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K-pop 다음 K-mark 준비하라

2026.02.08 08:34:37 호수 0호

음악으로 연 K-culture, 이제 미술로 증명할 차례다

며칠 전,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딸을 둔 모 기업 회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이가 실기우수상과 개근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축하 인사를 전하며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음악이 대세지만, 앞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처럼 미술의 인기가 음악을 앞지를 겁니다” 잠시 후 한 문장을 더 보냈다.



“앞으로 따님이 BTS보다 더 날릴 겁니다.” 축하의 뜻으로 가볍게 보낸 메시지였으나, 문화의 방향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문화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소리가 문을 열면 그림이 문명을 세운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미술은 그 감정을 구조로 고정시킨다. K-pop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은 이제 무엇을 불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바로 K-mark다.

한국 미술은 흔히 ‘K-painting’이나 ‘K-picture’로 불린다. 그러나 이는 장르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왜 남는지까지 말해주지는 못한다. 반면 K-mark는 미술을 문명이 남기는 흔적으로 격상시킨다. 미술은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구조다. 한국 미술을 K-mark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이미지가 세계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문명적 좌표를 뜻한다.

소리는 먼저 오고, 그림은 나중에 남는다

예술의 역사에서 음악은 언제나 가장 먼저 등장했다. 인간은 생각하기 전에 소리를 냈고, 언어보다 먼저 리듬으로 서로를 인식했다. 음악은 집단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묶는 힘을 가졌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불안과 환희, 두려움과 기대는 말보다 소리로 먼저 전달되었고, 박자와 음성은 집단의 심박수를 하나로 맞췄다.


그러나 음악의 힘은 강한 만큼 짧다. 울리고 사라지며, 기억에 의존한다. 기록 기술이 없던 시대의 음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 같은 시대에 그려진 그림과 벽화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차이는 예술의 우열이 아니라, 지속 방식의 차이다. 소리는 순간을 지배하지만, 이미지는 시간을 견디며 문명의 시간 속에 고정된다.

인류의 문명이 성숙할 때 예술의 중심도 이동해 왔다. 반응에서 해석으로, 소리에서 이미지로 이동했다. 음악은 늘 앞에서 길을 닦았지만, 그림은 뒤에서 그 길을 굳혔다. 음악이 즉각적인 결속을 만들어냈다면, 미술은 사유와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남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흔적이다. 문명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가장 신뢰한 표현은 이미지였다.

그림은 늦게 시작해 문명 붙잡아

미술은 음악보다 늦게 자리 잡은 예술이다. 소리처럼 즉각 반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과 선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고,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릴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미술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사고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이 지점에서 미술은 본능의 영역을 벗어나 문명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 때문에 미술은 늘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다. 쉬운 예술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어려운 예술은 반복해서 읽힌다. 미술은 즉각적인 감동보다 지속적인 해석을 요구하며, 해석이 축적될수록 의미가 더 깊어진다. 문명이 성숙할수록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이유다.

미술은 소리처럼 순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견딘다. 한 번 보고 끝나는 대상이 아니라, 다시 보고 다시 해석되는 구조로 남는다. 해석이 쌓일수록 그 축적은 문명의 기억이 된다. 문명이 스스로를 남기려 할 때 마지막까지 붙잡는 형식은 바로 이미지였다. 늦게 시작한 예술이 가장 오래 남는 이유다.

벽화는 역사 품고, 노래는 기억에 남아

이 지속의 성격은 인류가 무엇을 남겼는지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림이다. 동굴 벽화에는 사냥의 장면뿐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세계관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당시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숭배했는지를 읽는다. 생존의 기술과 믿음의 구조가 하나의 이미지 안에 겹쳐지며,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남기는’ 존재가 되었다.

반면 그 시대의 음악은 거의 알 수 없다. 소리는 사라졌고, 기억은 끊겼다. 악보가 등장한 이후에도 음악은 시대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주되고 해석된다. 같은 곡이라도 의미는 끊임없이 바뀐다. 음악은 현재형으로 존재하며, 그 순간의 청중과 공간에 의존한다. 그래서 음악은 시대를 반영하지만, 시대를 고정하지는 못한다. 역사는 음악을 기억하지 않고, 음악은 역사를 붙잡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자료는 미술이다. 그림에는 정치와 종교, 계급과 권력이 동시에 들어 있다. 미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의 기록이다. 권력은 어떤 이미지를 남기려 했는지, 종교는 무엇을 신성화했는지, 사회는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냈는지가 그림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것은 예술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문명이 작동해 온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할수록 정적으로 변해

실제로 인간 사회의 진화는 이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원시의 인간은 즉각 반응했지만,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멈추는 법을 배웠다. 관찰하고, 판단하고, 축적하는 능력이 생존의 조건이 됐다. 본능적인 반응만으로는 집단을 유지할 수 없었고, 행동 이전에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멈춤은 나약함이 아니라, 문명으로 가는 첫 단계였다.

