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고, 수많은 소셜 네트워크가 하루에도 수십억건의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스피드하고 다양한 연결이 가능한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정작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세대 간 단절된 체 자기들 세대의 리그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어느 사회나 세대 간 연결이 약해지면 위기를 맞는다. 노년층은 돌봄의 공백 속에 고립되고, 청년층은 사회적 지지망 없이 불안정한 삶을 견뎌야 한다. 더 나아가 세대 갈등은 정치적 양극화로 번지고, 복지 재정 부담을 둘러싼 갈등은 세대 전쟁으로 치닫는다. 결국 세대 단절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 위험 요인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탱해 온 힘은 늘 ‘세대 간 연결’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돌보고,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의 길을 열어줬다. 노인은 지혜로움을, 청년은 활력과 도전을 제공하며 서로의 빈 곳을 채워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세대 간 연결은 추석이 그 시작이자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추석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세대 간 연결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 안타깝다.
추석은 원래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장 큰 명절로, 부모와 형제, 자식이 한 자리에 모이고,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가족 명절’이자 ‘세대 명절’이었다. 그래서 하루만 쉬는 다른 명절이나 기념일과 다르게 3일 쉬고, 명칭도 추석 연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의 추석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교통 체증과 피로를 이유로 귀향을 포기하는 사람들, 가족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아예 모임을 생략하는 가정, 제사를 구시대적 부담으로 치부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추석 문화의 소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추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이 들어선다. 부모 세대는 자식들의 무관심을 ‘불효’로 받아들이고, 젊은 세대는 어른 세대의 요구를 ‘강요’로 느낀다. 추석이 가족공동체의 화합이 아니라, 갈등의 무대가 된다면 세대 간 연결은 끊어지고 만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추석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추석의 본질이 변하면 안 된다. 세대를 잇고, 가족을 연결하는 것이 추석이 존재하는 이유다.
한때 부모 세대에게 자식의 방문은 가장 큰 기쁨이었다. 명절 때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살아온 보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풍경이 달라졌다. 사이버 시대에 익숙해진 생활 속에서 직접 만남은 낯설고 어색해졌다. 심지어 명절 때 자식이 집에 오래 머무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추석 문화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사회 구조가 바뀌고, 가족 형태가 달라지면서 명절의 형식 역시 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제사 대신 가족 여행을 떠나고, 성묘 대신 온라인 추모관을 찾는 모습도 새로운 추석의 한 단면일 것이다. 이는 추석 문화가 적응하는 방식이지, 반드시 부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추석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성묘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여행으로 명절을 보내거나, 영상통화로 안부를 대신하는 모습도 흔해졌다. 이는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통이 사회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추석의 의미가 단순한 ‘휴일의 소비’로 전락하거나, 가족을 외면하는 구실로 변질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추석은 본래 세대를 잇고, 부모와 자식, 형제와 조상까지 연결하는 가족 명절인데, 그 본질을 잃고 개인적 이익과 편의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시대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윤리의 퇴락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추석 문화의 변모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변화가 지켜야 할 가치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 추석은 여전히 우리에게 세대와 세대를 잇는 윤리적 의무를 일깨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변화는 허용하되, 윤리의 본질은 지켜져야 한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명절 무용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설이나 추석은 더 이상 기대의 자리가 아니라, 교통 체증과 과도한 비용, 친척 간 불편한 대화와 가사노동이 얽힌 부담스러운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명절은 한국 사회에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 명절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세대 간 연결의 해체이며, 더 나아가 공동체 윤리의 붕괴를 의미한다. 명절 무용론이 확산될수록 우리는 개인화·고립화의 길로 치닫게 되고, 결국 사회적 연대는 더욱 약해진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공동체로 남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세대 간 연결인 가족 간의 만남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절이 존재하는 이유며,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전통이다.
추석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고리다. 그 고리가 끊어지면 우리 사회 전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10월6일은 우리나라에서 1년 중 세대 간 연결이 가장 왕성한 추석날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기리는 추석 문화가 우리 윤리를 강화시키고 나아가 AI시대를 리드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