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암표와의 전쟁

2024.02.14 12:52:08 호수 1466호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공연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직접 암표에 대응하는 상황서 이들에 대한 법적 제재와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롭게 개정된 공연법도 ‘매크로’만을 규제하고 있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다양한 암표 거래에 대응하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대한민국 곳곳이 암표로 신음하고 있다. 가요계와 공연계뿐만 아니라 KTX 등 운송수단과 관광상품, 심지어는 숙박업소나 음식점 예약까지도 암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부터 공연법은 제정되지만 근본적인 암표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호텔과 식당도…

최근 인기가수들의 공연이나 유명 스포츠 경기 같은 경우 ‘피 튀기는 티켓팅’, 이른바 ‘피켓팅’으로 불린다. 치열한 피켓팅 뒤에는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티켓을 구매한 뒤 되파는 암표가 기승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체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중음악 공연 암표 신고는 2020년 359건에서 2년 만에 4224건으로 훌쩍 뛰었다.

이에 공연 주최사는 매크로 프로그램 이용 구매자를 자체 모니터링하거나 현장서 엄격하게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는 등 암표 거래를 막으려는 조처를 하고 있지만 암표 거래 행위를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일부 엔터테인먼트사도 ‘암행어사’ ‘법적 대응’ 등 다양한 대처에 나섰지만, 암표 매매를 밝혀내기 위해선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불법 거래를 모두 근절하는 것 역시 제도적 한계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가수 장범준 측은 소극장 공연의 암표 문제가 심각해지자 공연을 추첨제로 바꿨지만, 추첨 티켓마저도 50만원을 추가해 60만원에 판매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암표는 공연이나 대회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등 사람들이 몰리는 날에는 호텔 숙박권, 식당 이용권 등도 온라인서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각종 양도 게시글이 올라왔다. 지역 기반인 당근마켓의 한 이용자는 ‘25일 크리스마스 파라다이스 코너 스위트룸 씨메르+원더박스+사우나’라는 제목의 판매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25~26일 크리스마스에 코너 스위트룸을 양도한다”며 88만원을 제시했다. 해당 객실 이용료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0만원대부터 시작해 5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훈아? 임영웅? 피 튀기는 ‘피켓팅’
인기 있는 콘서트·스포츠 광속 매진

네이버 중고 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는 크리스마스이브 청담동 고급 스시 오마카세 레스토랑서 식사할 수 있는 저녁 룸 자리를 양도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식당 저녁 가격이 인당 22만원인데 해당 예약권을 받기 위해서는 양도비 명목의 10만원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새해 해맞이를 위한 야간산행이 허가된 지난달 1일에는 한라산 탐방 예약권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오기도 했다.

통상 암표상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티켓을 구입하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직접 이를 판매하게 하거나 아이디를 옮겨주는 등의 수법을 활용해 돈을 번다. 이렇게 모은 티켓 가격은 장당 20만원~15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그러나 암표 거래에 관한 법적 규제는 그저 경범죄 처벌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웃돈을 받고 티켓을 되팔아도 통상의 처벌 수위는 벌금 20만원이 고작이다.

지난 12일에는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콘서트, 프로야구 입장권 등을 예매해 티켓 예매 사이트 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명에게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대구지법 제5형사단독(부장판사 정진우)은 “정보 저장매체들을 이미징해 전체 파일을 보관하며 범죄 혐의와 관련 있는 전자정보에 대해 포괄적인 압축파일만을 기재한 전자정보 상세목록을 기재해 교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증거가 없다면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무죄의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 경범죄 처벌법 제3조 2항에 따르면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해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암표를 판매한 사람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서 판매되는 경기·공연 티켓, 식사권, 호텔 숙박권은 모두 경범죄 처벌법 대상에 포함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해당 법안이 50년 전에 만들어진 탓이다.

여전히 “처벌 수위 낮다” 지적
새 공연법도 ‘매크로’만 규정

물론 새로 개정되는 공연법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공연법에는 매크로를 이용한 부정판매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크로를 이용하지 않는 암표상이나 중고 거래나 리셀 사이트를 이용한 되팔이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암표 거래 규제와 관련한 행정안전위원회 토론은 현재까지 단 한 차례 이뤄졌다.


지난해 9월 19일 행정안전소위 제1차 회의서 행안위 전문위원은 “2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보단 다른 법률을 통해 엄격하게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현장 적발이 불가능한 온라인 거래 특성상 통신자료제공 요청 등 강제수사 필요성이 많은 점 또한 ‘경미한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경범죄 처벌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도 봤다.

당시 소위에 참석한 조지호 경찰청 차장도 “온라인상에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지는 암표 거래 행위를 경범죄 처벌법으로 가볍게 처벌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소위는 정부와 전문위원 모두 ‘온라인상 암표 매매는 경범이라기엔 중한 범죄’라는 의견을 내자 개정안들을 추가 심사하기로 했다.

현재 국회에도 온라인 암표 거래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상임위에 계류돼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법적 제재 수단과 처벌 수위가 낮은 점이 암표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법이 아직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되팔이꾼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법을 개정하고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희 법무법인 신원 변호사는 “다양한 암표 거래 행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처벌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며 “또 건전한 공연문화를 만들기 위해 암표를 소비하지 않는 인식변화를 위한 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제도적 한계

최수진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사무관은 “불법적으로 티켓 매매수익을 얻는 행위에 대해 현장 의견을 수렴한 결과 암표 거래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경범죄처벌법은 오래됐고 공연법 개정에도 여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 만큼 공론화를 거쳐 입법,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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