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행위는 국민의 시계를 40여년 전으로 돌려놨다. 그 시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기성세대와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가 거리로 나왔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했고 8개월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주가는 코스피 5000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는데, 2030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한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또 다른 쪽에서는 곡소리가 나는 형국이다. 위정자들은 통합과 화합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의 마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듯하다.
빈부 격차
핵심 뿌리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은 대한민국호의 뱃머리를 삽시간에 반대 방향으로 돌려 버렸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실현된 지 불과 3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안 의결, 윤 전 대통령의 공식 해제로 사태는 6시간 만에 종결됐지만 한국 사회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극단에 치우친 정치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젊은 세대였다. 일부일지라도 과거였다면 민주화의 깃발을 들고 휘둘렀을 젊은 세대의 ‘우경화’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진영 논리에 따른 정치 갈등은 성, 세대, 지역 갈등으로 확산했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 수위는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인 박득훈 목사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사회와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축적된 자본주의의 모순이 분노로 치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이 정체성의 갈등으로 세분화하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지난 3일 박 목사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진보 진영에 대해 비판할 때는 ‘내부 총질’로 비칠까 염려했다. 인터뷰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이 이어졌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향해 “미안하다, 죄송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현재 사회 상황에 대해 “비상계엄 실패에 따라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고 극우 세력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K-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듯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도 극우 세력에 휘둘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 동시에 우리가 피와 눈물로 가꿔온 민주주의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변화한 보수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조갑제씨나 정규재씨 같은 보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윤석열정권이나 극우 세력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내용의 발언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이후 사회 변화
2030세대 보수화 우려돼
이어 “현재 60%에 이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도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40%대 전후)보다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동안 민주당 정권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 가운데서도 이재명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긍정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비상계엄 이후 나타난 변화”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등 대형 정치 이슈를 거치면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진 점, 그 극우 세력에 젊은 세대가 일부 합류하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일부 그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위를 한 이른바 ‘서울서부지법 사태’의 가해자는 대부분 20~30대였다.
박 목사는 “전수조사를 해본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할 순 없지만 과거보다 많아진 건 분명하다. 이전부터 젊은 층이 보수화되는 그 흐름이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변화”라면서 “젊은 보수가 생각이 없다거나, 어리석다거나, 지나치게 이념적이라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박 목사는 젊은 세대가 보수화하는 문제의 배경을 진보 진영에서 찾았다.
그는 “진보 진영은 그동안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그들의 편인 것처럼 수사적 표현을 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면서 정책적인 면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서민에게 굉장한 실망감, 배신감을 안겼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보수 진영으로 갔다는 것은 진보에 대한 경종”이라고 꼬집었다.
보수화된 젊은 세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태도를 주의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 목사는 “(보수화된)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진보가 어떻게 (그들을) 실망하게 했길래 그들이 다른 길로 갔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를 보면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앞장섰다. 그런 젊은 사람들이 어째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기존 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진보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적 표현
“속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던 극우 세력이 서구 유럽에서는 주류로 치고 올라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세계를 상대로 ‘큰소리’치는 지도자가 늘어난 것도 현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진보 진영의 ‘우아하고 듣기 좋은’ 수사적 표현이 오히려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성, 세대, 지역 갈등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빈부격차가 나타난다. 물론 빈부격차를 해결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문제의 원인을 빈부격차에서 찾았다.
그는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하는 게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를 싸게 고용하면 이윤이 커진다. 여성의 인품, 인격,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게 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증폭되고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눈여겨볼 대목은 자본이 지닌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노동 계급이 약화했고 그 빈자리에 다양한 갈등이 들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계급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의 크기는 약해졌고 그 대신 여성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 등 이른바 정체성 문제라고 불리는 다양한 갈등이 분출했다”고 부연했다.
