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앞서 두 차례 무산됐던 교습시간 연장 논의가 재점화됐다.
최근 서울시의회가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종료 시각을 오후 10시에서 자정까지로 늘리는 조례안을 입법예고하자, 시민단체 등이 반발에 나선 것.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 등은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대착오적이고 모순적인 조례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민정·김문수·김준혁·박성준·백승아·정을호·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을 비롯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의봄, 좋은교사운동,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등 59개 단체가 함께했다.
이들 단체는 “지금 대한민국 교육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쟁교육과 사교육 고통”이라며 “청소년은 입시경쟁으로 심야까지 학원과 스터디카페를 전전하고 있고, 과도한 사교육비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국가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과도한 사교육비 걱정 없이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서울시의원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겠느냐”며 반문했다.
통계에 대해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7~18세 아동·청소년 중 우울증 진료 인원은 지난 2018년 3만190명에서 2023년 5만3070명으로 급증했으며, 같은 기간 불안장애 진료 인원도 2018년(1만4763명) 대비 2만8510명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교육부 집계 결과 초·중·고 학생 자살 사망자 수는 지난 2015년 93명에서 2020년 148명, 2021년 197명, 2022년 194명,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처한 교육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조례안은 나올 수 없다”며 “과도한 경쟁교육이 청소년의 기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현실에서, 심야 교습시간을 연장하자는 조례는 누구를 위한 결정이냐”고 비판했다.
이날 홍순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도 “청소년들은 오후 10시에 귀가해도, 숙제를 마친 뒤에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자정까지 학원 운영 시간을 연장하면 이들의 수면권과 쉼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늘리는 일”이라면서 “서울시의회는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호소했다.
교육당국도 현행 교습시간 유지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습시간을 늘리면 학생들이 힘들어질 수 있고, 학부모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현시대 상황과 맞지 않다”며 “시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설명하고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입법예고된 ‘서울시교육청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은 고등학생의 교습시간을 현행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를, 오전 5시부터 자정으로 2시간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초·중학생은 현행 기준을 유지하며, 학원·교습소·개인과외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표 발의자인 정지웅 서울시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서울시 고등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타 시·도 교육청과의 교육 형평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학원법은 교습 종료 시각을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지역별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로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은 서울 고등학생보다 늦게까지 학원·과외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대전·울산·강원·경남·경북·제주·충남·충북 8곳은 자정, 전남은 오후 11시50분, 부산·인천·전북은 오후 11시까지 교습이 가능하다. 반면 서울·경기·대구·세종·광주 5곳은 오후 10시까지로, 가장 이르다.
일각에선 서울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이 이미 높아 형평성 침해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통계청 ‘2024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서울 고등학생(일반고 기준)의 사교육 참여율은 80.1%로, 전국 평균(70.7%)보다 9.4%p 높다. 서울 등 오후 10시로 수업이 제한된 지역 5곳의 평균 참여율은 77.0%로, 그 이외 지역 12곳(68.1%)보다 높았다.
사교육 참여 시간을 살펴보면, 서울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일반고 기준 주당 10.1시간으로, 전국 평균(7.7시간)와 대도시 평균(8.6시간)을 웃돌았다.
이 때문에 서울의 교습시간을 연장하더라도 실질적 형평성 개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사교육비 부담을 키울 우려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상 교습비는 학원이 등록한 단가와 수업시간을 기준으로 산정되며, 교육지원청별 ‘교습비 등 조정기준’ 등에 따라 운영된다. 기준 상한을 넘기려면 조정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수업 시간이 연장되면 교습비 총액도 비례해서 늘어날 수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미 끝난 사안을 들추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정을호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학습권 보장을 내세운 조례 개정은 그럴듯한 포장일 뿐, 사실상 사교육 경쟁의 합법화”라며 “헌법재판소에서 ‘학원 시간제한’에 합헌 결정을 낸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9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학원 심야교습을 제한하는 지자체 조례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평등원칙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다만 이는 ‘제한할 수 있다’는 근거일 뿐, 연장 금지의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해석이다.
이와 함께 ▲학원 종사자들의 근로시간 ▲심야 민원제기 우려 ▲대중교통 막차 문제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며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정지웅 서울시의원은 오는 11일 서울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이번 사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예고했다. 다만 발제자가 학원연합회 관계자로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은 “학원 측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 아니냐”며 편향성을 지적했다.
서울시에서 교습시간 제한을 손보려 한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008년엔 시의회에서 심야 교습 전면 완화까지 거론됐으나, 청소년 건강권 침해와 사교육 과열 우려가 커지면서 여론의 반발 속에 철회됐다.
이후 지난 2016년엔 초등학교는 오후 9시, 고등학교는 오후 11시 등 단계적 연장안을 추진했지만, 교육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일었고, 정치권 이견이 겹쳐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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