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신용사면’ 역차별 논란

2024.01.22 12:54:26 호수 1463호

“성실 납부자만 바보 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신용사면을 하는 것이 맞다.” “신용사면을 하면 돈을 성실하게 갚은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서 소상공인과 서민의 신용사면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운 가운데, ‘공정성을 파괴하는 것’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어찌 됐든 열심히 돈 벌고 빚을 갚은 사람들에겐 어떠한 혜택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2000만원 이하의 빚을 오는 5월까지 전액 상환할 경우 연체기록을 삭제해주는 신용사면을 시행하기로 했다. 전 금융권이 공동협약을 맺고 이르면 3월부터 신용회복 조치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최대 290만명의 신용점수가 올라가면서 250만명이 저금리 대출 전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연체 탈출 기회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서 은행연합회 등 전 금융업권 협회와 농협중앙회 등 상호금융중앙회, 한국신용정보원 및 12개 신용정보회사가 모여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은 지난 11일 민·당·정 정책협의회서 서민·소상공인의 신용회복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이후 실제 신용회복 지원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개최했다. 협약에 따라 금융권은 코로나19 신용사면의 연장선서 개인과 개인사업자가 2021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오는 5월까지 전액 상환할 경우 해당 채무자의 연체 이력 정보 공유·활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 기간 연체 발생자는 296만명으로, 이 중 2000만원 이하 소액 연체자는 290만명(98.0%) 정도로 추산했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선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신용정보원이 최장 1년간 연체기록을 보존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에 이를 공유해 최장 5년간 활용한다.


이 경우 대출이나 신용카드 사용 등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신용회복 지원 조치가 시행되면 최대 290만명이 연체기록 삭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중 250만명은 신용점수(신용평가사 나이스 기준)가 평균 39점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대환대출 등을 통해 저금리 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 15만여명은 카드 발급 기준 최저신용점수를 충족해 카드 발급이 가능해지고, 25만명 정도는 은행업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나이스 기준 863점)를 넘게 되면서 대출 접근성이 향상될 전망이다.

2000만원 이하 상환 시 연체기록 삭제
250만명 저금리 대출 전환 혜택 추산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코로나 엔데믹으로 전환된 상황서도 서민과 소상공인들이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힘겨운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최대 290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카드 발급이나 좋은 조건으로 신규 대출을 받는 등 정상적 금융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성실하게 빚을 제때 갚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서 소상공인들 역시 신용사면을 반길 수만은 없다.

소상공인 A씨 역시 신용사면을 반기지 않는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대출을 갚고 있는데, 오히려 이번 신용사면으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어 “소상공인 중 지금 갖고 있는 대출도 갚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신용사면을 해주면 결국 가족이나 다른 사람 이름으로 또 대출을 받아서 갚을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은행만 좋은 일 시켜주고, 소상공인들에게 빚을 더 지게 만드는 것이다. 경기가 좋으면 장사라도 잘 될 텐데, 경기도 안 좋으니까 결국 남는 건 빚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용사면이 이뤄졌던 지난해 일부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신용사면을 통해 대출에 성공했다는 등의 후기가 이어졌고, 자영업 대출 잔액도 상승세를 기록했다. 신용사면이 이뤄진 2021년과 2022년에 자영업 대출 잔액은 각각 80조6138억원(14.5%), 74조8335억원(11.7%)가량 빠른 속도로 늘었다.

“정상 금융 생활 가능”
“결국 은행만 좋은 일”


이후 지난해 들어 금리 인상과 함께 대출 증가세는 속도가 더뎌졌다. 신용사면을 통해 다시금 부채 확산세가 빨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일반 직장인들도 박탈감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직장인 B씨는 코로나 기간에 회사에서 월급을 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의 수술로 부족한 생활비를 대출받았다. 이때 진 빚을 빨리 갚기 위해 B씨는 퇴근 후 대리운전과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B씨는 “연체하지 않은 사람에게 성실 상환자 인센티브는 없다. 그런데 연체한 사람들만 지원해주니 억울하다. 모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신용대출을 받았을 텐데, 힘들게 갚은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은 아니다. “2023년 3월 개인워크아웃으로 원금 4700만원 빌렸고, 최종납부금액이 2000만원 정도다. 이런 경우는 신용사면에 해당하는지 궁금하다” 등 자신이 신용사면 조건에 해당되는지 온라인 카페를 통해 질문하는 글도 많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서 신용회복 정책이 나온 것에 대해 4월 총선에 대비해 민심을 잡기 위한 정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이 올해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인데 연체가 새롭게 생긴 고객들도 같은 혜택을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금융당국서 2000만원 이하까지는 전액 상환해야 신용회복의 기회를 주는 만큼 일각서 제기하는 역차별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공정성 파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비정상적인 외부 환경으로 불가피한 연체에 빠진 분들에게는 우리 사회가 재기의 기회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신용회복은 전액 상환한 차주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채무 변제를 독려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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