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인사청문회 슈퍼위크 첫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가 대북관 및 후보자 자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정 후보자는 한미 연합훈련 연기 검토 필요성과 북한을 주적으로 보지 않는 입장 등을 밝히며 화해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구상을 강조했다.
정 후보자는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질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위협일 뿐”이라고 답했다.
김 의원이 “북한이 핵무장하고 미사일 위협을 가하는 데도 위협일 뿐이냐”고 추궁했고, 정 후보자는 “(핵무기나 미사일을) 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 정부가 할 일”이라며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핵무력의 고도화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정부 때 이뤄진 일로 거기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적이라는 말은 주된 적이라는 뜻으로, 학술적 용어는 아니다. 1994년 3월 북한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적이라는 개념을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1995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지만, 2004년 이후부터는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표현을 완화했다.
다만, 2022년 <국방백서>에선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해 국방성 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위험한 제1의 적대국, 변함없는 주적”이라고 발언했던 바 있다.
이날 정 후보자는 윤석열정부에서 효력이 정지된 9·19 군사합의를 새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정부가) 2024년 6월 국무회의 의결로 9·19 군사합의 효력을 중지했다. 그러면 역순으로 새 정부 국무회의가 9·19 군사합의를 복원한다는 의결로, 우리가 일방적인 조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선제적 효력 복원 의결 방안은 개인적 견해라며 “원래 9·19 합의에 의해서 시행되지 않았던 지상, 육상, 해상에서의 군사적 위협 조치들의 실질적인 행동에 대해 자제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 중간 단계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정 후보자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의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묘안이 있느냐”는 질의에 정 후보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이 ‘3월로 예정된 한·미 군사연습을 연기하겠다. 이것을 미국에 제안하겠다’고 했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며 “정부 내에서 (연합훈련 연기를)
논 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 주장했다.또 한미연합훈련의 축소, 조정, 연기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 검토가 우리 안보에 어떤 위해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정 후보자는 남북관계 방향에 대해 “’자유의 북진’이 아닌 ‘평화의 확장’으로 적대적 대결이 아닌 화해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의 물길을 다시 돌려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윤정부가 추진했던 ‘자유의 북진’이라는 대북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정 후보자의 발언이 대한민국의 안보 정책과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은 “북한 대변인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유용원 의원은 “상대방이 어겼는데 우리가 다시 9·19 남북 군사합의를 되살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 후보자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재정 의원은 “통일을 가로막기 위해 존재했던 것 같은 윤석열정부의 통일부를 이어받는 상황에서 ‘이만한 적임자가 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며 “과거 통일부 장관 재임 시절 각종 남북 행사와 개성공단 착공 등 한반도 역사에서 벅찬 일을 함께한 후보자”라고 강조했다.
홍기원 의원은 “정 후보자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남북 교류 협력에서 큰 일을 많이 했는데 어려운 시기에 정말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사청문회는 정 후보자의 농지 취득 의혹과 태양광 사업 논란에 대한 질의응답도 활발하게 오갔다. 정 후보자는 아내와 함께 전북 순창의 농가에 위장전입한 의혹에 대해 “제 불찰”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농지 취득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가족이 운영하는 태양광 업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김기현 의원이 “허위 증빙자료를 제출해서 국민께 거짓말한 점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정 후보자는 “색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게 의혹 투성이다. 역지사지 해보면 하나도 부당한 위법 사실은 없다”고 받아쳤다.
민주당은 정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민의힘이 정 후보자 의혹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주거 침입 등을 했다고도 날을 세웠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 후보자의 미흡한 자료 제출과 민주당의 증인·참고인 채택 비협조를 비판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국무위원으로서 준비가 돼있는가 정책과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 인사청문회의 핵심 목표”라며 “사생활과 관련돼있는 실제 문제가 전혀 없는, 충분히 해명 가능한 일인데도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의혹을 부풀리려고 하는 데만 집중돼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자료 수집 명목으로 사생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주거 침입까지 했다”며 “본인의 동의 없이 사생활 공간에 무단으로 침입하게 되면 형법으로 의율하게 돼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당 이재정 의원도 “(정동영 후보자) 배우자가 홀로 집안에서 느꼈던 공포가 상상이 된다”며 “(국민의힘 보좌진이) 여기(자택)만 간 것이 아니라 인근을 들쑤시고 다니다시피 한다. 후보자 검증이라는 이유로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질의 과정에선 김기현 의원이 정 후보자를 향해 “북한 대변인 같다”고 말한 것을 두고 여당 의원들이 사과를 촉구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정 후보자까지 나서서 김 의원에게 “북한 대변인이라고 규정한 것은 제 인격에 대한 모욕”이라며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김석기 외교통일위원장은 “후보자 말이 너무 지나치다. 엄중히 경고한다”며 “후보자가 어떻게 국회의원 생각에 ‘잘못했어. 사과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발언을 윤후덕 민주당 의원이 비웃었다면서 “에티켓부터 지켜라”라고 역공했다. 윤 의원은 “북한 대변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는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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