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 세상이다. 로켓배송과 자체 풀필먼트 서비스로 소비자는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상품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문제는 다른 업체들이 이 같은 쿠팡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11번가, G마켓, 네이버쇼핑, SSG 등 이커머스 업체는 여전히 택배사에 의존하는 구조다. 결국 쿠팡만이 판매자와 소비자 데이터를 동시에 쥐며 독식하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쿠팡의 독주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단일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은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택권 축소, 가격 상승, 서비스 혁신 둔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플랫폼 시장이 보여준 공통된 흐름이다.
이커머스 업체가 단독으로 쿠팡의 물류 네트워크를 따라잡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적인 배송망과 허브 터미널을 이미 갖추고 있는 택배 3사(CJ대한통운택배·롯데택배·한진택배)와 연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택배 3사가 ‘창고+재고 관리+피킹+포장’이라는 풀필먼트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커머스 업계와 택배 3사가 힘을 합쳐 공동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택배 3사 중 선두를 달리는 CJ대한통운택배가 이커머스 업체인 네이버와 단독으로 ‘N-배송’이라는 '반 쿠팡 연대'를 구축하면서 필자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네이버는 쿠팡처럼 직접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CJ대한통운택배, 마켓컬리 등 국내 주요 물류 및 유통 기업들과 손잡는 전략을 택했다. 바로 N-배송(네이버배송)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CJ대한통운택배의 강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CJ대한통운택배도 쿠팡에 맞서기 위해 올 초부터 '주 7일 배송'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주말 배송을 통해 물류 밀도를 높여 비용을 낮추고 네이버를 비롯한 G마켓, 11번가, 롯데온 등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에 쿠팡에 버금가는 배송 경쟁력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왜 CJ대한통운택배는 롯데택배, 한진택배를 제외하고 단독으로 네이버와 손을 잡았을까?
택배 3사 중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 CJ대한통운택배가 롯데택배나 한진택배 중 어느 한 쪽이 무너져야 우리나라 택배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야 이커머스 업체와의 계약 관계에서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주 7일 배송'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막대한 자본 투자로 구축한 쿠팡의 독점적 물류 인프라에 대항할 수 있는 ‘반 쿠팡 연대’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야 이커머스 시장의 공이 커 이커머스 물류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쿠팡이 투자금 상환을 위해 협력업체에 부담을 주는 상황을 기회로 삼고 CJ대한통운택배와 네이버가 연합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국내 창고 보유 면적 1위를 차지하며 풀필먼트 서비스를 장악한 쿠팡을 CJ대한통운택배와 네이버의 연합만으로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다.
필자가 택배 3사와 이커머스 업계가 연합해 공동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최근 CJ대한통운택배가 저단가로 물량 공세를 강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택배 시장을 장악하고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CJ대한통운택배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택배 3사가 이커머스 업계와 연합해 공동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할 때 누가 주도권을 쥘 지에 대한 신경전,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 쿠팡의 가격 공세 리스크 등 걸림돌도 존재한다.
그러나 택배 3사가 각자 따로 움직이는 한 쿠팡 독주를 막기는 불가능하다. 올해 택배 3사가 저단가 경쟁으로 약 2000억원의 매출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 3사가 각자 도태되느냐, 함께 생존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택배 업계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택배 3사와 이커머스 업계가 연합해 공동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할 경우, 그 시너지효과는 매우 커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장점이 유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소비자 선택권 확대다. 지금처럼 쿠팡에만 재고를 맡길 필요가 없다면, 판매자들은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입점할 수 있다. 이는 곧 소비자가 더 다양한 플랫폼에서 똑같이 빠른 배송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데이터 경쟁력 확보다. 풀필먼트는 단순 물류가 아니다. 판매량, 재고 회전율, 지역별 수요 같은 데이터가 쌓인다.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얻은 진짜 힘은 바로 이 데이터다. 연합 풀필먼트를 통해 경쟁사들도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
셋째, 공정 경쟁 구조의 회복이다. 쿠팡의 독점이 굳어지면 판매자는 협상력에서 절대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공동 풀필먼트가 대안으로 자리 잡으면, 판매자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활용할 수 있고, 이는 곧 시장의 균형으로 이어진다.
CJ대한통운택배도 택배시장을 독점하면 안 된다. 택배는 국민 생활 필수 인프라이기에 어느 한 업체가 과도하게 독점해선 곤란하다. 이커머스 업계도 CJ대한통운택배의 독주를 원치 않는다.
필자는 CJ대한통운택배가 절대 강자가 돼 독주하기보다는, 미래의 우리나라 택배 산업을 위해 선두주자답게 롯데택배와 한진택배를 경쟁상대로 보지 말고 협력 파트너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쿠팡 독주를 막기 위한 CJ대한통운택배의 전략에 택배 시장에 대한 독점 전략도 같이 있다는 건 모순이다.
네이버도 택배 3사를 아울러 쿠팡 수준의 배송 서비스를 갖춰야 우리나라 제조업, 유통사, 소상공인이 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며칠 전 만난 제조업체 K 사장은 “쿠팡의 부당한 요구가 갈수록 심해, 대안이 되는 이커머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소비재 분야 산업이 쿠팡에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해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며 “쿠팡이 영입한 법률, 언론 등 대관업무 담당 100여명이 정부 개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의 독주건 CJ대한통운택배의 독주 건, 이를 막는다는 건 단순히 특정 기업을 견제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판매자·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지키는 정책이고 선택이다.
정부는 쿠팡으로 인해 발생되는 우리나라 택배 산업과 소비재 산업의 적신호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그리고 필자가 주장한 택배 3사와 이커머스 업계가 연합해 공동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해보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이 독주 체제서 벗어나 발전할 것이고, 택배 산업과 소비재 산업도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