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대가> 휘감는 파우스트 속성

2025.12.15 15:43:11 호수 1562호

무엇으로 악마 유혹 이겨내는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자백의 대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파우스트>의 주제 의식을 재현한다. 단기적 이익을 매개로 이어지는 악마의 유혹은 결국 다른 수렁으로 연결된다. <자백의 대가>는 수렁에서 헤어나올 절대적인 원동력이 무엇인지 확인시켜 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12부작 드라마 <자백의 대가>는 지난 5일 공개됐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지난 7일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청불 1위

<자백의 대가>의 중심 소재는 살인사건이다. 주인공 안윤수(전도연 분)는 남편 살해 용의자로 지목됐고, 모은(김고은 분)은 치과의사 부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다. 구치소에서 만난 이들이 모종의 합의를 하면서 서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자백의 대가>를 관통하는 핵심은 제안과 선택이다. 모은이 안윤수에게 제시한 거래는 “사건을 대신 자백해주겠다”는 것이다. 요구한 것은 모은이 지목하는 사람을 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작중 모은은 뛰어난 지략을 토대로 상황을 조종하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할을 한다. “대신 자백해주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이다.


악마의 유혹엔 대가가 있다.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 제시한 조건이 살인이란 것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안윤수는 모은과의 거래를 합의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이어지는 것은 선택과 그에 따른 또 다른 수렁이다.

이는 마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파우스트>의 중심 소재는 현자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거래다. 파우스트는 젊음을 되찾고 명예와 부, 쾌락을 누린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제시한 거래 조건은 “순간이여, 멈춰라! 넌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한 순간 영혼을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지 않더라도, 명백하게 타락하면 영혼을 넘겨야 했다.

파우스트가 거래 조건이 되는 말을 했음에도 신의 구원을 받아 영혼을 지킬 수 있었던 계기는 끝없는 지적 욕구를 가졌단 것이었다. 지적 욕구는 파우스트가 초인적인 의지를 갖추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선택과 수렁…이어지는 뫼비우스 띠
선 굵은 누명·도주가 핍진성 조성

이에 대해선 중심 사조가 신학에서 과학으로 바뀌던 당대 상황과 연계되는 해석이 많다. 누군가는 파우스트의 끝 없는 지적 욕구를 매개로 계몽주의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반대로 “파우스트는 원래 구원될 예정이었다”는 신학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괴테가 바라봤던 초인의 기준이다. 타락의 위험에 빠지지 않은 원동력은 결국 근대적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인 지적 욕구였다.

현대에 이르러 <파우스트>는 순간의 단기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사람을 비유하기 위해 활용된다. <자백의 대가>에서 수렁에 빠지는 등장인물들도 대체로 단기적 이익을 거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악수를 둔다. 작품 제목도 <파우스트>를 연상시킬 만하다.

안윤수는 의미심장하게 설계됐다. 작품 초반엔 상황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는 경험이나 능력이 없는데도 단기적 이익 때문에 연이은 수렁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윤수에게도 파우스트처럼 초인적 의지를 제공하는 절대적인 원동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윤수는 파우스트가 아닌 듯하면서도 파우스트를 향해 나아간다.


<자백의 대가>는 12부작 특성상 호흡이 길어서 반전 요소가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호흡이 길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산만해져서 호불호가 갈릴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긴 호흡은 작품의 서사를 매끄럽게 해주는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서사가 매끄러워졌고, ‘남편 살해’라는 누명은 시청자에게 핍진성을 부여한다. 누명·추적극 특성상 핍진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장르의 교본은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9년 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거론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선 누명·도주가 선 굵게 이어지면서 핍진성을 부여한다. 주인공이 처한 위험이 핍진성의 핵심이었다. <자백의 대가>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정립한 누명을 소재로 한 스릴러 요소들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꼼꼼하게 이어지는 믿음의 위기
뚝심 있게 유지되는 주제 의식

작품에서 의미심장한 캐릭터는 안윤수를 구속한 검사 백동훈(박해수 분)과 안윤수의 변호인 장정구(진선규 분)다. 백동훈은 세간에서 인식하는 검사의 고정관념이 그대로 반영돼 초반엔 통찰력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백동훈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캐릭터로 바뀐다. 작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핵심 매개체는 진실을 향한 변화와 몸부림이다. 결국 백동훈도 파우스트를 매개로 설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정구는 권투 선수 출신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아 1980년대를 풍미한 권투 선수 장정구를 빗댄 캐릭터로 보인다. 장정구는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15차 방어전까지 치러낸 후 은퇴했다.

<자백의 대가>의 장정구는 작중 유일하게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안윤수가 누명을 쓴 이후 계속 맛보는 것은 배신이었다. 모은이 마치 만화 <데스노트>의 등장인물처럼 전지전능을 꿈꾸는 인물처럼 바뀐 이유도 세상의 배신이었다.

작품 내에서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조연들에게도 파우스트의 속성이 부여된다. <자백의 대가>는 조연들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묻는다. “공권력이 믿음을 부여한 사법기관의 결론과 결백을 호소하는 친구에 대한 믿음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딜레마는 누명을 소재로 한 스릴러 작품의 단골 소재다.


<자백의 대가>는 그 단골 소재를 묘사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흔히 빠질 수 있는 믿음에 대한 위기를 꼼꼼히 묘사해 현실성을 부여한다.

<자백의 대가>는 공개 이틀 전인 지난 3일 시사회를 진행됐다. 시사회에선 초반 3부만 공개됐다. 이 때문에 “몰입도는 높지만, 늘어지는 부분도 있다”는 평이 다수 나왔다. <자백의 대가> 초반은 안윤수·모은·백동훈에게 모호한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시청자와의 게임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빌드업이었다.

정체성 확립과 선 굵은 반전은 중반 이후 제시된다.

현실성 부여

등장인물 모두를 혼란에 빠트린 계기는 최후반에 등장한다. <자백의 대가>는 그 계기를 제시하면서도 끝까지 단기적 유혹을 받아 거래하는 <파우스트>의 속성을 유지한다. 작품의 주제 의식을 최후반까지 유지하는 뚝심도 <자백의 대가>가 호평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자백의 대가>가 말하는 ‘자백의 대가’는 유혹이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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