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노소영 재판 파기환송, 성평등가족부 입장은?

2025.10.22 09:22:44 호수 0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파기환송심이 지난 21일, 서울고법 가사1부에 배당됐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6일, 최 회장의 상고를 받아들여 SK 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을 전제로 한 2심 판단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 액수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새롭게 결정하게 된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 핵심은 단순히 액수가 아니라, ‘노 관장의 자산 형성 기여도’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기여를 폭넓게 봤다. 결혼 후 30년 동안 SK그룹의 내조자로서 재계 인맥을 관리하고, 사회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해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1조38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정황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비자금은 불법자금으로, 재산 형성의 기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노소영이라는 한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은 다시 법의 언어 속에서 지워졌다.


이 판결은 단지 재벌가의 가정사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기여’를 숫자로만 평가하는 구조적 편견을 드러낸다. 예컨대 가사노동, 육아, 인간관계 유지, 사회적 평판 관리 같은 역할은 기업 경영만큼이나 한 가정의 자산 형성에 중요한 변수지만, 법은 여전히 ‘금전적·직접적 기여’에만 비중을 둔다.

비슷한 논란은 과거 여러 이혼 사례에서도 있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의 아내는 남편이 창업할 때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 초기 자금을 댔다. 사업이 성장해 수백억 자산가가 됐지만,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명확한 경영 참여가 없다”며 재산분할 비율을 10%로 제한했다.

반면, 다른 사건에서는 아내가 수년간 남편의 사업 운영을 도와 거래처 관리와 회계 일부를 맡았다는 이유로 40% 이상을 인정받기도 했다. 법은 ‘직접 참여’를 기여로 보지만, ‘간접적 신뢰와 희생’을 입증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 같은 현실은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의 문제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여성의 노동은 ‘돕는 역할’로 간주된다. 성평등가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이름으로 세운 사업에 아내의 이름이 빠지고, 가정 내의 돌봄과 사회적 관계 관리가 ‘경제적 행위’로 인정받지 못한다. 법정에서는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노동이 애초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런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시 한번 법의 경계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물론 법은 불법자금의 기여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의 이면에는 “여성의 역할은 어디까지 자산 형성에 포함되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의를 써야 한다. 재산의 절반은 숫자로 계산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관계와 신뢰, 시간으로 쌓인다. 노소영이라는 한 여성의 기여를 단순히 ‘비자금 논리의 오류’로 치부하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기여도 개념이 얼마나 협소한가를 돌아봐야 한다.

결혼이 개인의 연합이라면, 이혼은 사회의 거울이다. 이번 판결은 여성의 노동과 헌신이 여전히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숫자를 만드는 법의 한계를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다. 재산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기여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가정의 자산 형성은 단순한 금전투자가 아니라, 정서적·사회적·관계적 기여의 총합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돈’ 중심으로만 계산한다. 보이지 않는 헌신, 돌봄, 관계의 유지라는 ‘무형의 노동’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필자는 이번 파기환송을 계기로 “성평등가족부가 과거의 단순한 여성정책 부서를 넘어, 가정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기여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돌봄과 헌신이 공정하게 평가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가정과 사회에서 이룬 ‘관계의 성취’를 법이 보호하는 사회가 돼야 성평등가족부라는 명칭이 떳떳해질 수 있다.

결혼과 가족, 돌봄과 경력 단절, 그리고 간접적 경제활동까지. 이 모든 것은 국가가 인정해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성평등가족부는 성평등을 행정의 목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원리로 정착시키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여성의 기여는 통계가 아니라 시간 속의 관계로 남는다. 숫자가 아닌 사람의 온도를 기준으로 법을 세우는 사회, 그것이 성평등가족부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이다. 성평등가족에 대한 의미가 반영되지 않은 이번 파기환송에 대해 성평등가족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또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지난 1일, 성평등가족부를 출범시켰던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도 궁금하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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