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제9차 개헌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이다. 이로부터 40여년이 지났고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는 사이 헌법은 제자리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개헌은 선거 때마다 돌림노래처럼 여의도를 떠돌지만 좀처럼 논의에 불이 붙지 않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먼저 개헌의 불씨를 댕겼다. 지난 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이재명정부 임기 내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 장 대표는 헌법 개정을 비롯한 특별법 제정, 청사 건설 등을 여야가 함께 검토·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방 혁명과 인구 혁명의 길을 찾기 위해 여야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띄웠는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취임 이후 꾸준히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우 의장 역시 “설 전후가 동시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 시한”이라며 장 대표의 말에 힘을 보탰다.
우 의장은 지난 5일 국회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투표법 개정 및 개헌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상임위서 국민투표법을 심사하는 등 개정을 위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이날 우 의장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통령 뜻도 분명했다. 청와대 정무수석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원내대표도 비로소 국민투표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며 “개헌을 이야기할 때마다 국민의힘이란 큰 벽에 부딪혔는데 장 대표가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귀가 번쩍 뜨였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도 지난 9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과 국민투표법에 대한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의 골든타임이 마지막 기로에 서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원내대표는 “우선 재외국민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국민투표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이미 12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직무 유기는 안 된다.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민의힘의 동참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여야가 띄워서 통했나 싶더니…
역시 입 모아 “시기상조” 찬물
개헌은 역대 정권서도 꾸준히 논의돼 왔던 사안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해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개헌을 통해 4년 중임제로 하되, 국무총리 추천제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정권을 잡으면 저마다의 이유로 개헌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논의 테이블이 마련되더라도 정치인이 합의하고 국민투표 등을 거쳐아 하는 만큼 실제 개헌이 성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여야 간의 협치는 물론 정부·여당 간의 합의도 문제다. 우 의장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개헌을 띄웠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우 의장은 개헌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민주당 당시 정청래 의원이 “개헌은 당위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우 의장의 제안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며 “결론적으로 말해 ‘난 반댈세’”라고 직격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뜬금없는 개헌 주장으로 분노를 사지 말고, 지금은 내란 종식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우선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지난 5일 기자회견서 우 의장이 개헌을 띄우자 이번에는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개헌을 기정사실로 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1심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란 극복을 전제로 한 듯한 우 의장의 개헌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송 원내대표는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점과 그것이 형법상 내란인지 여부에는 사법부 판단이 남아 있다”며 “헌법은 연성헌법이 아니라 경성헌법이다. 오랜 연구와 사회적 합의, 국회 논의와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중대한 사안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의도 주요 정치인이 동시에 개헌을 띄웠지만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위해서는 국민의 여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하루가 멀다고 대형 이슈가 터지는 상황에서 개헌은 국민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알맞은’ 시기 도대체 언제?
물꼬 터도 개헌 방향성 난관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국회의장과 여야, 그리고 대통령까지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민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라며 “현재 우선순위는 여전히 진행 중인 내란 관련 심판과 ‘윤 어게인’ 잔당, 그리고 지방선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선거가 끝나면 극우 세력은 무너질 것”이라며 “한번 상황이 정리돼야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지금 대한민국 헌법은 40년이 된, 아주 오래된 법으로 이를 개정하는 것에 국민의 공감대가 모였다”면서도 “그럼에도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내란 세력 척결 이후 차근히 논의하자고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개헌 논의가 이뤄질 경우 ‘어떤’ 내용을 ‘어디까지’ 담을지도 관건이다. 특히 대통령 4년 연임제 등 권력에 관한 사안이 논의될 때면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며 서로 반대했다. 지난 20년간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가며 정권이 교체됐고, 그때마다 야당은 매번 개헌에 어깃장을 놓았다.
개헌은 정부의 힘이 가장 강한 임기 초에 논의되곤 했다. 이재명정부도 마찬가지다. 4년 연임제 등을 포함한 개헌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자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라며 반대 목소리를 키웠다. 국민 대다수가 개헌에 공감한다지만 정치권의 목소리가 한 갈래로 다듬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김두관의 헌법개정 제안서> 등의 저자인 민주당 김두관 전 의원은 <일요시사>를 통해 “원포인트 개헌보다 대통령 권력 분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7공화국으로
김 전 의원은 “독재정권, 전쟁 등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대한민국은 독재를 반대하면서도 권력을 나누는 것에 대해 야합이라는 해석을 한다”며 “권력을 분산하는 방법에는 4년 중임제, 대통령·국무총리 공동 책임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 분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반대하니, 모순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한민국은 세계 파워 랭킹 6위다. 대통령 한 사람의 리더십에 기대기엔 나라가 거대해졌다”며 “제7공화국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분권형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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