 반복 노출로 특정 성분을 ‘국민 필수품’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환경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인식 유도에 가깝다. 방송이 사실상 ‘집단 최면 장치’처럼 작동하는 순간, 공공성의 균형추는 무너진다.

건강식품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의학적 진단과 생활습관 개선이 우선이다. 그러나 광고와 프로그램이 결합된 반복 노출 구조는 이를 주객전도시킨다. 특정 성분이 건강의 핵심 열쇠인 것처럼 포장된다. 반복은 과장을 강화하고, 과장은 기대를 부풀린다.

이제 필요한 것은 광고와 건강 정보의 ‘균형성’이다. 한 품목을 집중 노출하기보다 다양한 건강 정보와 제품군이 고르게 소개돼야 한다. 방송은 유행을 확대 재생산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정보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 건강은 마케팅 전략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반복 노출로 특정 건강식품을 각인시키는 방식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행위에 가깝다.

많이 보여준다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주 나온다고 반드시 더 좋은 것도 아니다. 단순 노출 효과가 만든 착시는 소비자의 판단을 흐릴 뿐이다. 방송이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유행을 만드는 플랫폼이 아니라 선택을 돕는 매체가 돼야 한다.

건강은 유행이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방송이 그 기준을 흐리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반복 노출이 아닌 균형 잡힌 정보 제공으로 건강식품 광고와 건강 프로그램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은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소비심리를 조작하는 ‘최면 장치’로 기억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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