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시사펀치> 새벽을 멈출 것인가? 바꿀 것인가?

2025.11.04 09:12:22 호수 0호

심야 시간인 오전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중단하자는 택배노조의 요구가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지난달 29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최소한의 수면과 건강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새벽 배송 제한을 공식 선언했다.



과로사, 뇌출혈,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졌던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멈춰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출범시킨 ‘택배 사회적대화기구’로 넘어갔고, 여기서 합의가 나오면 사실상 내년부터 새벽 배송 중단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200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는 반발한다. 이미 새벽 배송은 편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동탄·송도·김해 같은 신도시, 대형마트가 부족한 지역, 늦은 밤까지 아이를 재우고 장을 보는 워킹맘들에겐 생존형 서비스다.

한국노총조차 “새벽 배송 전면 중단은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노동권과 소비자권, 두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커머스 업계도 “심야 배송 중단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새벽 배송은 전날 밤 농가와 공장에서 물류센터로 물건이 들어오고, 밤새 분류 작업을 거쳐 오전 7시 전에 배송되기 때문에 오전 0시부터 5시 까지 근무가 필수라는 것이다.

심야 배송을 막으면 소비자 불편뿐 아니라 물류센터·배송 기사 수천명의 일자리도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논쟁은 정치의 무대로도 옮겨갔다. 지난 3일 저녁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의원이 생방송으로 ‘0~5시 새벽 배송 금지’ 문제를 놓고 맞짱토론을 벌였다.

한 전 대표는 “이 규제가 소비자 선택권과 야간 물류업 종사자의 일자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장 전 의원은 “새벽 배송이 노동자 과로와 안전 문제를 내포했다”며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고, 한 전 대표는 이에 구체 대응책 없이 반대만 한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은 ‘소비자 VS 노동자’ ‘선택권 VS 규제’라는 쟁점 아래 팽팽하게 맞섰으며, 야간·새벽 물류 노동의 구조 변화와 산업 생태계 차원까지 확대하며 토론에 임했다.

그런데 이 논쟁의 더 큰 모순은 국회에 묶여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만들어냈다. 이 법은 대형마트가 오전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도, 배송도 못하게 막고 있다. 하지만 쿠팡은 온라인이라는 이유로 이 규제를 피해가며 새벽 배송을 선점했다.

사람들은 전통시장 대신 앱을 켜고, 카트를 끌기보다는 스마트기기를 클릭하고, 물건을 기다리기보다 당일·새벽 도착을 요구한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마트 문을 닫게 하고, 택배 트럭의 시동까지 막았다.

쿠팡은 이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플랫폼 기업이기에 유통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쿠팡의 로켓배송과 새벽 배송은 혁신이라기보다 규제 밖의 영역을 선점한 결과다.

반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이른바 대형 유통 3사는 “매장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새벽 배송을 하지 못한다. 같은 물건을 같은 도시로 보내도, 쿠팡은 24시간 가능하고 대형 유통사는 0~10시 내 트럭도 움직일 수 없다.

결과는 뻔하다. 매장을 가진 유통사들은 적자가 커지며 새벽 배송을 축소했고, 롯데마트는 아예 서비스를 접었다. 네이버, G마켓, 11번가 등도 속도 전쟁에서 밀려났다. 결국 새벽 시간은 쿠팡 중심이 됐고, 이건 시장이 만든 게 아니라 정부가 만든 독점 구조인 셈이다.

정부는 이를 방치했고, 국회는 유통법 개정안을 1년 넘게 책상 위에 묶어두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유통시장은 ‘쿠팡의 트랙’이 돼버렸다. 쿠팡의 독점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유통법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 시대에 머물러 있고, 유통법은 플랫폼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해법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심야 배송을 전면 금지할 것이 아니라, 탄력근무제·심야수당·주1회 휴식제 같은 현실적인 안전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유통법을 개정해 대형마트도 새벽 배송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쿠팡에 맞서기 위한 물류 인프라 전략도 필요하다.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 등 대형 물류 3사와 이커머스 기업이 연대해 공동 풀필먼트·공동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새벽 배송의 본질은 ‘속도가 아닌 구조’다. 노동자의 잠을 빼앗는, 소비자의 새벽을 지배하는 구조다. 또 국회의 시간은 멈췄는데 시장의 시간만 달리고 있는 구조다.

필자는 지금 필요한 건 ‘새벽을 멈추는 법’이 아니라 ‘새벽을 바꾸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선택해야 할 것은 규제가 아니라 균형이며,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일이다.

새벽은 늘 어둠과 빛 사이에 있다.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택배 차량의 시동이 아니라, 낡은 법과 늦은 정치다. 새벽을 멈출 것인가, 새벽을 바꿀 것인가. 이제 선택은 국회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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