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팬덤에 걸린 김호중 방지법

2024.09.02 13:20:06 호수 1495호

사회적·정치적 파장이 큰 이슈를 덮을 때 흔히 사용하는 무기는 이슈와 상관없는 사건이나 사고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자의 이름을 따 네이밍법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큰 이슈를 덮을 땐 유명 연예인의 사건사고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지난 5월 트롯 가수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도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사건을 은폐하는 데 주효했다.

김호중 팬덤은 뺑소니 사건을 장기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정치권이 김건희 여사 사건을 덮기 위해 가수 김호중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만약 가수 김호중과 함께 우리나라 트롯계의 영웅인 가수 임영웅도 2년 전 사회적 이슈가 됐던 ‘실내 흡연’ 사건이 지난 5월에 일어났다면 이 사건 역시 연일 보도와 함께 극대화돼 정치적 이슈를 덮는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네이밍법 추진 사례를 살펴보면, 어린이집 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 사건이나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한 신해철 사고는 팬덤이 없는 사회적 사건사고여서 그런지 몰라도 세림이법, 신해철법이 쉽게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김호중 사건처럼 팬덤이 많고 정치적 이슈 은폐에 대한 논란이 많은 사건은 네이밍법을 발의해도 법 제정까지 쉽지 않다.

김호중 방지법은 김호중이 사건 당일 사고를 내고 달아나 약 2시간 후 편의점서 캔맥주 4개를 구매한 것에 대해 “음주 측정서 검출된 알코올이 사고 이후 마신 알코올이라는 변호인의 주장이 반영돼, 음주운전 처벌을 면한 술타기 수법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골자인 법안이다. 

술타기 수법 사례는 2020년에도 있었다. 운전자가 음주 상태로 화물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후 현장을 이탈하고 소주 1병을 마셨는데 사고 후 술을 마셨다는 운전자의 주장이 인정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당시 판결에 대한 사회적 반항도 있었지만, 은폐할 만한 특별한 정치적 이슈도 없었고, 사고 당사자가 유명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술타기 수법을 방치한 언론과 국회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가수 김호중이 술타기 수법으로 음주 운전 처벌을 피한 점에 대해 엄청난 불만과 함께 김호중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국회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김호중 사건 이후 “음주 운전을 해도 일단 도망가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국회에선 이른바 음주 후 또 술 마시거나 운전자 바꿔치기 등을 방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각각 지난 6월과 7월 술타기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김호중 방지법을 발의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도 김호중 이름 석 자만 언급 안 했을 뿐 취지가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김호중 팬덤은 법안을 발의한 위 4명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낙선 운동도 탄핵도 하겠다며 지역 사무실에 항의 전화도 했다.

블로그에도, 국회 입법 예고 게시판에도 법안에 특정인 이름을 붙이는 게 지나치다며 통과에 반대한다는 수천 개의 댓글을 달았다. 


팬덤은 원래 유명 연예인의 팬들이 모인 집단이었으나 지금은 정치권까지 확산돼 팬덤 정치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됐다.

노사모, 박사모, 대깨문, 윤사모, 개딸, 위드후니 등이 유명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정당 대표로 만든 팬덤이다. 

필자는 최근 국회가 유명 연예인의 팬덤이 반대하는 법안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정치인들 스스로가 정치 팬덤의 덕도 봤고, 팬덤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정치 생명을 다 잃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지지하는 팬덤이지만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시즌이 아닌 평상시에는 연예인 팬덤이 정치인 팬덤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의원들이 잘 알고 있다.

만약 팬덤이 없는 의원일지라도 자신이 낸 법안이 연예인을 자극할 경우 연예인 팬덤으로부터 공격당해 정당을 대표하는 팬덤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법안 추진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서 입법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최근 대검찰청이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킨 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마시는 ‘사고 후 고의 음주’에 대해 도로교통법상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 규정을 마련해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김호중 사건 이후 일선 경찰도 “음주 운전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면 ‘방금 술을 마셨다’며 다 마신 술병을 흔드는 피의자가 많아졌다”며, 음주 운전 혐의를 피하기 위해 ‘술타기 수법’ 행태를 보이는 운전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김호중 방지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호중 팬덤과 정치 팬덤이 싸워 당장 정치권이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당당하게 추진해야 그 정치인과 정당이 우리 사회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정치인이 향후 네이밍법을 추진할 때 “법 추진이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한 대안이어서도 안 되고, 입법 실적을 홍보하는 과정서 유명인이나 사건 관련자 이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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