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언제부터 지폐가 화폐로 인정됐을까?

2025.10.03 06:43:36 호수 0호

오늘 지갑에서 꺼낸 종이 한 장, 대체 언제부터 돈이 됐을까요?



“이건 만원짜리야”라고 말하면 모두가 고개 끄덕이는 이유.

그 비밀은 ‘보이지 않는 약속’.

즉, 신뢰에 있습니다.

 

처음 돈은 금과 은 등 손에 쥘 수 있는 금속이었죠.

값어치는 금속의 무게가 보증했습니다.


그런데 종이는? 찢어지고 타버리는 얇은 장난감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돈이 됐을까요?

11세기 중국 송나라, 쓰촨 청두의 상인들은 무거운 동전을 창고에 맡기고 대신 종이 증서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이게 ‘교자’라고 불린 처음의 종이돈이었습니다.

처음엔 민간조합이 편리하게 만들어 썼지만, 준비해둔 동전이 모자라 돈을 못 돌려주는 일과 가짜 종이돈이 생기면서 믿음에 금이 갔죠.

그러자 나라가 ‘발행은 우리가 하고, 교환도 책임진다’며 규칙을 세워 다시 믿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국가가 “이 종이는 돈이다”라고 선언하고, 세금도 이걸로 받겠다고 하죠.

약속은 세 가지로 굳어집니다.

정부의 보증, 모두가 받는 관행, 그리고 필요하면 금속으로 바꿔준다는 약속.

그때부터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게 됩니다.


‘약속이 적힌 종이’였고, 약속은 곧 가치가 됐죠.

하지만 약속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와의 전쟁이 45년간 이어지면서 군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습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지폐와 어음을 마구잡이로 찍어내서 충당했는데요.

이를 본 사람들은 정부의 태환 여력에 의구심을 품게 됐고 '바꿔준다'는 약속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지폐를 액면가 이하로 처분하고 곡물과 은으로 달아났습니다.

신뢰에 금이 가면, 종이돈은 다시 종이에 불과해집니다.

종이가 넘치면 가격은 흔들리고, 지폐는 점점 더 싸게 취급되죠.

결국 종이돈의 가치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힘’에 달려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은행에서 금을 보관하고 보관증을 내줬습니다.

종이 위에 찍힌 보증, 그리고 모두가 받아주는 관행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비슷했습니다.

준비가 모자라 태환이 멈추는 순간 약속은 깨집니다.

약속이 깨지면 지폐의 가치는 빠르게 미끄러지고, 사람들은 실물과 외화로 도망칩니다.

역사 속 인플레이션의 첫 장면은 대개 이렇게 시작됐죠.

그래도 종이돈은 인류가 만든 중요한 혁신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한 장의 종이가 가치를 얻는 순간은, 결국 약속을 설계하고 지키는 제도와 관행이 자리 잡을 때입니다.

오늘의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라는 약속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종이돈의 이야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emn20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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