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인 범죄 판치는 보라카이

2023.10.23 10:46:11 호수 1450호

현지 경찰서장에게 들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올해 유난히 길었던 연휴로 필리핀 보라카이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인파가 모이면 사건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최근 한국인 범죄 소식이 전해지면서 낯 뜨거운 상황이었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성장통을 겪은 필리핀 말레이주 아클란에 속한 보라카이는 한인회와 협력하는 등 능숙하게 관광객을 맞이했다. 

해마다 관광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한화로 약 1조원이 넘는 보라카이. 여의도 4배쯤 되는 면적을 가진 길이 7km에 너비 1km의 작은 산호섬으로 연간 200만 관광객이 방문한다. 지난 9월에만 12만4491명으로 집계됐고 성수기인 7월에는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여의도 4배
연수익 1조

2018년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관광객 탓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방치할 수 없어 섬을 폐쇄하는 극단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와 하수가 바다로 흘러가면서 해변에선 썩은 냄새가 풍겼다. 가장 큰 원인은 배수시설과 쓰레기 배출이었다.

필리핀 당국의 기초 조사에서 보라카이섬에 있는 많은 시설물에 하수시설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환경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습지 9곳 가운데 5곳이 불법 건축물로 파괴됐다. 이에 에피마코 덴싱 내무자치부 차관보는 “도로 시스템을 해체해 배수시설과 불법적으로 연결된 시설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수도인 마닐라의 3배가 넘을 정도였다. 결국 필리핀 관광청은 복구 작업을 위해 2018년 4월26일부터 최대 6개월간 보라카이 전면 봉쇄를 결정했다.

재개장 후 에메랄드빛으로 돌아온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는 카메라 셔터를 절로 누르게 했다. 해변에 있던 한 연인은 손을 맞잡고 감상에 젖었다. 수백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체감됐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현지인들은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길에는 흡연하는 모습은 물론, 빈 맥주병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섬 내 위치한 보라카이 경찰서의 노력이 돋보였다. 체감상 50m에 한 명꼴로 경찰이 배치돼있을 정도였다.

말레이 경찰서장 다이니스 오르테가 아무기스(Dainis Ortega Amuguis) 중령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국어를 배워서라도 한국인들의 치안 유지에 힘쓰겠다”고 운을 띄웠다. 

한 달에 보라카이를 찾는 외국인 20여만명 중 24~30%는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한국인이 연루된 사건 사고도 잦을 수밖에 없다.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한인회 측에서 소개한 한국어 강사를 통해 나를 비롯한 경찰들이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월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이곳의 치안 유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섬에서 발생하는 범죄 및 긴급 상황에 3분 만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290명의 경찰력이 어떤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주말도 쉬지 않고 훈련하고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한인회가 코리안 데스크 역할
“소통 협력 통해 치안 강화”

3개월 전 취임한 그는 화끈한 열정을 보였다. 필리핀 경찰학교 출신인 다이니스는 지난 7월부터 말레이 지방경찰서의 경찰서장을 맡고 있다.

“보라카이서 한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은 주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 쉬우냐”는 질문에 그는 “이전에는 소매치기 등의 절도사건이 있었지만, 현재는 골목마다 순경을 배치해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관광지다 보니 클럽 등지에서 발생하는 음주 폭행 사건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말레이 경찰서는 음주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술집 입구에 무장경찰을 투입해 예방에 나선 상황이다. 가장 골칫거리인 마약 범죄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다이니스 서장은 “마약 범죄에 관해선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고, 잠복근무에 나선 상황이지만 100% 검거율을 장담하진 못한다”며 “한 번이라도 마약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고, 주기적으로 투약 여부 검사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보라카이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사건 대부분은 한국인이 연루돼있어 씁쓸함을 자아냈다. 보라카이에 상주하는 한국인 영사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다이니스 서장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취임하기 전 발생했던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2020년 1월17일 보라카이서 사망한 한국인 A씨는 호텔방서 잠든 채 사망했다. 그날 A씨의 아버지 B씨는 필리핀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범죄자
경유지

