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지형이 이미 숫자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1일, 텍사스 18지구 연방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크리스천 메네피가 승리하면서, 공화당이 유지하던 하원 다수는 이제 4석 차로 줄어들었다. 435석 중 단 4석 차라는 것은, 하원이 사실상 ‘과반 붕괴 직전 상태’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기반은 아직 중간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구조적으로 취약해졌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선거가 보여준 유권자의 방향이다. 메네피는 보편적 의료, 강경 이민 정책 반대,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이라는 노골적인 반트럼프 메시지로 승리했다. 같은 날 텍사스 주상원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섰다.
이는 중간선거가 단순한 정권 평가가 아니라 트럼프 체제에 대한 구조적 반격으로 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오는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는 단순한 의회 선거가 아니다.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한 인물의 정치적 생존을 가르는 분수령이자, 세계 질서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정치적 지진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이 선거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하원과 상원, 즉 입법 권력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곧 대통령의 손발을 묶을 것인지, 풀어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실상의 신임투표다. 그래서 중간선거는 언제나 백악관보다 더 무서운 정치 이벤트다.
미국 중간선거의 구조는 대통령에게 매우 불리하게 설계돼있다. 하원 435석 전원과 상원 100석 중 약 3분의 1이 동시에 다시 뽑히며, 현직 대통령의 정당은 거의 항상 참패한다. 이는 정치적 우연이 아니라 제도적 효과다. 유권자는 대통령선거에서 권력을 몰아준 뒤, 중간선거에서 그 권력을 의회로 다시 나눠주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이 구조 속에서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이 승리할 확률은 매우 낮다.
게다가 지금의 공화당은 구조적으로 더 불리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이민, 외교, 법치, 그리고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 논란까지 동시에 여러 개의 정치적 전선을 만들고 있다.
이런 이슈들은 대통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중간선거에서 결정적인 교외 지역과 무당층 유권자를 대거 이탈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중간선거는 열성 지지층이 아니라 ‘피로한 다수’가 결과를 만든다.
특히 공화당이 방어해야 할 하원 지역구의 상당수는 트럼프식 강경 노선에 피로감을 느끼는 교외 중산층 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2020년 대선 이후 이미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졌고, 2024년 이후에도 그 흐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관세 전쟁과 이민 강경책은 농촌과 일부 보수층을 만족시킬지 몰라도, 물가와 주택, 교육을 중시하는 교외 유권자에게는 부담이다. 이 구조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지키기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상원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 경선 구조는 중도 확장력이 있는 후보보다 충성도가 높은 강경 후보를 양산하고 있다. 이는 당내 경쟁에서는 유리하지만, 본선에서는 민주당에 약점을 제공한다. 중간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후보의 지역 경쟁력인데, 트럼프식 후보 공천은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를 잃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상원 역시 박빙이거나 민주당 우세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이 결과는 곧 미국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트럼프 행정부를 정면으로 제어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트럼프 자신이 “중간선거에서 지면 탄핵이 온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계산 때문이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즉시 청문회, 조사, 예산 통제, 그리고 탄핵 발의라는 네 개의 무기를 꺼낼 수 있다. 외교·통상·방산 계약은 모두 재검증 대상이 된다. 대통령의 서명보다 위원회의 보고서가 더 중요한 시대가 시작된다. 중간선거 패배는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약화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 결정 구조가 통째로 바뀌는 사건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문제가 시작된다. 지금 이재명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대미 투자, 방산, 공급망, 북핵 문제를 놓고 집중적으로 협상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 합의들은 1년도 채 안 되는 ‘정치적 유효기간’을 가진 계약이 될 수 있다.
의회가 바뀌면, 이 합의들은 언제든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만약 한국이 트럼프와만 계속 가깝게 지낸다면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외교적 공백에 빠질 수 있다. 민주당 의회는 트럼프와 맺은 합의들을 정치적 거래로 재정의할 것이고, 한국과의 투자·방산·통상 계약은 청문회와 보고서의 대상이 된다.
미국 정치에서 외국 정부는 언제나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 놓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부터 플랜B가 없으면 안 된다. 플랜B는 트럼프를 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트럼프 체제가 흔들릴 때 한국이 함께 끌려 내려가지 않기 위한 외교적 보험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 백악관과 의회를 함께 상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 정치의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는 당사국이 된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와 외교·통상·군사 관련 상임위원회와의 접촉은 조용히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중간선거 이후에 움직이면 이미 늦다.
다행히 한국 정치에는 이 자산이 있다. 한국의 민주당 계열 정부들은 역사적으로 미국 민주당과 비교적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다. 인권, 기후, 다자주의, 동맹 관리라는 공통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가 이 채널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교적 보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지만, 중간선거는 그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의 트럼프는 강해 보이지만, 중간선거 이후에는 의회라는 벽에 부딪힐 수 있다. 그 순간 미국의 모든 파트너는 새로운 창구를 찾아야 한다. 한국만 그 준비가 없다면, 외교적 비용은 치명적으로 커진다.
한국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지금의 트럼프와 거래하되, 동시에 민주당과도 미래의 거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투트랙이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한쪽에만 기대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도박이다. 워싱턴이 흔들릴 때 서울은 두 개의 계산기를 동시에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만 두드리는 순간, 한국은 계산 대상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