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행정통합, ‘5극3특’ 전략의 첫 시험대

2026.02.27 10:19:15 호수 0호

24일 법사위 결정이 던진 국가 공간 설계의 과제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재정을 어떻게 다시 나눌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지난 12일 광주·전남, 대구·경북(TK),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 심사에 이어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겼다.



그러나 24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만 가결됐다. 같은 날 상정된 대구·경북과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은 심사가 보류됐다. 같은 ‘행정통합’이지만 결과는 갈렸다.

대구·경북과 대전·충남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TK 측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일부 경북 지역 인사들은 “왜 우리만 멈춰 서야 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 역시 유감을 표하며 균형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정 지역만 먼저 통과시키는 방식은 또 다른 지역 갈등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였다. 통합이 출발선부터 정치적 균열을 드러낸 셈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에게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를 위한 공개 회담을 제안했다. 행정통합이 지역 현안을 넘어 중앙 정치의 힘겨루기 대상으로 번진 느낌이다. 통합이 행정 개편이 아니라 정당 간 영향력 배분의 문제로 변질될 위험도 함께 드러난 것이다.

설계의 과제를 표 계산의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통합의 명분은 급격히 약해진다.


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세 지역의 통합 논의는 공통된 배경을 갖는다. 인구 감소, 지방 소멸, 재정 압박이라는 구조적 위기다. 그러나 구조는 다르다. 광주·전남은 생활권과 경제권의 연계성이 비교적 분명하다. 대구·경북은 산업과 인프라의 전략적 결합이라는 명분이 강하다. 대전·충남은 과학·행정 기능과 제조·해양 산업을 결합해야 하는 또 다른 설계를 요구한다.

광주·전남의 경우 광주는 도시 역량과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고, 전남은 넓은 면적과 해양·농수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통합은 서남권 경제권 형성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다. 그러나 도청과 시청 기능 배분, 재정 구조 조정, 공공기관 재배치라는 현실적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권한을 어떻게 나누고 책임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선언은 쉬워도 권력 재배치는 어렵다.

대구·경북은 도시와 농촌, 산업과 자원의 결합이라는 전략적 그림을 그린다. 대구의 의료·교육·산업 인프라와 경북의 에너지·항만·농공 기반은 분명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부 경북 북부 지역에서 제기되는 우려도 현실이다.

통합이 곧 균형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심 도시로의 자원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통합은 또 다른 쏠림을 만들 수 있다.

대전·충남도 다르지 않다. 대전은 연구개발과 행정 기능, 충남은 제조업과 해양산업을 갖고 있다. 통합은 과학·산업벨트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흡수 구조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한다.

세 지역 모두 통합은 단순한 외연 확장인가 아니면 권한과 재정을 재설계하는 구조 개편인가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번 24일 법사위 결정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광주·전남만 통과되고 TK와 대전·충남이 보류된 장면은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형평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지역 균형을 말해 온 정치권이 실제 결정 과정에서도 그 원칙을 지켰는지 묻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광주·전남의 지역 통합은 됐지만, 국가 통합은 되지 않은 것이다.

광주·전남 특별법만 법사위를 통과하자, 다급해진 국민의힘 TK 의원들은 26일 2월 임시국회 내 특별법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모아 원내 지도부에 전달했다. 대구 지역 의원 12명은 전원 찬성했고, 경북은 일부 반대했다. 이들은 전남·광주 특별법과 TK 특별법의 동시 처리를 요구하며 형평성과 절차적 균형을 전면에 내세웠다.


통합이 순식간에 설계 경쟁이 아니라 처리 순서 경쟁으로 변한 것이다.

행정통합의 명분은 분명하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지금과 같은 광역 구조로는 미래산업을 감당하기 어렵다. 세계는 이미 메가시티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다. 산업·물류·연구개발은 광역권 단위로 재편되고 있다. 광역 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지역은 경쟁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국면으로 밀려날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행정 경계를 없앤다고 경제가 자동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재정 자립도 개선, 산업 구조 혁신, 대학·연구기관 연계 전략, 교통·물류망 구축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한 배분 구조다. 구조 없는 통합은 간판 교체에 불과하고, 권한 없는 통합은 책임 회피로 끝난다.

이번 논의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쟁점은 의사결정 방식이다. 과연 ‘지역의 장기적 운명을 좌우할 사안을 단순 표결로 정리하는 것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이다. 절차적·지역적 정당성은 함께 확보돼야 한다. 주민투표, 공청회, 구체적 재정 추계와 로드맵 공개가 선행되지 않으면 통합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설득 없는 통합은 오래가지 않는다.

광주·전남은 먼저 통과된 만큼 더 큰 책임을 안게 됐다. 성공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면 다른 지역의 반발은 더 거세질 것이다. 통합 이후의 세부 설계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정치적 특혜’라는 오해도 불식하기 어렵다. 첫 사례가 실패하면 전국 단위 개편 논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대구·경북과 대전·충남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형평성 논란을 정치적 공방으로만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더 정교한 구조 설계를 요구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반발은 이해되지만, 그 에너지가 제도 설계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모적 갈등으로 끝난다. 통합의 성공 여부는 찬반 숫자가 아니라 설계의 밀도에 달려 있다.

행정통합은 결국 우리나라 지방자치 30년의 성적표를 묻는 일이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이후 광역 구조는 큰 틀에서 유지돼 왔다. 그러나 인구 구조는 급격히 변했고 지역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기존 경계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구조를 바꾸는 것이 책임 있는 선택이다.


정부는 광역행정 개편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특정 지역의 정치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일관성은 사라진다. 대통령 직속 또는 국회 차원의 특별기구를 통해 전국 단위 종합 설계를 추진해야 한다. 개별 통합을 정치적 균형 카드로 활용하는 방식은 반복될수록 신뢰를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다. 통합은 면적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권한과 재정을 다시 배치하는 일이다. 지방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합은 또 다른 중앙집중이 된다. 크기만 커지고 힘은 그대로인 구조는 오래가지 못한다. 24일 법사위 결정은 끝이 아니다. 국가 구조를 다시 짜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재명정부는 집권 초기 ‘5극3특’이라는 국가 공간 전략을 내세웠다.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의 5극을 초광역권으로 재편하고, 제주·전북·강원을 특별자치권으로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3특은 이미 제도적 틀을 갖췄고, 5극은 이제 막 현실 정치의 문턱을 넘는 단계다. 호남권의 광주·전남, 대경권의 대구·경북, 중부권의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이 전략의 시험대다.

정부가 이 구상을 일관된 로드맵으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5극3특’은 선언에 그칠 것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당장 7월1일부터 효력 발생이 예상되며, 결국 유권자는 6·3지방선거에서 행정통합 단체장을 뽑아야 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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