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농어촌 기본소득, ‘포플리즘’인가 ‘농어촌 살리기’인가

2025.10.27 10:13:13 호수 0호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겉으로 보기엔 훈훈한 정책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은 농어촌에 매달 15만원씩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은 농어촌 살리기의 상징처럼 들린다. 연천, 정선, 청양, 순창, 신안, 영양, 남해 등 7개 군이 그 실험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 사업이 정치적 상징과 정책적 실효성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문제는 매달 15만원, 1년 180만원. 그 돈이 지역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현금이 아니라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비도 어렵다. 지역 상권에 돈이 돌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질적 구매력은 제약된다. 현금 대신 쿠폰을 쥐어준 격이다.

매달 15만원은 하루에 5000원 꼴로 농어촌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나 소멸 위기를 막기엔 더더욱 미약하다.

재정 구조의 불균형도 문제다. 국비는 전체의 40%뿐이고, 나머지 60%는 지방비다. 이번에 선정된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10% 내외로 매우 열악하다. 즉 추가 지출은 곧 다른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일부 군은 도로 유지보수나 농업보조금 예산을 줄여야 할 처지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정책을 내세우며 재정 부담을 지방에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효과 검증도 모호하다. 정부는 인구 변화, 지역경제 활성화, 공동체 복원 등을 지표로 들었지만, 이들과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인구가 늘었다면 그게 기본소득 때문인지, 귀농 정책 때문인지, 아니면 인근 도시에서 밀려온 이주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연천 청산면의 3.4% 인구 증가 사례도 이주 전입 효과일 뿐 소득정책의 결과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정부가 신안군은 태양광, 정선군은 강원랜드 배당금, 영양군은 풍력기금을 재원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수익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크다. 발전기금이 줄면 기본소득도 줄어야 하는 구조다.

결국 지속 가능성보다 일회성 시범사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 수익이 주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또 30일 이상 거주자만 지급 대상이기 때문에 계절 근로자, 귀농 준비자, 주민등록 미이전자가 제외되는 것도 농어촌의 실질적 유입층은 배제되고 기존 거주자 중심의 보상성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선 젊은 세대나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농어촌으로 갈 이유가 없다. 인구를 늘리기보다는 기존 주민에 상품권을 돌리는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 해법 부재다. 일자리 부족, 의료·교통 인프라 붕괴, 청년 유입 저조, 농업의 저수익성 등 농어촌이 무너지는 근본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매달 15만원으로 병원을 세울 수도, 학교를 살릴 수도 없다. 도로·통신망·물류 등 기본 인프라 개선 없이 돈만 뿌린다면, 정책이 멈추는 순간 농어촌은 다시 멈출 것이다.

시범사업 대상에서 충북만 유일하게 빠진 것도 문제다. 충북의 인구소멸지역 대부분이 공모에 참여했는데도, 한 곳도 선정되지 않은 것은 정부의 균형 발전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고, 결국 충청 홀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업을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의 강화라는 지적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결국 이번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현금 나눠주기와 구조적 개혁 사이의 시험 무대가 된 셈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단기 소비 촉진이 아닌, 장기적 지역 회복의 발판이 되려면 인프라, 청년 정책, 산업 생태계 재편과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 상품권이 아니라, 지역의 일자리·교육·의료·문화 생태계를 살려내는 종합정책으로 확장돼야 한다.

‘농어촌 주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이라는 구호는 정치적으로는 아름답지만, 행정적으로는 위험하다. 돈으로 시간을 벌 순 있어도, 돈으로 농어촌의 미래를 살 순 없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정치적 상징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존으로 가려면, 정부는 돈보다 구조를, 포플리즘보다 지속성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농어촌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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