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정신이상 항변(Insanity Defense)

  • 이윤호 교수
2024.04.27 05:38:09 호수 1477호

일반적으로 같은 행동이라도 사람에 따라 비난과 책임이 다르다고 한다.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에게 성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처벌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심각한 가해자임에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흔히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이라는 게 철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은 계산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통보다는 쾌락이, 손해보다는 이익이 되는 것을 합리적으로 계산해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맞게,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면 당연히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책임도 자신에게 있기 마련이다. 바로 고전주의 범죄학의 토대다.

성인이라면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를 미성년자라고 처벌하지 않는 것은 미성년자는 자유의지에 따라 자기 행동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서 성인이면서도 형사처벌이 마땅한 범행을 하고서도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정신이상 항변(Insanity defense)의 주장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면 형벌의 기본적 전제인 합리적 계산과 선택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상 항변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적절한 정신질환 개념에 기초하고, 행동과학적 진단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정신건강 전문가들도 특정인의 정신이상에 동의하지 못하기도 하며, 정신이상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이상 항변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했던 존 힝클리 주니어가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자 정신이상 항변에 대한 요건과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제한됐다. 피의자의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손상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거나 자기 행동의 잘못됨을 인식할 수 없는 경우로 정신이상 항변을 제한한 것이다. 

정신의학의 발전으로 정신이상이나 정신질환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일단 정신이상과 법률적 책임 유무는 그 관계가 아직도 그렇게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정신질환이어야 행동의 옳고 그름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행위자가 범행의 순간에 자기 행동이 그릇됐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정신이상 항변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UN서도 정신이상 항변이 무죄가 될 순 있지만 정신이상이라는 낙인이 붙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소위 ‘장애-중립 원칙(Disability-neutral Doctrine)’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정신이상 항변이 차별을 조장하고, 정신장애가 범죄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근거로 이용돼서는 안된다고 본 것이다.

즉, 정신적 무능, 불능함(Mental incapacity)에 기초한 무죄 항변이 개인의 법률적 책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해석이다.

또 전문가의 주관성에 따른 남용이나 악용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측면서 최근 일부에서는 ‘유죄지만 정신질환(Guilty but Mentally ill)’이라는 새로운 판결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더 극단적으로는 정신이상 항변 자체를 아예 폐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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