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 권력이 한층 더 강화되면서 덩달아 기세등등해진 국회의원 보좌진이 여의도 ‘슈퍼 갑’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사무처 직원을 뽑는 입법 고시, 평균 경쟁률이 수백 대 1을 넘긴다. 취업난 속에 공무원의 인기가 높은 데다, 세종시가 아닌 서울에서 근무하는 국회직 공무원의 선호도가 높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국회직 공무원을 필기시험도 치르지 않고, 연줄로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 보좌진이다.
묵묵히 일 잘하는 보좌진도 많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믿고 갑질을 하다 비리나 사건에 연루되는 보좌진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유명 연예인 매니저가 마치 본인이 연예인 것처럼 행동하고 팬들에게 하대를 일삼아 물의를 일으키듯이, 필자가 만난 일부 보좌진 중에는 국회의원과 친구 사이라고 어필하면서 자신이 배지를 달고 있는 국회의원이라도 된 것인 양 행세하는 보좌진도 있다.
국회의원실은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 6, 7, 8, 9급 비서, 여기에 인턴까지 배치되는데 이렇게 한 명의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쓸 수 있는 보좌진은 최대 9명까지다. 이 중 인턴을 제외한 7명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진 않지만, 일반 공무원과 똑같이 매년 월급이 인상되고 10년 이상 근무하면 공무원 연금도 나온다.
대개 이들 중 한 명은 운전기사인데, 역시 공무원 신분이다.
그렇다면 공무원 신분의 보좌진들은 어떻게 선발될까? 정책 개발과 입법 활동 지원 등 전문적인 일을 하지만, 학위나 관련 분야 종사 기간 같은 채용 조건은 전혀 없다. 국회의원이 뽑아 사무처에 채용 서류만 내면 끝이다. 자격 요건도 없고 선발 과정도 투명하지 않다 보니 취업 청탁의 대상이 되고, 채용 과정에서 거래가 오가기도 한다.
공무원 연금까지 받게 되는 보좌진 채용을 의원들 손에만 맡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 같은 보좌관들의 권력을 따라가 봤다. 행정부 견제의 최전방에 있는 보좌진이 죽자고 달려들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늘 난처해진다. 보좌진은 피감기관의 모든 내부 사정을 다 들여다볼 수 있고,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그래야 문제점이, 아이템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 입장에선 보좌진에게 잘 보이고 싶을 수밖에 없다. 측근인 보좌진에게 잘 보여야 국회의원에게도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좌진 처지에서 공공기관 사장 정도야 크게 무섭지 않은 것이다. 유수의 대기업 임원들도 여야 합의로 국회에 부를 수도 있다. 심지어 ‘백종원’도 부르면 온다.
국회 보좌진은 현장 답사를 가는 것 외에도 상시적으로 피감기관에 자료 요구를 할 수 있다. 이 역시 엄청난 권한이다. 자료 요구는 국회 인터넷 페이지에서 쉽게 가능하다. 자료 요구에는 주말이나 공휴일도 가리지 않는다. 오늘 요구하고 내일까지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다.
정해진 양식도 따로 없다. 원하는 대로 요구해서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정부 부처 XX 산하기관 기관장의 최근 5년간 법인카드 사용 명세’라고 한 줄만 보내면, 해당 기관에서는 기관장의 최근 5년간 사용한 법인카드 명세를 보내야 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놀라운 권한이다.
이렇게 피감기관을 상대로 한 보좌관의 막무가내식 자료 요구 갑질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일부 형편없는 보좌관들의 자료 요구 갑질은 도를 넘는 행태다. 그렇다. 무리한 자료 요구, 방대한 자료 요구를 하는 그 이면에는 피감기관 길들이기나 감정을 앞세운 보복성 자료 요구 같은 행태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등 피감기관 담당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국감 기간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량이 지나치게 방대해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감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업무다.
그러나 왜 자료가 필요한지, 정말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게 문제다.
또, 의원 임기 첫 해 열리는 국감은 국회 갑질이 최고 강도로 올라간다. 의원이 새로 상임위에 배정돼 피감기관 업무와 관련 법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의원이나 보좌진이 원하는 자료를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아 방대한 자료를 통째로 제출하라고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자료 제출 시 필요한 통계 작업도 고역이다. 의원들이 요구하는 시계열 자료는 새로 통계를 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부서에 흩어진 자료를 취합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또 의원들이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로 언론에 배포하기 때문에, 자료를 만드는 공무원은 미리 통계의 정합성도 검증해야 한다. 국감 기간에는 정부 부처 대부분 직원이 자료 생산에 투입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의원과 보좌진이 반대하는 특정 정책에 대해 일종의 ‘보복 수단’으로 막대한 자료 요청을 남발하는 때도 있다. 이른바 ‘자료 폭탄’이다.
그렇지만 국회의 수많은 보좌진과 의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감추어진 부조리와 허점들을 찾은 사례는 매우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사실 애초에 그러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도 만들어 내고 발의하고 통과시키고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민생 법안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사용하라고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감기관에 갑질을 일삼는 몇몇 못된 보좌관들의 갑질 횡포 때문에 국회는 뿌리 깊은 정치 혐오로 가득하다.
보좌진이 갖는 ‘갑’이라는 지위는 시민이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게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가지는 힘이다. 결국 그 갑의 지위는 국민이 준 지위다. 위임된 막강한 지위를, 쓰여야 할 곳에 오롯이 쓸 줄 아는 의원들과 보좌진이 국회에 진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격 미달, 수준 미달의 국회의원과 그의 보좌진이 국회를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해 보이기를 넘어 보기 두려울 정도다. 아마도 그 저변에는 피감기관에 대해 가진 값싼 우월의식이 존재했을 거라 여겨진다.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 갑질 논란이 국회에서도 예외가 아니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피감기관 사람들은 국회 보좌진에게 대부분 저 자세로 임한다. 그런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면 한심하게도, 자신들이 가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좌관의 갑질 문제가 종종 터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읽지도 않을 방대한 자료를 쓸데없이 많이 요구해 피감기관을 괴롭히는 보좌관도 종종 있다. 심지어는 민원 처리를 빌미로 후원금을 받거나 뒷돈을 받는다거나 접대를 받는 사람들도 봤다.
다행히도 이런 한심한 보좌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언컨대 이런 인간들은 국회에서 오래 발붙이기 힘들다.
여의도는 자유 계약시장이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통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검증받는 곳이다. 지위에 취해 한심하게 구는 보좌관들 때문에 열심히 성실히 일하는 보좌관들이 욕을 먹는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그렇기에 국회에서 일하는 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보좌진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결코 지위에 취해선 안 된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은 잘못했을 때 뉴스에 나오는 직업이다. 이름을 드높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앞서 비난한 갑질의 병폐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현실은 갑질과 천박한 권위주의에 발동을 거는 그들을 향해 쓴웃음을 던질 준비를 한다. 또, 후원금을 받고 민원 처리에 열중하며 피감기관에 폭탄 자료를 요구하는 보좌관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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