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망신살’ 음주 사망사고⋯효도관광 일본인 모녀 참변

2025.11.04 17:56:59 호수 0호

국내선 “체감 형량 낮다” 기류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효도 관광’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 모녀가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모친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며 일본 현지 매체들도 비판 보도를 내놨고, 국내에선 형량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4일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10시께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의 한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일본인 모녀가 음주 운전 차량에 치였다. 50대 모친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고, 30대 딸은 이마와 무릎 등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운전자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0.08%)을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경찰은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사건은 일본 현지 매체에서도 보도됐다.

일본 방송사 <TV아사히>는 이날 “한국의 인구는 일본의 절반 정도지만 음주 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건수는 6배를 넘고, 재범률이 높다”며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음주 운전 사고는 7만건 이상 일어났고, 사망자는 1000여명에 이르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처럼 동승자나 술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제재 규정이 부재한 점도 음주 운전이 다발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서울시민들은 ‘사고가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법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서도 처벌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승자나 술 제공자에 대한 별도 조문은 없지만, 음주운전처리지침규정 제32조와 형법 제32조(종범)에 따라 방조가 인정되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정부도 음주 사실을 알면서 동승하거나, 음주자에게 키를 건네 운전을 부추긴 경우 등을 방조 판단의 예시로 안내하고 있다.

SNS에는 피해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글 작성자는 “한국에서 어머니가 음주 운전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언니도 무릎 골절과 이마가 10cm 정도 찢어지는 등 심각하다”며 “한국에선 일본과 달리 강력하게 처벌할 수 없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법조계에선 양형 현실을 손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A씨의 과실만으로 발생한 사망사고임에도 법정 최고형인 살인죄로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할 시 사형·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에 처한다. 다만 죄가 성립하려면 객관적인 인과관계 등 이외에도 살해의 고의(미필적 고의 포함)가 인정돼야 한다.

즉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더라도 의도에 따라 죄명이 달라질 수 있다. 정상 운전이 곤란할 정도의 만취는 고의 성립이 어려우며, 대법원에서도 음주운전 사망사고에서 살인의 고의는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실무에선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이 적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위험운전치사상 역시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법정형은 사망 시 ‘무기 또는 징역 3년 이상’으로 강하게 규정돼있으나 법원 선고가 수년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체감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인천지방법원은 면허정지 상태에서 음주 과속 운전으로 2명을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8년에 벌금 30만원형을 선고했다. 동승해 키를 건네는 등 범행을 도운 친구에게는 음주 운전 방조로 징역 8개월이 선고됐다.

일본도 음주로 정상 운전이 곤란한 상태의 사망사고를 ‘위험운전치사’로 다루며, 법정형을 유기징역 1~20년으로 정하고 있다. 최고형 자체는 한국보다 낮지만, 실제 판결에서 비교적 엄격한 실형이 선고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지난 9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 지법은 만 19세 운전자가 음주 후 일방통행 차로 역주행으로 건너편 차량을 들이받아 상대 운전자를 사망하게 한 사건에 대해 위험운전치사를 인정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같은 달 후쿠시마 지법은 신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교차로에 진입해 1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동일한 혐의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일각에선 일본의 과거 사례를 들어, 형량을 높이면 억제력이 커져 범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2000년 4월, 가나가와현 고이케대교에서 경찰 검문을 뿌리치고 시속 약 100km로 도주하던 음주 운전 차량이 보도 위 대학생 2명 들이받았다. 두 명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당시 가해 운전자는 음주뿐만 아니라 무면허·무보험 상태였다.

당시 요코하마 지법은 가해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5년6개월형을 부과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형이 가볍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유가족의 서명운동에도 37만여명이 참여해 ‘위험운전치사상’이 신설 등 처벌 체계 강화가 추진됐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화 이후 음주 운전 사망사고 건수는 지난 2001년 약 1200건에서 2008년 305건이 돼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후 추세를 이어가 지난 2021년엔 152건으로 줄었다. 물론 이 같은 결과엔 단속 강화, 캠페인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강화 입법이 하락 추세의 주요 계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음주 운전은 예방 역시 중요하며, 한국에선 이를 위한 법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음주운전 방지장치(시동잠금장치) 제도는 5년 내 2회 이상 적발자는 면허 재발급 이후 일정 기간 장치 부착 차량만 운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동잠금장치는 운전자의 호흡을 측정해 기준치 이상 알코올이 검출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를 어기고 일반 차량을 운전할 시, 무면허 운전과 동일하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재범자 대상의 사후적 장치라는 한계가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음주 운전 자체가 불법인 만큼, 전 차량 시동잠금장치 의무화 등 보편적 억지 장치가 더 큰 예방효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고가 난 뒤의 처벌만으로는 대응이 제한적이므로, 사전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외에도 지난 21대 국회 때 제안됐던 특수번호판 제도(일명 ‘빨간 번호판’)를 다시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상습 음주 운전자의 차량에 특수번호판 부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당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2022년),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지난 2023년) 등이 도로교통법·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잠만 자다가 임기만료로 결국 폐기됐다.

<kj457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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