B씨는 보이스피싱(사기전화)인 줄 알았으나, 외교부 등을 통해 ‘아들이 사망한 게 맞다’는 소식을 접한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전화는 A씨의 고등학교 동창 C씨가 걸었던 것이었다. A씨는 사망 이틀 전 C씨와 단둘이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유족은 A씨가 여행 갔던 사실도, C씨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C씨는 A씨가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 당시 유족은 보라카이에 갈 형편이 못 돼 C씨에게 아들 시신을 국내로 데려와 줄 수 있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자 C씨는 필리핀 현지서 시신을 화장하는 게 어떻겠냐고 유족에게 제안했다. 유족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해외에 갈 수 없는 처지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귀국한 C씨는 유족을 만나자마자 화장 절차에 썼던 경비를 요구했다. 뒤이어 C씨는 평소 A씨에게 돈을 자주 빌려줬다며 채무를 갚으라는 요구도 했었다. 유족 측 지인 D씨가 평소 알던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명의로 된 보험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사망보험금 수익자도 C씨로 등재돼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은 보험금 문제로 C씨와 연락이 끊긴 후 이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조사 결과 C씨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돌렸고, 1억9000만~7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사건은 올해 1월에서야 밝혀졌다. C씨는 수감 생활 도중 보험회사를 상대로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는데, 당시 검찰 조사를 통해 C씨가 보라카이 호텔서 A씨를 살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C씨는 사망 당일 새벽까지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뒤 객실에 돌아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탄 숙취해소제를 A씨에게 마시게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A씨를 C씨가 질식시켜 살해했다.

호텔 밀실 
살인사건

현재 C씨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재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보험계약 체결에 도움을 준 보험설계사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A씨가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며 “숙취해소제에 약물을 넣지도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한국 언론에 전한 보라카이 거주 한국인도 만났다. 보라카이 한인회 소속 박태종 이사는 2년 전, A씨와 C씨가 자신이 인솔한 관광객이었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사건 당시 C씨가 제게 전화를 걸어 A씨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전해 호텔로 찾아갔다”며 “A씨의 시신을 직접 목격한 순간 타살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A씨의 시신에는 두드러기가 나 있어 약물중독이라는 의심이 들었다”며 “C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없어 A씨의 시신을 부검할 수 없었고 수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박 이사에 따르면 현재 보라카이 한인회장 김수진 영사 대리가 해당 사건 조사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내용을 전달하면서 진상규명에 힘이 실렸다. 

박 이사는 “A씨가 사망한 호텔의 허가가 있어야 경찰에게 협조받을 수 있는데 김 영사 대리가 있어 그나마 가능했다”며 “보라카이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기에 코리안 데스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보라카이는 좁은 지역에 많은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단위면적과 관광객 수로 따지면 상황이 열악하다. 보라카이 내 한국 교민들은 400~500명 되는데 교민들 사이에서도 자잘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박 이사는 “현지서 사건이 발생하면 영사 대리 1명으로는 부족하다”며 “김 영사 대리가 직무를 맡은 지 20년인데 아직도 한국 대사관의 지원이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달에 20만명…30% 한국인
중범죄 대부분 한국인 연루

보라카이에 사는 한국인 대부분은 자영업과 관광업을 하고 있는데 간혹 전과자도 있어 불안감을 감수해야 한다. 또, 자영업자들이 경제인연합회를 운영하면서 당국과 소통하려 하지만, 상주하는 영사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는 “보라카이서 한국인 익사 사고나 관광 도중 실족사가 발생하면, 대사관과 영사를 통해 보고 후 통역만 해주고 판단하지는 못한다”며 “그저 원론적으로 통역만 해줄 수 있고 수사권은 필리핀 경찰에게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 어렵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현재 마닐라나 세부에 위치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영사는 3~4개월에 한 번씩 보라카이를 방문해 민원을 해결한다. 박 이사는 “영사가 보라카이를 방문하면 만료된 여권을 연장해 주는 등 이민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영사들이 와서 한인회총연합회 행사, 이벤트 등을 공식적인 행사로 격상시키고 필리핀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보라카이가 관광객으로만 들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서 보라카이에 까띠끌란 공항을 통해 수월하게 입국할 수 있어 보라카이가 범죄자들의 경유지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라카이서 자영업과 관광업으로 수익을 내는 사람 일부가 한국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것도 해당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실제 보라카이서 한 단체를 만들고 잘나가는 경제인 노릇을 하던 남성은 한국서 보이스피싱범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외에도 악행을 일삼은 인물들이 보라카이를 들른 바 있다.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보라카이와 연이 없다. 그러나 그의 여자친구가 보라카이서 ‘월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또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도 보라카이서 붙잡혔다. 강씨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 7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강씨는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도망 온 
피싱범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보라카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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