이 변화는 예술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소리 중심의 문화에서 문자와 이미지 중심의 문화로 이동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진화의 결과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정적인 기록이 필요해진다. 기억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오래 갈 수 없었고, 남겨진 흔적이 권력과 질서를 가능하게 했다. 예술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에서, 구조를 유지하는 장치로 변해갔다.

지금 우리가 이미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인간은 더 이상 빠른 자극이나 즉각적인 반응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속도보다 구조를 자극보다 의미를 요구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의 끝에는 미술이 있다. 이미지는 시간을 늦추고 사유를 호출하며, 무엇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가장 원시적으로 시작된 예술이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중심에 서고 있다.

K-pop은 시작이었고, 끝은 아냐

K-pop은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음악, 산업, 훈련 시스템이 결합해 하나의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K-pop은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성공적인 첫 사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성공 이후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세계는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 어떤 세계관을 그릴 것인가를 묻는다. 음악으로 얻은 신뢰는 미술로 검증된다. 소리는 감동을 주지만, 이미지는 기억을 만든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리듬을 넘어 한국이 바라보는 세계의 형상을 보고 싶어 한다. 그 형상은 유행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축적해 온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여야 한다.

K-pop 이후의 한국 문화는 미술로 향할 것이다. 이는 유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모든 문명은 음악으로 문을 열고, 이미지로 고정해 왔다. 그래서 문화의 중심이 이동하는 방식은 낯선 일이 아니다. 강한 음악 산업으로 세계를 장악했던 나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지를 통해 문명의 깊이를 증명해 왔다. 이제 한국 역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미국 문화의 축, 음악서 이미지로 이동


1970년대 이후 세계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힘의 중심에는 미국 음악이 있었다. 케이블과 위성, 뮤직비디오와 스타 시스템이 결합하며 리듬과 스타일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됐다. 거리의 패션과 청춘의 감정, 소비의 코드까지 음악이 설계했다. 소리는 곧 영향력이었고, 미국은 그 파동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 흐름은 조금씩 달라졌다. 문화의 무게추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와 컬렉터 네트워크가 세계 문화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이미지는 더 오래 남았고, 도시의 브랜드와 국가의 품격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문화 패권은 히트곡의 수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축적했는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은 음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통과하고 있다. BTS가 보여준 성취는 이미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정점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요구한다. 미국이 그랬듯, 이제 우리는 소리 이후에 남을 구조를 준비해야 한다. 세계는 한국의 음악을 듣고 있지만, 다시 한국의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의 변화에 먼저 답하는 나라만이 미래의 기준이 된다.

이미 미래를 살았던 조선 화가들

조선의 화가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 권력과 윤리를 동시에 사유한 지식인이었다. 그림은 그들의 사고 방식이자 세계관이었다. 붓질 하나에는 학문과 정치, 도덕에 대한 태도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림은 장식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유를 정리하는 또 하나의 문화였다. 그래서 조선의 회화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읽고 해석해야 할 사유의 텍스트에 가깝다.

산수화 한 폭에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의 위치가 담겨 있다. 화려함 대신 절제를 택했고, 채움보다 비움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결핍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공존의 질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워낸 공간은 침묵이 아니라, 보는 이의 사유가 들어올 여백이었다. 그 여백 속에서 관람자는 세계 안으로 초대된 존재가 된다.

겸재 정선은 산을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이는 자연을 관념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과 글씨는 형태보다 사유의 구조를 앞세웠고, 김홍도는 인물의 표정보다 삶의 장면과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려 했다. 이들은 그림을 꾸미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사상가에 가까웠다.

이 미학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다시 도달하려는 지점이다. 한국 미술은 낙후된 전통이 아니라, 한 번 미래를 앞서 살았던 경험이다. 속도와 과잉의 시대가 지나면서, 세계는 다시 절제와 여백의 가치를 찾고 있다. 조선의 그림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아직 다 소진되지 않은 사유의 자산이다. 지금 우리가 그 가치를 다시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회귀가 아니라 재도약에 가깝다.

