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은 수시로 당 대표들을 끌어냈다. 며칠 전엔 경선을 통해 선출됐던 대선후보도 끌어내리려다가 당원들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사실 윤 전 대통령과 친윤계 의원들은 서로 원하는 도파민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이들의 도파민 추구는 계속 이어지는 걸까?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새벽, 갑작스레 “김문수 대선후보 선출을 취소하고, 한덕수 전 총리가 입당해 후보 등록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경선 내내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에 적극적이었던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후보로 선출된 후엔 뜻을 바꿔 단일화를 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뽑아 놓고
힘겨루기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단일화를 서두른 이유는 선거 홍보물 인쇄 마감 시한이었던 지난 6일을 1차 단일화 시한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지난 4일 당 선거대책위원회에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는 기구를 설치하려고 했다. 김 후보와 한 전 총리는 부처님오신날이었던 지난 5일, 조계사서 진행된 봉축 법요식서 우연히 만났으나,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다.
이후 김 후보는 대선후보 선출 직후부터 강도 높은 당내 압박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권 비대위원장과 권 원내대표는 김 후보가 선출되자마자 단일화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에 따르면, 이들이 그에게 제시한 단일화 진행 시한은 3일이었다. 지난 6일이 선거 홍보물 인쇄 마감 시한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김 후보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당이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을 약속했으면서도 후보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당 운영을 강행한다”며 “나를 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김 후보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후보 임명장도 받지 못했다.
직후 권 비대위원장과 권 원내대표가 대구서 유세 중이던 김 후보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자 김 후보는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김 후보에겐 다시 지난 7일이란 시한이 주어졌고, “조속한 단일화 요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면, 후보 교체 방안을 고심할 것”이란 압박이 이어졌다.
권 비대위원장은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비상대책위원장직서 사퇴할 것”이라고 김 후보에 압박을 이어갔다.
이후 김 후보와 한 전 총리는 지난 7일과 8일, 2회에 걸쳐 단일화 문제로 회동을 가졌지만 합의는 성사되지 않았다. 양측 실무진도 지난 9일 다시 협의했으나, 역선택 방지 조항 채택을 두고 의견이 엇갈려 합의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같은 날 오후 8시 의원총회를 열어 지도부(비상대책위원회)에 후보 교체 관련 사안을 위임했다.
협상 데드라인으로 지정됐던 자정까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자,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새벽 김 후보 선출을 취소했다. 한 전 총리는 불과 한 시간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해 나홀로 후보로 등록됐다. 국민의힘은 당원투표를 거쳐 지난 11일 전국위원회서 한 전 총리를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원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이날 오후 11시에 공개한 투표 결과는 부결이었다. 김 후보는 곧바로 대선후보로 복귀했으며, 한 전 총리의 대권 도전은 거기까지였다. 국민의힘을 다시 탈당해 출마할 수 있는 방법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2는 경선서 탈락한 사람이 같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24시간 동안 진행된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원들의 반전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당내 혼란 가중…도파민 중독 빠졌나
공산당식 독과점 정치와 비슷한 사정?
그동안 김 후보에겐 한 전 총리에 비해 확실히 불리한 요소가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 수치서 한 전 총리보다 앞서는 결과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물론 김 후보도 할 말은 있었다. 한 전 총리 역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앞선 결과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울러 김 후보는 당내 모든 경선 절차를 정당하게 통과한 후 선출됐다.
하지만 누구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김 후보의 약점도 있다. 국민의힘 중진들이 보기에 김 후보는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 등 정치 경력이 ‘지나치게’ 풍부하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서 당의 요청에 응해 사실상 당선이 불가능했던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등 당에 헌신한 경험도 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큰 우리 정치에선 국회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의 대권 도전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한국 정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외엔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있는 정치인들이 대권주자로 거론됐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여의도 정치에 익숙해질수록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이 사그라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계 입문 1년 만에 대선에 출마했고, 윤 전 대통령도 정계 입문 후 1년도 채 안 된 상황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전권을 분명하게 장악해 서열을 확실히 하는 정치를 선호했다. 이 과정서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이어갔고, 그 갈등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이어져 이 전 대표가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는 등의 사태로 연결됐다.
