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21.5시간’ 근로시간 논란

2024.01.30 09:00:00 호수 1464호

그때그때 다른 ‘과로사’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연장근로 기준이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것에서 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 초과로 바뀌었다. 이 변화로 노동계가 떠들썩하다.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22일, 노동부는 ‘1일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한 시간은 연장근로’라고 규정했던 기존 행정해석을 ‘1주 총 근로시간 중 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이 연장근로’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 1일엔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단, 당사자 간 합의하면 1주 12시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어, 총 52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반발한

기존에 정부는 주 전체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할 때뿐 아니라 하루 8시간을 넘는 연장근로시간을 합쳐 총량이 주 12시간을 넘길 때도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봤다. 예를 들어 하루 15시간씩, 주 3일 일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지금까진 하루 8시간을 넘는 연장근로가 7시간씩 3일, 총 21시간이어서 연장근로 한도 위반이었다.

그러나 바뀐 행정해석으로는 1주 40시간을 넘긴 것만 연장근로므로, 총 근로시간 45시간 중 5시간만 연장근로여서, 주 12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업자에 대해 “연장근로 초과는 1일 8시간을 초과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노동부는 해당 판결 이후 현장 노사·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으며, 법의 최종 판단과 해석 권한을 갖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기환송 대법원 판결은 지난해 12월25일 판결이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A씨는 2014~2016년 근로자에게 퇴직금과 연장근로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연장근로 한도를 총 130회 초과해 일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A씨의 혐의를 일부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불복해 열린 상고심에서는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한도의 위반 여부를 따지는 계산 기준이 쟁점이 됐다. A씨가 운영하는 회사는 3일 근무 후 하루 휴식하는 식이었다. 이에 따라 일주일에 보통 5일을 근무했으나 어떤 주는 3일, 4일 또는 6일씩 근무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근로자가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을 각각 계산한 뒤 이를 합산한 값이 일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하는지 따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연장근로가 12시간을 초과했는지는 근로시간이 1일 8시간을 초과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1주간의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하루에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와 무관하게 1주간 총 근로시간을 합산한 값이 40시간을 초과해 총 52시간에 달하는지를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이론적으로 하루 21.5시간 근로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되는데, 매년 과로사로 생을 마감한 근로자가 있어 온 가운데, 연장근로의 행정해석 변경으로 인한 노동환경 악화가 우려된다.

기준은 지난해 12월 대법 판결
노동자 건강과 안전은 어디로?

지난해 10월13일 오전 4시44분경 B씨가 경기 군포시에 위치한 한 빌라 4층 공용 복도서 쓰러진 상태로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B씨는 쿠팡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용역위탁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에 소속된 ‘쿠팡 퀵플렉스’였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발견 당시 그의 머리 위에 쿠팡 택배상자 3개가 놓여 있었던 점에 비춰보면, 그는 배송 업무 도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B씨 시신을 국과수에 부검 의뢰한 결과, 심장이 정상치의 2배 이상으로 비대해져 있었다는 구두 소견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심장은 300g 정도지만 숨진 B씨의 심장은 800g가량으로 커져 있던 상태였다.

심근경색을 계속 앓고 있었던 B씨는 혈관 역시 전반적으로 막혀있던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국과수의 부검 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심근경색은 산재보상법서도 과로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돼있고, 우리는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 과로사라고 부른다”고 밝혔지만, 쿠팡CLS는 과로사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체국서 근무하다 과로사로 숨져 순직이 인정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27일 전남지방우정청에 따르면, 광주 광산구 임곡·본량동 우체국서 근무하던 노현애 국장은 지난해 2월20일 오전 9시10분 업무 중 쓰러져 조선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향년 5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평소 ‘내 몸을 희생해 헌신하겠다’는 태도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보험 예금 업무와 시설관리 등 업무를 꼼꼼히 처리하고, 지역주민들의 민원 해결은 물론 화합을 위해 열성적으로 나서는 등 현장서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하지만 정년 2년을 앞두고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악화됐다.

고인은 2022년 7월 광주 광산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았고, 지난해 1월 본량동 우체국과 인근 임곡동 우체국 2개 지역 우체국장 보직을 자진 희망해 근무해왔다. 시간제 우체국인 본량동과 임곡동 우체국은 각각 영업시간을 오전, 오후로 나눠 운영하고 있어서 고인의 건강에 큰 무리가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상황이 업종별로 끊이지 않은 가운데, 최근 연장근로 변경에 대해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이번 변경은 구시대로의 회귀이자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노동계

민주노총도 “산술적으로 하루 최대 21.5시간 일을 해도 위반이 아닌 것이 됐다”며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도외시하는 퇴행의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하루 근로시간 상한 도입과 11시간 연속휴식 보장 등이 필요하다며 국회의 입법 보완을 촉구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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