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지상군을 투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압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적 권력 이양이 가능해질 때까지 미국이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군사작전이 아니라, 주권 국가를 사실상 관리 대상으로 선언한 장면이었다.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넘기기 어려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유독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타이밍 때문이다.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하며 한·중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좌표를 조정하려는 국면에, 미국은 힘의 정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동맹 관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 겹쳐진 것이다.
동맹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강대국의 세계관에는 늘 간섭의 충동이 깔려 있다.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쌓일수록, 개입은 조심스러움 대신 노골성을 띤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은 그 확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이번 작전을 ‘정의의 실현’으로 포장했다. 마약과의 전쟁, 불법 독재자, 자위권이라는 명분이 차례로 동원됐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정의는 늘 앞에 서고, 무력과 통제는 뒤에서 결과를 완성해 왔다. 명분은 말로 남고, 현실은 힘으로 정리되는 구조는 낯설지 않다.
이번 사건의 구조는 오래된 공식에 가깝다. 명분은 인권과 질서, 수단은 군사력, 결과는 통치의 주도권이다. 이 방식은 베네수엘라 이전에도 반복돼왔고, 그때마다 국제 질서는 더 불안정해졌다. 질서를 만든다는 명분이 오히려 무질서를 키우는 역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석유 인프라 재건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회사들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해 산업을 복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건이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국제정치에서는 종종 지배의 다른 이름이었다. 자원을 쥐는 순간, 주권은 형식만 남는다.
국제사회는 즉각 반응했다. 유엔은 이번 군사 행동이 국제법 질서에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규칙은 합의되지만, 선례는 복제된다. 강대국이 만든 선례는 언제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된다.
그 선례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인 쪽이 북한이다. 북한은 미국의 행동을 “불량배적 본성”이라 규정하며 주권 침해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국제사회를 향한 외교적 항의라기보다, 김정은 자신을 향한 공포의 반사 작용에 가깝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장면은 북한 지도부에 “미국이 마음먹으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는가”라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지도자를 직접 체포·압송하고, 국가를 대신 운영하겠다는 선언은 김정은 체제가 상정해 온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의 장면으로 끌어당겼다. 베네수엘라는 타인의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예고편처럼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공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출됐다. 김정은은 베네수엘라 사태 직후 핵 발사체를 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베네수엘라를 향한 연대 표시가 아니라, 자신은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대상’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신호였다. ‘나를 베네수엘라처럼 다루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북한의 반응은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본능이다. 미국이 지도자를 체포하는 장면을 연출한 순간, 김정은은 그 다음 대상이 자신일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핵은 외교 카드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마지막 보루로 다시 꺼내졌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고 평양에서 미사일로 답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 통제에도 결정적인 명분을 제공했다. 외부 위협이 실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군사 우선 노선과 핵 무장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포장된다. 체제 결속은 쉬워지고, 이견은 안보의 이름으로 정리된다. 국제정치의 한 장면이 북한 내부 정치의 도구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외교와 시점이 겹쳤다는 점은 북한을 더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며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장면 위에, 미국의 강경한 군사 개입 사례가 덧씌워졌다. 김정은은 대화 국면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빠르게, 더 크게 반응할 필요를 느꼈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반미 제스처라기보다 자기 방어 선언에 가깝다. 미국이 보여준 것은 체제 전복의 가능성이었고, 북한이 보여준 것은 그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이 두 메시지가 충돌하는 공간이 바로 한반도다. 그래서 위험은 증폭된다.
한반도의 위험은 직접적인 충돌보다 사고방식의 전염에서 커진다. 강대국이 지도자 체포와 통치를 정당화하면, 상대는 생존을 위해 더 강한 억지력으로 대응한다. 그 악순환은 어느 한쪽의 선의로 멈추지 않는다. 구조가 그렇게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4월 방중 국면에서 그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과연 높아졌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낮아졌을까? 지도자를 체포하고 국가 운영까지 언급한 장면은 김정은에게 협상의 유혹이 아니라 경계의 신호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말로 질서와 정의를 말하고 싶었다면, 군사작전이 아니라 다자적 정당성과 국제 사법 공조를 앞세울 수 있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질서 회복을 목표로 삼았다면, 단계적 제재와 국제기구 중재라는 선택지도 열려 있었다.
최소한 지도자 체포를 군사작전이 아닌 법 집행의 외형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재건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었다. 특정 국가의 기업이 아니라 국제 컨소시엄을 통한 투명한 관리구조를 제시했다면, 약탈이라는 의심 대신 책임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힘으로 만든 질서는 짧지만, 정당성 위에 세운 질서는 오래 간다. 이 단순한 교훈은 반복해서 무시돼왔다.
한국은 이 장면에서 분명한 교훈을 읽어야 한다. 동맹은 필요하지만, 맹목은 위험하다. 외교 다변화는 추진하되, 위기 관리와 원칙 설정은 더 정교해야 한다. 동맹 안에서도 개입과 자율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방중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필요가 오해로 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미·중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줄타기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과 예측 가능한 외교다. 기준 없는 유연성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된다.
베네수엘라는 지리적으로 멀다. 그러나 강대국이 만든 선례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오늘은 중남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내일은 동아시아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국제정치가 다시 힘의 논리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방관하면, 선례는 곧 규칙이 된다. 그리고 그 규칙은 늘 약한 쪽의 부담으로 작동한다. 한반도의 위험은 언제나 남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베네수엘라는 남의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