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하는 자본주의

2025.09.22 07:33:38 호수 1550호

낸시 프레이저 외 1 / 프시케의숲 / 2만5000원

일상에서 자본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거의 의식되지 않지만, 문득 날카롭게 감지될 때가 있다. 고소득자의 뉴스 기사, 동료의 더 높은 연봉, 지인의 자산 증식 등의 소식을 접했을 때가 그렇다. 왜 어떤 사람은 많이 벌고, 어떤 사람은 적게 버는가. 아무리 운과 능력에 차이가 있다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부의 불평등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한번쯤은 분배 정의를 떠올리며 이른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전형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훌쩍 넘어서고자 한다.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론화해 포괄적이고 섬세한 자본주의 비판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당연하게도 이론적 유희가 아닌,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바탕한 다양한 실천의 모색이다.

이제까지 분배 정의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갇혀 있던 자본주의 비판이 저자들의 이론 작업을 통해 돌봄, 비인간 자연, 공적 정치 등으로까지 확장된다.

두 저자는 비판 이론의 전통에 있는 저명한 학자들로,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독보적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잘 알려져 있고, 라엘 예기는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제자로 비판 이론 제4세대의 촉망받는 학자다. 이 둘이 어우러지는 대화는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통찰하는 예리한 사유들로 빼곡하다.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며, 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현실을 통찰하는 비판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정연한 이론을 선보인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낸시의 자본주의 논의를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장기적인 대규모 사회 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오래도록 현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저작이다. 특히 라엘 예기는 꼼꼼하고 날카롭게 질문과 반론을 제기해 프레이저의 논의를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펼쳐낸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에 관한 프레이저의 저작 중에서도 완성형의 사상을 간직하는 동시에,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세하고 생생한 논의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사회 질서를 전경과 배경의 메커니즘으로 갉아먹으며 포식하다가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돌봄의 위기, 생태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인종적 갈등은 모두 이 경계 투쟁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복합 위기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가 폭로하는 균열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학계 연구자에게는 물론, 비판 이론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도 적합하다. 학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저작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의 복합적 위기를 이해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낸시의 다른 저작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이론을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처음 이 두 명의 학자를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길잡이 삼아 21세기 비판 이론의 최전선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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