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승부보다 위대한 그림의 가치

2024.03.05 09:34:05 호수 1469호

19세기 중반에 2인1조 골프 경기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걸작이 하나 있다. 골프 승부보다는 그림 때문에 이 매치플레이는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최고의 골프 그림으로 회자되고 있다. 골프 화가인 찰스 리가 1847년 공개한 ‘골퍼, 위대한 승부(The Golfers, Grand Match)’가 바로 그것이다.



해당 작품은 1841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가을 미팅 때 있었던 매치플레이를 찰스 리가 6년 뒤인 1847년에 그린 것이다. 올드코스를 배경으로 무려 58명이 그려진 이 그림을 통해 이날 매치의 명장면을 들여다보자.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에서는 2인1조의 베스트볼 방식이 유행했다.

당시 귀족을 비롯한 사회 상류층과 골프장서 헤드코치로 일했던 일부 골퍼는 포섬 경기를 즐겼다. 이 무렵 골프장서 클럽 제조 공방을 운영했던 헤드코치들은 서서히 프로골퍼로 불리기 시작했고, 상류층과 함께 조를 맞춰 많은 액수를 걸고 내기 포섬 경기에 나서곤 했다.

그날의 기록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공식적인 시합보다는 내기가 걸린 포섬 경기에 열광했다. 그림의 장면은 ‘진저 맥주 홀’로 불리는 올드코스 15번 홀의 그린이다. 왼쪽서 두 번째의 키 작은 골퍼가 휴 리옹 메이페어 소령으로 그가 퍼트한 볼은 홀컵을 향해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홀컵 오른쪽 앞에는 상대편의 볼이 홀컵에 바짝 붙어 있는 상황이다. 왼쪽의 검은 모자에 검은 트윗을 입고 있는 키 큰 골퍼는 메이페어 소령의 상대편인 데이비드 베어드 경으로, 몸을 과하게 숙인 채 볼이 홀컵으로 들어가는지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모자를 쓰지 않은 흰바지를 입은 랄프 앤스트루더 경이 몸을 뒤로 젖힌 채 볼이 홀컵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듯이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맨 오른쪽서 검은 복장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캠벨프로는 파트너의 퍼팅을 믿으며 느긋하게 볼을 지켜보고 있다.

올드코스 수놓은 상류층
판돈 크게 걸린 골프 도박

참가자들은 로열 앤드 에인션트 클럽과 노스베릭 클럽의 회원임과 동시에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훗날 메이페어 소령은 세인트앤드루스 시장으로 재직하며 올드코스를 유서 깊은 골프장이 될 수 있도록 힘쓴 사람이다.

글랜새들 지역의 프로골퍼인 캠벨은 만능 스포츠맨이자, 장타자로 알려져 있었다. 데이비드 베어드 경 역시 우수한 골퍼로 1843년 영국왕실골프협회 R&A의 캡틴이었고, 랄프 앤스트루더 경은 1825년 R&A의 캡틴을 맡은 바 있다.

이날 대결의 결과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대다수 관중이 귀족과 상류 인사였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주목도가 높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들은 이 경기를 기억서 잊어버렸지만 찰스 리는 경기가 끝난 6년 뒤에 그림을 그렸고, 그림에 등장한 58명의 이름을 한 명도 빠짐없이 기재했다.

58명이 빼곡히 그려진 걸작
200년 흘러 150억원 가치 폭등

그림의 뒷편에 올드코스의 초원을 그렸고 왼쪽 원거리에 세인트앤드루스의 시가지를 배경으로 그려 넣었다. 이 대결은 19세기 중반 영국 상류층이 매치플레이에 큰 관심을 가졌음을 대변한다. 올드코스서 매년 개최되는 가을 미팅은 그야말로 축제다.

수많은 음식과 스카치위스키가 곁들여졌고, 품위를 갖춘 남성은 에스코트한 여성과 올드코스 잔디서 함께 파티를 즐긴다. 물론 거의 도박에 가까운 판돈이 걸린 골프 경기도 진행됐다.

영국 도박사의 시초가 올드코스에 모인 시민이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당시의 골프 도박에는 꽤나 많은 판돈이 걸렸다. 그만큼 가을 미팅서의 골프 시합은 흥미진진한 대회였으며 ‘위대한 경기’로 명명된 이 그림 속의 대회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 그림을 제작하는 과정에 50여명의 화가들이 참여했고, 작업을 시작한 지 3년째인 1850년에 가서야 펜으로 인그레이빙을 마쳤다. 131㎝×214㎝ 캔버스에 오일페인팅을 한 유화다. 그림을 그릴 때 찰스 리가 받은 금액은 4000파운드였지만,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은 2002년 1100만파운드(약 150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남다른 몸값

이 그림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프린트와 복사본이 제작되는 등 골프계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발돋움했다. 19세기의 당시 스코틀랜드 시민들도 이 그림의 복사본을 구해 집 안에 걸어두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다. 초판 프린터로 카피된 리프린트 첫 번째 에디션 100점은 오늘날 프린트임에도 한 매당 1500만원대 몸값을 자랑한다. 4명이 참여한 골프 시합보다 그림이 더 유명세를 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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