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전 사유지 강제수용 논란

2025.12.01 11:35:07 호수 1560호

재판 깨지고 막장 히든카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국전력공사가 사유지 불법점유로 대법원에서 패소하자, 해당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 절차에 착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의 시설물 철거 명령에도 한전은 이행을 미루며 시간 끌기에 돌입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A씨는 2022년 부지를 매입한 뒤 진행한 측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마주했다. 토지 전면부에 설치돼있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연소방지시설 일부가 자신의 소유지 안쪽으로 약 11㎡가량 넘어와 있었던 것이다.

사업장 침범

매입 당시 A씨는 매도인에게 “국공유지 위에 설치된 시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A씨는 이를 그대로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 경계 측량을 하기 전까지는 시설물이 사유지를 침범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설물 일부가 경계선을 넘어와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A씨는 한전에 시설 철거와 원상회복을 요구하게 된다. A씨는 “그 땅이 소유지에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매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계약금이 지급된 뒤였고, 이때부터 한전과의 분쟁이 시작됐다.

문제의 시설은 한전 지중 전력구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로 토지 전면부에 자리해 있어 세차장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시설물이 입구 회전 구간을 차지하면서 차량이 진입하려면 시설물을 피해 여러 번 꺾어 들어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동선 확보가 어려워졌고, 일부 차량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아울러 A씨는 세차장 설계 과정에서 이 구조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베이 수(차량 1대가 들어가는 세차 칸)를 줄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초기 계획은 6~7개의 세차 베이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차량 동선이 연소방지 시설에 막히면서 회전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도시계획위원회 역시 베이 수를 줄이도록 권고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5베이로 축소 설치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사업성이 낮아지고 운영상의 제약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입구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였다. 최초에 입구 후보지는 두 곳이었지만 한 곳은 이미 인접 토지 소유자가 진출입로로 사용하고 있어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협조를 얻을 수 없어 남은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전이 “반대편으로 입구를 내면 된다”고 주장하자, A씨는 해당 방향이 북향이고 겨울철 결빙 위험이 큰 점을 근거로 반박했다. 세차장은 물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북향 구조는 사고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시설 철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A씨는 결국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토지 무단 점유, 대법원 최종 패소
1심 패소 직후 강제수용 절차 돌입

초기에는 영업손실 및 부당이득 반환 청구도 함께 진행했지만, 손해액 산정을 위한 감정 절차가 길어질 수 있다는 변호사 조언에 따라 소송은 철거 및 토지 인도를 중심으로 조정됐다. A씨는 “보상보다는, 침범된 토지를 온전히 다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철거와 토지 인도만 진행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지난해 1심에서 한전의 무단 점유를 인정했다. <일요시사>의 취재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은 “연소방지시설을 철거하고 토지를 원상 회복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전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종전 소유자와 체결한 승낙 또는 사용관계가 새로운 소유자인 원고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침범 사실에 대한 한전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전은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해 판결은 2025년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시설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법원에 간접강제를 신청했고, 법원은 한전이 시설 철거를 지연할 경우 월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전은 이에 항고하면서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제출했고, 1500만원의 담보금을 공탁해 일시적으로 강제집행을 멈춰 세웠다.

A씨는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철거를 이행하지 않았다. 한전이 철거를 하지 않기 위해 강제집행정지 신청까지 하며 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한전은 조정을 시도했다. 조정 과정에서는 양측의 입장이 크게 갈렸다. 해당 지자체 관련 조례상 토지 분할 시 적용되는 최소 분할 면적은 60㎡다. 이에 따라 한전은 “11㎡ 침범분을 포함해 최소 분할 면적인 60㎡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A씨 측은 이 같은 산정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A씨 측 변호사는 “일부가 잘려나갈 경우 진입로와 전면부 구조가 훼손돼 잔여지 가치가 하락한다”며 “영업상 손실 및 잔여지 가치 하락을 반영하지 않는 매입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A씨 “사업장 운영에 방해 된다”
한전 “시설 철거·이전 불가능”

A씨 역시 “그 11㎡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지고 베이 수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오히려 더 넓은 60㎡를 잘라가는 것이 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해당 토지는 도로와 맞닿아 있는 전면부로, 잘려나가면 진출입로 자체가 영향을 받는다”며 “그 11㎡가 소중하기 때문에 소송한 것인데, 그보다 넓은 면적을 가져가겠다는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조정은 불성립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조정이 진행되던 시기, A씨는 포천시로부터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한전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한전이 해당 토지를 ‘공익사업 대상 부지’로 지정해 강제로 취득할 수 있는 절차의 첫 단계로, 강제수용 절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신청 시점은 1심 패소 직후 바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원개발사업은 송전선로, 변전소, 지중 전력구 등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업으로, 필요할 경우 사유지 강제수용도 가능하다.

연소 방지 시설이 지중 전력구 보호 설비인 점을 고려할 때, 한전은 이를 근거로 강제수용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수용 절차는 산업통상자원부 승인 여부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심리 등을 거쳐 최종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한편, 한전 측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입장을 밝혀왔다. 한전 경인건설본부 담당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유지 침범 사실 확인 후 협의를 통해 토지를 매입하려고 했고, 장기간 협상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해당 시설의 대체 부지를 찾기도 어렵고 철거를 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불가

반면 A씨는 대법원에서 이미 무단 점유가 확정됐음에도, 철거 대신 강제수용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잘못 설치한 시설이라면 철거하는 것이 순서인데, 오히려 토지를 가져가는 절차가 진행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협의 과정에서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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