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상 남자인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처음으로 강간죄가 인정됐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고종주 부장판사)는 가정집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50대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A(28)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행동해오다 24세 때인 1974년 병원에서 성전환증 확진을 받고 나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며 이런 사정을 아는 남성과 과거 10년간 동거하는 등 여성으로 생활해온 기간과 이런 삶에 만족한 정황을 고려할 때 피해자는 형법에서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어 “성전환자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호적상 성별보다는 피해자가 공인된 절차를 거쳐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상당기간 다른 성으로 살아온 사정이 인정되는 등의 요건을 갖춘 상태에서 보통의 여성과 같이 남성과 성행위를 할 수 있는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데 문제가 될 만한 사유가 없는지 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이런 요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강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월31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트랜스젠더인 B(58)씨를 흉기로 위협해 현금 10만원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남성 간 성폭행에 대해 강간죄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A씨를 특수강도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으나 재판부와 협의를 거쳐 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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