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4일 “K-컬처 현장은 처참하다”는 직설적인 평가를 내놨다. 최 장관은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현실은 화려한 모습과 너무 달라 당혹스럽고 당황스러웠다”고도 했다.
이날 최 장관의 “당혹·당황” 발언은 한류의 세계적 성공에 도취된 한국 사회로서는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비판이나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가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구조적 문제를 짚은 경고음에 가깝다.
K-팝과 드라마, 영화, 게임 등 K-컬처는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 파워’로 성장해 왔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세계 무대를 휩쓸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문화 콘텐츠의 저력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결과다.
이 같은 성과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높였고, 관광·소비재·국가 브랜드 전반에 파급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화려한 외피 뒤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불안정한 산업 구조, 그리고 편중된 수익 구조라는 어두운 단면이 존재한다. 연습생과 신인 예술인들이 겪는 고강도 노동, 불투명한 계약 관행, 중소 기획사와 창작자들의 생존난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은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공연예술계 역시 비정규직·단기계약 위주의 고용 형태에 머물러 있다. 최 장관의 “처참하다”는 지적은 바로 이 간극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구조적 양극화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일부 대형 기획사와 작품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다수의 예술인과 중소 제작업체는 제작 비용 등의 문제로 자연스레 소외된다. 공정한 분배와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K-컬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창작 기반이 무너지면 한류는 결국 ‘거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적 지원의 방향도 재점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는 K-컬처의 세계화와 수출 확대에 중점을 두어왔는데 이제야말로 산업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내실을 다질 때다. 창작자의 권익 보호, 스태프 노동 환경 개선, 중소 기획사의 생태계 강화, 공정한 수익 배분 구조 마련 같은 과제가 우선돼야 한다.
단순히 ‘한류 마케팅’을 넘어 예술인들이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더불어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는 스타의 성공 뒤에 있는 수많은 무명 창작자와 스태프들의 노고를 쉽게 간과한다. ‘한류의 성과’라는 거대한 성과 지표에 가려, 현장의 고통을 외면하는 경향도 있다. 보통 문화는 사람의 노동과 땀에서 비롯되며, 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구조라면 문화의 미래 역시 건강할 수 없다.
최 장관의 발언은 불편하지만, 누군가는 내야만 했던 쓴소리다. 한류의 화려한 성취를 지속 가능한 성과로 전환하려면 지금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 소비자인 우리 모두가 K-컬처의 빛뿐 아니라 그림자도 함께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세계를 향한 확장보다, 내부를 향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K-컬처의 현장은 처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단은 곧 치유의 출발점이다. 현재의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의 길을 찾을 때, K-컬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진정한 문화 강국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