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핵심 그룹 아닌 성숙한 정부가 필요하다

2023.12.26 14:40:24 호수 1459호

2년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선후보를 대선후보로 만든 1차 핵심 그룹은 대선 승리를 위한 대선캠프서도 2차 핵심 그룹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도 이재명 대표를 돕는 3차 핵심 그룹으로 남아 있다.



2027년 대선까지 같이 갈 기세다. 21대 대선서 이재명 대표를 당선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반면, 2년 전 국민의힘 윤석열 경선후보를 대선후보로 만든 1차 핵심 그룹은 대선 승리를 위한 대선캠프서 2차 핵심 그룹으로부터 윤핵관이라는 공격을 받고 떠나야만 했다.

2차 핵심 그룹도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내년 총선을 이끌 3차 핵심 그룹에 공을 넘기고 말았다. 최근 1차 핵심 그룹 대표격인 장제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2차 핵심 그룹 대표격인 김기현 전 대표는 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장 의원은 2차 핵심 그룹이 아닌데도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3차 핵심 그룹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반면, 김 전 대표는 등 떠밀려 2차 핵심 그룹서 나왔지만 내년 총선서 살아남아 3차 핵심 그룹 역할을 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현재 윤 대통령의 3차 핵심 그룹 대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서 국민의힘이 패한다면 윤 대통령을 보좌할 새로운 4차 핵심 그룹이 출현해야 하고, 4차 핵심 그룹마저 민심을 바로 읽지 못하고 국정운영까지 실패한다면 윤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에 이어 탄핵 국면까지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단임제라 윤 대통령은 2027년 치러지는 21대 대통령선거에 나오지 못한다. 내년 총선이 윤 대통령으로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설령 총선서 국민의힘이 이겨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게 된다 해도 윤 대통령의 핵심 그룹이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미래의 권력인 21대 대통령 후보에 줄을 서면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를 쓰고 3차 핵심 그룹을 내년 총선에 내보내려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선 윤 대통령의 신당 창당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총선 승리만 생각한다면 윤 대통령의 핵심 그룹이 총선에 나가지 않는 게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윤정부 후반기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생각한다면 핵심 그룹이 어느 정도는 포진해야 맞다.

위험을 무릅쓰고 핵심 그룹을 총선에 내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역대 대통령들도 다 그랬다.

얼마 전 해체된 42일짜리 혁신위가 영남 중진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기득권을 다 내려놓으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 빈자리에 3차 핵심 그룹을 넣고 싶은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있는 메시지였다.

대통령실이 걱정하는 건 여소야대 레임덕보다 여대야소 레임덕이다. 대통령실은 여당이 총선서 근소한 차로 지더라도 당 내에 대통령의 핵심 그룹이 많이 포진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대통령실 40여명이 내년 총선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들이 윤 대통령의 3차 핵심 그룹으로 등장하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서 이기든 지든 당내 핵심 그룹이 돼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도움을 주겠다는 명분이다. 그리고 3차 핵심 그룹이 총선서 이길 수 있는 지역은 수석급 몇 명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영남이기 때문에 영남 현역 의원들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내년 총선서 이재명 대표의 핵심 그룹이 많이 당선돼야 이 대표가 21대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이 애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정했는데도 병립형 비례대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가 퇴행해도 이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못할 게 없다는 논리다.

고대 그리스에선 왕족이나 귀족의 아이가 태어날 때 산모를 도와주는 산파와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몽학선생이 한 생명을 전인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파는 노비 중에서 출산 경험이 있고 지혜로운 여성이어야 했고,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부터 태어날 때까지 안가서 산모의 출산과 건강을 도와줬다.

몽학선생도 노비 중에서 건강하고 영특한 남성이 뽑혔고, 왕족이나 귀족의 아이가 성인(16세)이 될 때까지 아이 옆에서 일상적인 시중을 들고 학교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일을 맡았다.

산파는 산모와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안정을 찾으면 다시 왕족이나 귀족의 안가를 떠나 일반 노비로 돌아가야 했다. 산파가 아이의 첫 울음소리나 첫 표정이나 건강 정보를 잘 안다 해도 남자 노예여야 하는 몽학선생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몽학선생도 아이가 잘 성장해 스스로 왕족이나 귀족의 품격을 갖추고 백성이나 가문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성인이 될 때, 그 아이를 왕국이나 가문의 시스템에 맡기고 떠나야 했다.

고대 그리스 사회서 왕족이나 귀족의 한 아이가 올바로 성장하는 데 산파와 몽학선생이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도, 이는 보조 역할일 뿐 진짜 중요한 역할은 가문의 시스템이었다.

어느 집단이나 조직도 산파와 몽학선생 같은 핵심 그룹이 있고, 핵심 그룹은 자기 역할이 끝나면 잘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엄연한 시스템이 있는 데도 대통령 주변의 Core Group이 잘 떠날 줄 모른다.

이 대표는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진 산파 같은 핵심 그룹이 필요하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1년 8개월이나 국정운영을 해왔고, 중간평가까지 받으려는 마당에 이젠 몽학선생 같은 핵심 그룹이 필요없다.


우리 국민은 핵심 그룹 대신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성숙한 정부를 원하고 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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