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 대통령·정 대표, 국민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야

2025.09.17 08:33:23 호수 1549호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에 이어 공개적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3대 개혁 중 검찰개혁은 정부 조직개편으로 큰 흐름을 잡았고, 언론 개혁도 방송3법과 방송통신위원회 개편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사법개혁을 밀어붙여 민주당 영토 확장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며 대법원장의 정치적 신념에 사법부 전체가 볼모로 동원돼선 안 된다”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해 대법원장은 책임져야 한다.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조 대법원장을 향해 “내란 세력에게 번번이 면죄부를 주고 법을 이용해 죄를 빨아준 사법 세탁소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공개 사퇴를 요구하자, 이를 정 대표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추 의원 주장에 대한 질의에 “국회가 어떤 숙고와 논의를 통해서 헌법 정신과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가장 우선시되는 그런 국민의 선출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민주당 소속 추 법사위원장이 조 대법원장에게 ‘사퇴 포문’을 열자 정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고, 대통령실도 장단 맞추고 있는 모습이 16일 오전까진 뭔가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날 오후 늦게 대통령실이 여권 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촉구’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대법원장 거취에 대해 논의한 바 없고, 앞으로도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 대변인의 발언 논란이 확산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14일 이후 조 대법원장 사퇴론이 나오자 야당과 법조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5일 부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실은 조 대법원장을 사퇴시키고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할 것”이라며 “공범들 판결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6일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폭거이자 법원을 인민재판소로 전락시키려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각을 세웠다.

법조계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매우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여권의 사법부를 향한 압박이 대법원장 사퇴 이외에도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추진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조 대법원장 사퇴론에 대해 어떤 주장이 맞느냐를 떠나 민주당 소속 의원 모두는 찬성하고, 국민의힘 의원 모두는 반대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결점을 찾으려면 각 정당이 당내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문제다. 굵직한 사안을 대할 때마다 우리나라 ‘패거리 정치’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 대법원장 사퇴론의 찬반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찬성 쪽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사법부 신뢰 위기에 중점을 두는 반면, 반대 쪽은 헌법적 임기 보장, 사법부 독립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법리적으로는 조 대법원장 사퇴 의무가 명확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사회적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 차원의 사퇴 요구가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여론은 언제 바뀔지 모르니 최근 여론조사가 꼭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조 대법원장 사퇴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느 당이 유리하냐도 아직 판가름하기 어려운데, 왜 여야가 치킨게임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고 버틸 경우 민주당은 사법부 불신을 공격할 명분은 갖지만, 중도층에겐 사법부 흔들기나 사퇴 강요로 비쳐 삼권분립 위반 정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의 무리한 사법부 압박을 막았다”는 성과는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대법원장 지키느라 사법개혁을 막았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이 자진 사퇴해도 문제다. 민주당은 사법부 개혁 성과를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지만, 사법부 독립 훼손이라는 역공을 당할 수 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사법 장악 프레임으로 반격할 수 있겠으나 “사법부를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탄핵이 추진되더라도 상황은 같다. 민주당은 정권 심판 이미지 강화로 지지층 결집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역풍을 맞게 되고, 국민의힘은 “사법부 길들이기를 막아냈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탄핵 성사 시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지 못한 정당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삼권분립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사법부 독립이란 것이 사법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일각에서 위헌이란 의견이 나오는 것에 대해 “위헌이라는데, 그게 무슨 위헌이냐”고 반문했던 바 있다.

필자는 조 대법원장 사퇴를 두고 이 대통령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듯 한 인상을 주면, 국민 다수는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모습은 지지층에겐 환영받지만, 중도층·무당층엔 “너무 앞서간다”는 피로감을 준다.

16일 오후 늦게라도 대통령실이 조 대법원장 사퇴 문제에 대해 선을 긋고 한 발 물러선 건 잘한 일이다.

정 대표도 조심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 즉각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민주당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도층에는 독선과 사법부 흔들기로 비칠 위험이 크다. 즉, “너무 몰아부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평소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DJ의 “정치인이 국민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국정 운영에 적용해야 한다.

이 말은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며 국가 비전을 제시하되, 항상 국민의 마음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개혁을 할 때는 국민의 눈높이와 현실을 고려해 반 걸음 정도 앞서서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필자는 DJ의 위 명언을 “개혁을 한다는 핑계로 너무 앞서가면 독선이 되고 법과 원칙대로 국정 운영을 한다는 핑계로 너무 뒤처지면 무능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즉,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보다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 반 걸음만 앞서가야 하는데, 지금은 두 걸음 이상 앞서 가는 느낌이다. 이재명정부의 개혁을 국민이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다간 당정이 추구하는 개혁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3대 개혁을 추진하되, 국민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먼저 맞는 매가 좋다고 급하게 속도를 냈다간 당장 내년 지선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며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는데, 민주당과 이정부가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은 하되, 국민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면서 국민의 목소리도 듣고 야당의 반발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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