박 목사는 이른바 ‘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상대를 상처 입히는 언행으로 나타나고 서로를 배척하는 ‘대혐오의 시대’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한참 성장하다가 버벅거리기 시작할 때 모순이 극대화된다. 문제는 그 모순을 정당화하는 세력이 정치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난다”며 “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박탈을 겪고 있는데 기득권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고통당하는 처지에서 기득권의 정치 성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기득권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이 정권교체를 택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박탈당해 무기력해진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이들이 바꿔주는 척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으면 국민은 기댈 곳이 없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분노가 치민다. 누군가를 두들겨 패주고 싶은 감정적인 아픔이 축적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분노를 이용하려는 지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런 지도자들은 약자 간의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개인 아닌
사회 문제
박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엔 너희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불법 체류자 때문이다. ‘저 인종, 저 저차원적인 인종이 와서 당신들(백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거야’라고 규정해 버린다”고 예시를 들었다.
실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이를 ‘갈라치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말하는 진보 지식인이 분노한 대중을 향해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노골적이고 직선적이며 때론 미치광이처럼 내뱉는 언행이 대중에겐 솔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준다. 대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엘리트 정치인을 혼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혐오 언어를 퍼트리면 기꺼이 공유하고 동의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그 언어가 우아한 언어를 쓰는 위선에 대한 강력한 도전,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진보가 대중의 분노를 불식하고 달래주지 못하는 틈을 트럼프 대통령이나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이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너무 화가 나는데 누구를 때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 즉 누군가에게 분풀이하고 싶지만,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적인 고통을 이들이 포착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들(진보 진영)은 진짜로 고통당한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머리와 언어만 진보적이고 몸은 진보적이지 않다. 좋은 집에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데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겠나. 부동산과 주식을 잔뜩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 반하는 정책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몸도 마음도 약자와 함께 있지 않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을 위한 논리와 정책을 만들 수 없다. 서민을 위하는 약자의 편이라는 수사적 언어만 사용할 뿐 실질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사실상 보수 진영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박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멋진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박 목사는 사회 변화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빈부격차, 즉 경제 문제에서 대부분 갈등이 야기되는데 그 해결책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이 갈등의 ‘진짜’ 원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앞선 세대 사람들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욕심만 차려서 잘 먹고 잘 살았던 게 아니다. 또 젊은 세대가 노력하지 않아서 못 먹고 못 사는 게 아니다. 똑같이 열심히 살아왔고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 않느냐”고 진단했다.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
그는 “기성세대는 한국 자본주의가 급성장 혹은 꾸준히 성장하는 흐름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근로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었고 애를 낳아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사회적 상승도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성장이 멈춘 포화 상태”라며 “그러니 젊은 세대로선 아무리 몸부림쳐도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할 가능성도 안 보이고 애를 많이 낳아 키울 자신도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극대화된 시기에 사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결국 위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동시에 위정자를 선택하는 국민의 역할도 강조했다.
박 목사는 “위정자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책임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혼나야 할 사람은 지도자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가만히 있어도 되냐, 하면 그렇지 않다. 민중이 들고일어나 위정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깊고 여유로운 토론을 하지 않는 세대가 됐다. 정확히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경쟁에 시달리느라 정서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면 자극적인 쾌락, 짧은 즐거움, 웃음, 행복에 매달리게 된다. 길게 뭘 생각하고 누리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한 것이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보 진영이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박 목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외국 유학을 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부채 의식’을 언급했다.
질문에 답변하기에 부담스럽다는 말도 건넸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 시점에서는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요즘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역사의 진보를 위해, 사회 변혁을 위해 자신의 어떤 명예나 정치적 권력, 세력화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득권을 취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던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진보 운동에 투신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먼저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진보 진영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대중이 보는 시각은 이들이 기득권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현실이 어떻든 대중이 어떻게 느끼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돌파하지 못하면 대중을 이끌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답변을 이어가던 박 목사는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부탁하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처음 나온 말은 “미안하다, 그리고 죄송하다”였다.
내던지는
지도자 필요
그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겹게 사는 상황, 삶을 포기하거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체제를 누가 만들었나, 누가 물려줬나 하면 기성세대다. 누군가는 바꾸려 노력했지만 안 됐고 누군가는 체제 유지를 지지했다. 그 무기력함에 대해, 대세를 뒤집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이 크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성세대가 가진 게 젊은 세대에 비해 많지 않나. 이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서 젊은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길을 기성세대가 걸어갔으면 한다. 나도 미력하나마 그 흐름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좀 용서해주고 불쌍히 여겨서 서로 마음을 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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