결국 이 전 대표는 탈당 후 개혁신당을 창당해 지난해 22대 총선서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당선돼 21대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이 전 대표의 축출은 윤 전 대통령과 친윤(친 윤석열) 중진들에겐 성과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독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정계 입문 이후 절대 권위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언행을 이어갔다. 세대포위론 전략으로 실리를 추구하려고 했던 이 전 대표와 달리, 윤 전 대통령은 ‘반문 빅텐트 대선후보’란 큰 그림에 집착했다.
큰 그림을 주도하는 대선후보이자 대통령이 되면, 막강한 권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갈등은 지난해, 총선 공천 방향을 놓고 크게 터졌다. 이 전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창설하자,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했던 일부 친윤계 의원들은 혁신위를 일컬어 “이준석 사조직”이라고 비판했다.
이 갈등은 계속 이어져 이 전 대표에 대한 성상납 의혹으로 연결됐고,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내리며 사실상 이 전 대표를 쫓아냈다.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표 축출 이후 큰 도파민을 느꼈을 것”이라고 볼만한 근거는 지난 2022년 7월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켰던 권 원내대표와의 텔레그램 대화 논란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우리 당도 잘한다. 계속 이렇게 해야 한다”며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면서 기쁜 심경을 밝혔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답했고, 윤 전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아무한테나 주지 않는다는 ‘체리 따봉’을 하사했다.
일사불란
복종 문화
자신에게 수시로 반박하는 당 대표가 사라졌다는 기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가 극도로 복종하는 것 같은 답변을 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친윤계는 일사불란하게 윤 전 대통령의 뜻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리하면, 윤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치 형태는 ‘일사불란한 복종’이다. 이들은 이를 통해 권력 도파민과 실리 도파민을 나눠 느끼는 정치 형태를 반복했다.
이 같은 정치 형태는 윤 전 대통령 임기 내내 반복됐다. 어제까지 총애하던 사람도 오늘 심기에 거슬리면, 그는 친윤계에 ‘격노’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상들을 사퇴 혹은 퇴출시켰다.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3월 친윤계의 지원에 힘입어 당 대표에 당선됐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진행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당이 패배한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했던 혁신위가 출범했고, 김 전 대표에게 서울 출마를 요구하는 압박이 가해졌다.
그러자 김 전 대표는 혁신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면서 기존 지역구인 울산 출마 의지를 밝혔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였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 다음 순서는 당연히 끌어내기였다. 김 전 대표는 결국 사퇴했고, 이 전 대표와 회동한 사실이 공개돼 ‘배신자’ 취급까지 받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법무부 장관 시절엔 황태자로 불렸다. 하지만 비상대책위원장 재임 당시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김경율 당시 비대위원을 서울 마포을에 공천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충돌에 이르렀다.

이 전 대표 때와 비슷하게 한동안은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이 내놓은 ‘의대 증원 2000명’ 공약에 대해 한 전 대표가 비판하면서 고름이 터졌다. 한 전 대표도 격노 카드를 받은 후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다.
한 전 대표는 총선 패배 책임을 모두 떠안은 채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불과 2년 동안 당 대표 3명을 쫓아내는 특이한 정치 상황을 연출했다. 물론 당 대표만 쫓아냈던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당 대표 당선자가 김 전 대표로 사실상 내정됐던 상황서 전당대회 출마 고집을 꺾지 않다가 격노 카드를 받았다.
나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윤 전 대통령은 해임으로 응답했다. 친윤계는 나 의원을 규탄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결국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날뛰는
친윤계
이 같은 정치 형태는 북한·소련 등 구 사회주의 국가의 내부 투쟁과 비슷하다. 영수 1명이 지시하면 계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1950년대 소련의 권력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라브렌티 베리야·게오르기 말렌코프와 권력을 분점 받았다.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흐루쇼프는 공식 석상서 베리야·말렌코프의 약점을 연이어 규탄해 그들을 실각시켰다. 이어 1인자로 등극하자 스탈린 격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북한서도 김일성의 절대 권위가 확립되기 전이었던 1956년에 8월 종파 사건이 발생했다. 스탈린 격하 운동에 자극받았던 반김일성 진영은 김일성 개인 숭배 반대 등 공개 비판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당 간부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은 채 적대감을 드러내자, 이들은 대부분 중국·소련으로 도주했다.
