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전문 법관제 도입해 사법 지연 해소해야

2024.04.02 10:33:58 호수 0호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가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위기의 핵심은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을 통해 크게 증폭된 국민의 사법 불신이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제1심의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이미 실추된 사법부 신뢰는 쉽게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재판 지연 발 사법부 위기

이런 가운데 최근 사법부의 재판 지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민의 사법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법원의 재판 전체가 과거에 비해 심각하게 지연되면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낳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 관련 재판들이 비정상적으로 지연되면서 국민의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마저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재판 지연의 해소가 새로이 출범한 조희대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재판 지연의 해소를 위한 핵심적인 대안으로 법관 증원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법관 증원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른바 법조일원화에 따라 일정 기간 변호사로 활동한 사람 중에서 법관을 선임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변호사들 중 법관으로 선임하기가 까다로운 탓이다.


둘째, 기존 법관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있다. 이와 관련해 김명수 사법부서 법관 근무평정의 기준을 변경한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법관들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근무 평정기준의 변경 이후에 재판 지연이 눈에 띄게 심해졌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라 할지라도 근무평정의 합리화는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셋째, 실무보다는 학계서 더 많이 논의되고 있는 대안으로 법원 조직의 전문성 제고가 있다. 각 법 분야에 따라 세분된 학계뿐만 아니라 대형 법률사무소나 검찰에 비해서도 법원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민사와 형사, 행정과 조세 등으로 법관들이 로테이션 되는 것보다는 하나의 분야서 계속 일하면서 전문성을 쌓은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안들을 중심으로 법관 증원과 관련한 법률안 및 예산안 제출권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법관 수가 선진 외국에 비해 매우 적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21년 법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법관 수는 독일의 2만3835명, 프랑스의 7427명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2966명에 불과했다(2019년 기준). 인구 비례로 보더라도 압도적인 차이다.

더욱이 법관 1인당 사건 수는 민·형사 사건을 기준으로 독일의 89.63, 프랑스의 196.52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464.07이었다.

이 같은 과중한 업무량을 생각할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분명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안은 법관의 대폭 증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 법관 증원이기도 하다.

일거에 법관을 2배 이상 늘릴 수도 없거니와, 해마다 10% 정도의 법관을 증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법관으로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매우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현업으로 나갈 때, 가장 선호되던 직종이 법관이었다. 따라서 우수 인력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법조일원화에 따라 일정 기간 변호사 경력을 쌓은 이후에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하면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후에 바로 법관으로 임용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그 결과 인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검사와 대형 법무법인으로 양분됐다. 물론 법원서 관리하는 재판연구원 지원자들이 적지 않지만, 재판연구원 과정을 이수한 변호사들의 법관 임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갈수록 재판연구원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지고, 검사나 대형 법률사무소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져 왔다.

법조일원화를 통한 경력 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확보돼야 한다.

첫째, 잠재적 인재 창고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숫자가 많아야 한다. 이는 법학전문대학원제도의 도입 및 변호사시험 합격자 숫자의 증가를 통해 어느 정도 확보된다.

둘째, 우수 변호사들의 법관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야 한다. 변호사로서 충분한 경험을 쌓고, 그중에서 우수한 변호사들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것이 법조일원화의 취지인데, 정작 우수한 변호사들이 법관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법원 안팎서 우수 변호사들의 법관직 선호가 매우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과도한 업무량, 우수 변호사들에 비해 크게 낮은 보수, 법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이 이런 현상의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셋째, 대형 법률사무소서 근무하는 우수 변호사들은 민사, 형사, 행정, 조세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법관으로 임용된 이후에는 모든 분야의 재판을 해야 한다. 일정 기간 민사부서 재판한 이후에는 형사부로 이동하고, 때로는 행정법원이나 특허법원서 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결과 10년 이상 손놓고 있던 분야에 대해 새로 공부해서 재판하게 되는 부담이 생긴다는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장애 요소다. 이런 상황이라면 법관의 증원이 쉬울 수 없다. 아무 변호사나 법관으로 임용해서 숫자만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력과 권위를 갖고 존중받을 수 있는 변호사를 선별해 법관으로 임용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관 증원의 필요성과 곤란성, 이 딜레마는 현재 사법부의 발목을 잡는 가장 무거운 족쇄 중 하나다.

더욱이 법조일원화 정책이 기대했던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법관 증원은 오히려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사법부의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법관 증원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법관이 되기를 피하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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