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한 달 앞당겨진 대기업 임원 인사

2025.11.11 09:55:31 호수 0호

대기업 임원 인사 시계가 올해는 한 달 앞당겨졌다. 지난달 30일 SK가 포문을 열었고, 지난 7일 삼성전자가 세대교체 인사를 시작했다. LG는 이달 중순, 롯데는 조기 인사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 시대에는 속도가 경쟁력”이라는 말은 기업 인사의 새로운 격언이 됐다.



그러나 속도는 경쟁력이 될 수 있어도 방향이 되지는 않는다. 2025년의 임원 인사는 단순한 승진 명단이 아니라 각 기업의 철학과 생존 전략을 비추는 거울이다.

올해 임원 인사 신호탄은 SK가 쐈다. 이형희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리밸런싱’과 ‘AI 전환’을 앞세웠다. 각자대표 체제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화했지만, 빠른 변화 뒤에는 ‘사람의 피로’가 남는다. 성과 중심의 개편이 ‘사람 중심의 회복력’을 잃으면 조직은 기계처럼 돌아가지만, 사람은 멈춘다.

인사는 칼이 아니라 나침반이어야 한다.

삼성의 임원 인사는 세대교체와 시스템 복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정현호 부회장이 이끌던 사업지원T/F가 ‘사업지원실’로 정식 복귀하며 그룹 컨트롤타워가 부활했다. 신임 실장에는 박학규 사장이 앉았다. AI 반도체, 고대역폭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등 세계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삼성의 관심사는 “누가 오르느냐”보다 “어떤 질서로 묶느냐”에 있다.

LG는 구광모 회장이 말한 “골든타임은 짧다”는 경고가 현실이 됐다. LG는 이번 임원 인사에서 세대교체와 실험이 불가피하다. AI, 로봇, 모빌리티, 우주산업으로 뻗어나가려면 인사도 실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외부 영입 피로감과 내부 경쟁 구도는 여전하다. 성과보다 ‘눈도장’이 앞서면 혁신은 불신으로 바뀐다.


롯데는 지난해 전체 대표의 31%를 교체하며 대규모 변화를 단행했지만, 결과는 제한적이었다. 올해는 선별적 교체가 예상된다. 화학은 부진이 길고, 유통은 구조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부 영입으로 실적 개선이 미비한 일부 계열사와 내부 리더의 의견을 묵살하는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인사는 ‘교체’가 아니라 ‘순환’에 머문다.

올해 임원 인사는 유난히 빠르다. 기업들은 ‘AI 전환’ ‘성과 중심’ ‘기민한 구조조정’을 외치지만, 그 속도에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조직은 사람을 잃는다. 성과지표는 기업을 움직이는 숫자지만, 조직의 신뢰를 세우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인사는 효율의 기술이 아니라 온도의 예술이어야 한다. 승진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사람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다.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실패 후에도 다시 일어설 사람을 지켜보는 인사 철학,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올해 임원 인사를 관통하는 단어는 ‘신상필벌’이다. 그러나 이 네 글자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다.

첫째, 외부 영입은 직함이 아니라 철학과 방향을 함께 데려와야 한다. 성과가 없고, 오너만 잘 섬기는 인사는 조직의 균형을 깨뜨린다.

둘째, 실적이 나빠도 바꾸지 못하는 구조는 더 큰 문제다. 지주사의 추천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부진한 임원을 그대로 두는 관행은 ‘책임 회피의 인사’다.

셋째, 30대 임원이나 여성 임원의 발탁이 상징으로 그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진짜 다양성은 자리만이 아니라 권한과 예산, 평가 기준이 따라붙을 때 완성된다.

해외 주요 기업들도 인사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소니는 지난 4월1일 전략·재무통인 도토키 히로키를 CEO로 올려 ‘콘텐츠+AI’ 통합을 가속했고, 오라클은 지난 9월22일 클라우드 부문 수장 2인을 공동 CEO로 세워 기술 중심의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WPP는 9월1일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신디 로즈를 CEO로 영입해 광고산업의 AI·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모두 인사의 속도보다 ‘기술과 리더십의 재구성’이 글로벌 공통 화두다.

세계 경제질서는 많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규제와 관세, 유럽은 환경·통상 표준, 중국은 자본과 속도로 압박한다. 이에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기술의 ‘현장 리더’를 전면에 세우고, 데이터·보안·법무를 C-레벨과 수평 결합하며, 현지 정부·커뮤니티와의 협상 역량을 승진의 결정 변수로 삼는다.


과거엔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의 고향·선후배·학연이 인사 명단에 섞이곤 했다. 올해도 그럴까? 다행히 지금의 시장은 냉정하다. 정치적 인연이 아니라, 사업의 생존이 승진의 기준이 되고 있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임원은 기업의 별이다. 그러나 별이 많다고 하늘이 저절로 밝아지지는 않는다. 궤도가 맞지 않으면 빛은 흩어진다. 인맥으로 별을 달면 하늘이 혼탁해지고, 숫자로만 별을 떼면 조직의 온기가 사라진다.

SK의 리밸런싱, 삼성의 컨트롤타워, LG의 쇄신, 롯데의 선별 인사,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당신은 사람을 평가할 준비가 돼있는가?”

11월 중순까지 각 그룹의 임원 인사 보도자료가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승진자 명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인사가 내일의 회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이냐다.

숫자의 성적표를 넘어 사람의 신뢰를 얻는 인사, 그것이 진짜 ‘신상필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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