미술이 강했던 시대의 조건

미술이 융성했던 시대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미술이 장식이 아니라 사고의 도구였고, 화가가 기술자가 아니라 사상가였다. 그림은 권력의 취향을 꾸미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화가는 손보다 머리를 먼저 쓰는 존재였고, 붓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미술은 시대의 표면이 아니라, 시대의 깊이를 드러냈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에서 미술은 종교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는 학문이었다. 화가는 장인이 아니라 철학자에 가까웠고, 그림은 신과 인간, 자연의 질서를 사유하는 도구였다. 송대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인화는 기술보다 인품과 사유를 중시했고, 그림은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이 시기 미술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감각이 아니라 세계관을 남겼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송대 중국, 조선 전기가 모두 그러했다. 이 시대들의 미술은 지금도 살아 있다. 반복해서 해석되고,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당대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미술이 특정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구조와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미술은 언제나 미래의 독자를 전제로 한다.

반대로 미술이 약해진 시대는 늘 음악이 지배한 시대였다. 당시 문화는 활발했지만 남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다시 그 선택의 지점에 서 있다. 즉각적인 반응과 소비를 택할 것인지, 느리더라도 남는 구조를 만들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소리가 문화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문명을 남기지는 못한다. 어떤 예술에 중심을 둘 것인지가 곧 어떤 시대가 될 것인지를 결정한다.

K-mark, 한국이 남길 문명의 흔적

K-mark는 장르가 아니다. 스타일도 아니다. 그것은 태도이며 질문이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흔적을 남겼는가를 묻는다. 결과의 외형보다 과정의 밀도를 중요하게 본다. 눈에 보이는 완성도보다,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선택과 망설임을 기록한다. K-mark는 작품이 아니라, 사유가 지나간 자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한국 미술의 힘은 완성보다 과정, 결과보다 반복에 있다. 긋고, 덮고, 지우는 행위 속에 시간이 쌓인다. 이 축적된 흔적이 바로 K-mark다.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고, 수정과 후퇴를 감내하는 태도가 미학이 된다. 실패와 망설임까지 포함한 시간이 화면 위에 겹겹이 남는다. 이 반복의 역사가 한국 미술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다.

K-pop이 소리로 문을 열었다면, K-mark는 그 문 안에 문명을 남겨야 한다. 소리는 지나가지만, 흔적은 남는다. 그리고 문명은 언제나 남은 것 위에 세워진다. 세계는 이제 한국의 리듬이 아니라, 한국의 흔적을 읽기 원한다. 한국이 무엇을 소비했는가보다 무엇을 남겼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K-mark는 그 기준 위에서 한국 미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미술은 재능 아닌 시스템서 완성

오늘날 세계 미술 시장은 연간 수십조원 규모로 움직이고 있다. 뉴욕·런던·파리·홍콩에는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갤러리와 컬렉터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한 나라의 미술은 이 구조 안에서 평가되고 유통된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세계에 진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작가는 갤러리, 비평, 전시, 컬렉션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국동과 삼청동을 중심으로 갤러리 밀집 지역이 형성돼 있지만,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는 세계 주요 미술 도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인 작가의 역량은 충분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키워낼 제도와 시장은 아직 탄탄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능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보호하고 축적할 구조가 부족한 셈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한국 미술은 반복해서 개인의 열정만 소진시키는 구조에 머물게 된다. 세계 무대는 개인의 천재성을 발견해 주는 곳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곳이다. 미술이 개인의 재능을 넘어 제도의 예술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능이 아니라, 그 재능이 오래 살아남을 구조다.

제2의 BTS 만드는 방식은 달라

지금 예원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 기업 회장의 딸 역시, 10년 뒤 BTS처럼 세계를 누비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BTS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탄생하지 않았듯, 다음 세대의 한국 미술가 역시 사회와 국가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 될 것이다. 문화는 개인이 시작하지만, 세계로 나아가는 순간부터는 국가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전 투자다. 음악 산업이 체계적 훈련과 인프라, 글로벌 유통을 통해 K-pop을 만들었듯, 미술 역시 같은 수준의 국가적 안목이 필요하다. 한 명의 천재를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수백 명의 가능성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문화 강국의 조건이다. 미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예술인 만큼, 지원은 더 일찍 시작돼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시간을 이긴 이미지가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는 여전히 그 얼굴을 통해 한국을 읽는다. 완성도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가 남았기 때문이다. K-mark는 새로 만드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의 현대적 이름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언젠가 ‘아이돌 굿즈’처럼 K-mark 작가의 그림이 세계 젊은 세대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K-pop이 한국을 알렸다면, K-mark는 한국을 남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세계의 박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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