이후 김일성은 1인 지도체제를 확립했다. 박헌영 등 도주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철저하게 숙청됐다.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일당독재 국가였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이런 정치 형태가 가능했다. 내부 투쟁서 승리하면 곧바로 나라의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윤 전 대통령과 친윤계는 외부의 시선이 항상 주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서 이런 정치 형태를 추구했단 특이점이 있다.
국민의힘을 사실상 독과점 정당으로 만들려고 했다. 독과점 시장도 일당독재 국가서 엿보이는 단점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국민의힘도 격노 카드를 쌓아갈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한 정당이 돼갔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가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는 정당이 됐다.
친윤계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에게 복종하면서 공천 등의 이권을 확보했다. 보이지 않는 이권이 있었을 가능성도 암시됐다. 윤 전 대통령 몰락 이후 친윤계 정치인 중 개인적 구설에 오른 사람은 이철규 의원과 고 장제원 전 의원이었다.
지난 2월28일 이 의원의 아들 부부가 지난해 10월 액상 대마를 사려던 혐의로 입건됐단 사실이 알려졌다. 국과수 감정 결과, 이 의원 아들 부부는 대마 양성 반응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1월3일, 이 의원 아들 부부를 피의자로 특정했지만, 53일이 지난 후 입건했기 때문에 일각의 의심을 받았다.
한에게 집착한 이유
공동운명체라서?
장 전 의원이 지난 2015년 부산디지털대 부총장 재직 당시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단 사실은 지난 3월4일 알려졌다. 이후 그에 대한 경찰 수사 상황과 혐의 근거들이 지속해서 언론에 노출됐다. 장 전 의원은 혐의를 강하게 부정하다가 지난 4월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면, 수면 위에 오르기 어렵다”는 의혹 어린 시선이 이어졌다. 따라서 “치부를 은폐하는 상부상조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표 ▲김 전 대표 ▲한 전 대표 등을 연이어 끌어내는 과정에 대한 재해석도 있다.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부상조를 깰 위험이 있어 끌어낸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재해석이다.
대통령과 측근 의원들의 관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새누리당서도 확인됐던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 제 뜻에 조금이라도 반박하는 내부 구성원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유 전 의원을 일컬어 “정치적으로 선거를 수단 삼아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서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는 등 극단적인 비난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러자 당시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들은 강도 높게 유 전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새누리당이 둘로 나뉘어 탄핵안이 가결되는 결과로 연결됐다. 친윤계 중진 상당수는 당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다. 윤 전 대통령까지 거치면서 습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면 그 대가로 지분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밀어주는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원하는 대선후보는 윤 전 대통령처럼 권위와 실리를 맞교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대선후보의 ‘권력·권위 도파민’을 보장해주면 ‘실리 도파민’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약 10억원대의 개인 재산서 최소 3억원 이상을 지출하면서 경선에 참여했고,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강성 노동운동가 출신 김 후보가 이에 응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윤 전 대통령처럼 정치 경력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윤 전 대통령보다 더 다루기 쉬울 것으로 보이는 한 전 총리에 대한 집착을 거두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미 피의자로 입건돼있다. 윤 전 대통령·친윤계와 공동운명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이슈에 ‘윤 전 대통령 배후설’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과 친윤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홍 전 시장은 “2차 경선서 무난히 과반수를 얻을 줄 알았다”며 “용산과 당 지도부가 합작해 느닷없이 한 전 총리를 띄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후보가 ‘김덕수(김문수+한덕수)’를 말했고, 용산과 당 지도부도 김 후보를 만만하게 여기면서 김 후보를 밀었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해체되나
이어 “김 후보는 이들의 음험한 공작을 역이용한 것”이라며, “무상 열차를 노리고 ‘윤석열 아바타’를 자처한 한 전 총리는 왜 비난하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이념집단이 아닌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항상 노골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진 않는다. 도파민은 이익 그 이상의 집념을 심어준다. 대선 승패를 떠나 국민의힘에 ‘도파민 중독’은 큰 숙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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