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감정시계’ 수출, K-문학의 새 지평

2025.10.08 08:56:46 호수 0호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정신의학과 강도형 교수의 <감정시계>를 읽으면서 필자는 한국 출판계가 문학 중심의 한국 도서 해외 수출을 넘어,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서와 심리적 고민을 담은 비문학 도서도 세계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6년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소설과 시가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잇달아 번역·출간되면서 K-문학은 국제 문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K-문학의 확장은 소설과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아우르는 교양서, 곧 비문학 도서의 수출이 K-문학의 저변을 확장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그 대표적인 대상으로 떠오르는 책이 지난달 출간된 서울대 정신의학과 강도형 교수의 <감정시계>라고 생각한다.

<감정시계>는 감정을 뇌의 전기적 신호나 화학물질의 결과 대신 몸 전체에 분포된 감각의 언어로 설명한 획기적인 책이다. 특히 정신 분석과 심리학적 성찰을 결합해 감정의 구조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저자는 인간의 감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는 독창적 시도를 했다. 아침의 분주함, 오후의 무기력, 저녁의 불안과 같은 일상의 감정 패턴을 과학적으로 추적하면서도, 한국적 정서와 동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재해석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이라는 보편성과 시간에 대한 한국적 해석이 결합해, 해외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금 치유와 회복을 원한다. 팬데믹 이후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서적 안정에 대한 욕구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마인드풀니스와 웰빙 산업이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과 중국 역시 감정 관리 서적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

특히 서양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오랫동안 감정을 뇌의 화학물질, 전기적 신호, 특정 회로(편도체, 전전두엽 등)로 국한해 해석해 왔으나, 최근 서구 학계에서도 ‘체화된 감정(embodied emotion)’이나 ‘체현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패러다임이 부상하고 있다.

유럽 철학자들도 이미 신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해왔고, 미국의 심리치료 현장에서도 마음 챙김과 명상 기법을 통해 몸-마음의 통합적 접근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서양 독자들에게 <감정시계>는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감정을 다시 정의하도록 요구하는 획기적인 책이 된다. 뇌의 화학 반응에서 벗어나 몸의 언어로 귀 기울이는 순간, 감정은 더 풍부해지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게 <감정시계>의 핵심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감정시계>의 해외 수출은 K-문학의 새로운 결을 만드는 시도가 된다. 문학이 한국의 감성을 알린다면, 정신의학·심리학 서적은 한국적 정서를 이해시키고 내면의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즉 K-문학이 우리 사회를 알린다면, K-비문학은 우리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한국 도서 수출은 주로 소설과 시에 치중돼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영역을 넓혀야 한다. <감정시계>와 같은 정신의학·심리학 도서는 K-문학이 세계 독자들에게 단순히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차원을 넘어, 치유와 성찰의 메시지로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K-비문학 도서 중 정신의학·심리학 에세이가 해외에서 주목받은 적이 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였다. 이 책은 관계적 치유 심리학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번역 출간돼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필자는 심리학·정신의학적 색채가 짙은 <감정시계> 또한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국제적 파급력이 예상된다.

강 건너 불 보듯 비문학 도서 수출을 외면했던 출판계가 이제 심리학·정신의학·과학·인문학 등 다양한 비문학 도서도 함께 수출해야 한다. 그래야 K-문학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세계인의 마음과 정신 속에 뿌리내릴 수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세계 각국의 출판계는 곧바로 가을 문학 시즌에 들어간다. 그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 출판계가 문학 도서와 함께 비문학 도서 수출에도 총력을 다해주기 바란다.


윤리와 사상이 나라마다 다르지만, <감정시계>가 한국과 유사한 정서적 시간관을 공유하는 일본·중국과 세계 최대의 심리학·정신의학 서적 시장이며 ‘멘탈 헬스’ 담론이 활발한 미국과 정신분석학의 전통을 지닌 독일, 그리고 철학, 문학, 정신분석을 아우르는 전통을 가진 프랑스에서 많은 주목을 받으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중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감정시계>가 한국의 비문학을 알리는 교두보가 될 때, K-문학은 비문학 도서의 세계화를 통해 더 많은 확장을 하게 될 것이다. 강도형 교수의 감정의 고민이 한국에서 시작됐지만, 그 울림은 곧 세계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BTS(방탄소년단)가 국내에서 데뷔했지만, 일본 활동으로 해외 기반을 넓혔고, 이후 K-팝을 빛내며 전 세계적인 그룹이 됐듯이, <감정시계>도 해외 진출을 통해 K-문학을 빛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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