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100세 시대’가 ‘초고령화 사회’로 변했다

2025.09.27 08:22:25 호수 0호

불과 10년 전만 해도 ‘100세 시대’라는 화두는 언론과 정부의 단골 메뉴였다. “이제 인간은 100세를 산다” “노후 30년을 준비하라”는 구호가 넘쳐났고, 서점가엔 ‘100세 인생’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쏟아졌고, 노래도 유행했다. 장수는 곧 축복이자 기회라며 호들갑을 떨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화려한 수사는 자취를 감췄다. 10년 전, 전 세계 100세 이상 인구는 45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0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도 2024년 기준 8737명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100세 시대라는 구호가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 장수는 놀라운 소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장수 담론’이 퇴색한 자리를 메운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세계 최악 수준의 노인 빈곤율, 갈수록 불안한 연금 재정, 치매와 돌봄 공백, 그리고 초저출산으로 인한 세대 갈등 등의 이유로 이제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과 세대 간 부담 전가의 문제로 변했다.

언론도 더 이상 ‘100세 시대’라는 구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초고령 사회’ ‘돌봄 위기’ 같은 차갑고 건조한 구호가 현실을 대변한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사라진 건 단순한 유행어의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장수라는 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것을 담아낼 정책과 공동체의 이해력이 부족하다 보니, 그저 말만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장수를 축복이라 외쳤던 사회가 이제 와선 노인의 삶을 비용으로만 계산하고 있다. 장수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는 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회피하는 사회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100세 인생이 진정으로 또 한 번의 희망이 될 수 있으려면 제도와 문화, 세대 간 연대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제도 문제다. 연금과 의료, 돌봄 체계는 여전히 70~80세 수명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은퇴 후 30년이 여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애 주기로 자리 잡는다. 연금개혁, 노동시장 재설계, 평생학습 체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오래 사는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제도가 긴 생애의 리듬을 반영하도록 재편돼야 한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노년을 ‘종착역’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갇혀 있다. 하지만 100세 인생의 노년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예술, 교육,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노년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자원이다. 나이 듦을 쇠퇴가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전환이 없다면, 장수 사회는 끝내 불안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 연대다. 100세 인생에서 노년과 청년은 대립하는 집단이 아니다. 청년은 노년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고, 노년은 청년의 활력과 창조성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세대 간 교류가 단절된 사회에서 장수는 고립을 낳지만,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장수는 공존의 자산이 된다.

‘100세 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다. 제도의 보완, 문화의 전환, 세대 간 연대가 삼박자로 어우러질 때, 우리는 장수의 부담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긴 생애가 또 한 번의 봄으로 피어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차분한 재설계다.

‘100세 시대’는 이제 우리의 선택을 요구한다. 더 오래 사는 삶을 어떻게 깊게 채울 것인지, 그 시간을 어떻게 세대가 함께 나눌 것인지, 희망과 부담 중 어느 쪽이 현실이 될지는, 우리 정부와 사회가 어떤 가치와 방향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게 추석 선물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이선호 대통령실 자치발전비서관이 직접 사저를 방문해 선물을 건넨다고 한다. 전 정부를 존중한다는 건 잘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 살면서 가족도 꾸리고, 일도 하고 세금도 내고, 특히 정부가 바뀔 때마다 변하는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면서도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았던 어르신에게도 추석선물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게 추석 선물을 보내는 정성은 전 정부를 존중하는 것이지만, 100세 이상 어르신에게 보내는 정성은 우리나라 100년을 존중하는 것이고 우리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다음달 2일 ‘노인의 날’에라도 100세 이상 어르신을 챙겼으면 한다.


며칠 전 충북 영동군이 단순한 지원금 차원을 넘어, 장수 어르신에게 존경과 축하의 마음을 함께 전하자는 취지로 “2026년부터 100세 어르신에게 ‘100세 축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른 지자체도 이미 명절 때 100세 이상 어르신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장수를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공존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 때, ‘100세 시대’가 축복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 점을 잊지 않기 바란다.

10년 전 희망의 구호 ‘100세 시대’가 지금은 부담의 구호 ‘초고령화 사회’로 바뀌었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바라기는 정부와 우리 사회가 희망의 의미가 담긴 ‘100세 시대’ 구호를 다시 살려 장수가 축복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면 한다. 아니면 그냥 ‘장수 사회’라고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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