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가는’ 친노의 부활

2023.07.17 13:31:36 호수 1436호

‘노무현 우산’ 다시 펴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의 칼날이 무뎌졌다. 지뢰밭처럼 터지는 당 대표 리스크와 실종된 정치 현안들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친노(친 노무현)계가 대안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우연일까? 최근 친노계 인사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그 존재감을 서서히 키우고 있다. 친노계의 작은 날갯짓이 모여 폭풍을 일으킬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친명(친 이재명)계의 입지도 약해졌다는 평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야심차게 출범했던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마저 연속 헛발질을 하면서 심란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기에 ‘노무현의 유산’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돌면서 이 대표와 그 주위에 냉기가 돌고 있다.

존재감 부각

날선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친노계 인사들이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여의도 안팎으로 뛰어다니면서 정치 행보를 넓히는 추세다. 김 의원은 경남 남해 지역서 민주당 간판을 걸고 지역주의 타파와 학력 파괴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김 의원은 서울양평고속도로 게이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시민단체와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사건을 ‘윤석열 김건희가 만든 희대의 고속도로 게이트 비리’라고 못 박았다. 김 의원은 국정조사와 청문회, 그리고 특별검사를 요구할 방침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쇄신을 위한 애정도 돋보인다.


당의 혁신을 견인하려는 목적으로 출범한 혁신위가 도마 위에 오르자 적극적으로 감쌌다. 각종 현안에 묻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당원들을 향해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발표한 불체포특권 포기, ‘꼼수 탈당’ 근절 등 각종 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친노계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만큼 친노계에서는 상징성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최근 정치판에 간접적으로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정 이사장은당 상임고문단의 자격으로 혁신위 회동에 참석했다. 당시 회동에는 “(혁신을)더 세게, 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30일, 그는 여야를 막론한 정치의 터줏대감 격인 원로모임 ‘11인 원로회’(가칭)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이 사회적 분열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커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낙연 필두로 김두관, 정세균, 이용섭…
노의 남자들 서서히 고개 “구심점 기대”

해당 모임에는 국민의힘 신영균 상임고문과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함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재개의 목적은 없다고 밝혔지만 소속된 인물이 모두 ‘거물급 인사’들인 만큼 말 한마디에 국회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도 관측된다.

친노계의 얼굴인 김 의원과 정 이사장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각개전투’인 만큼 이 대표의 입지를 위협하진 않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지금까지는 친노 세력이 뭉치지 않고 홀로서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움직임이 이 대표에게 크게 압박을 가할 요인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표의 앞길에 마냥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겸손과 무한책임을 가리키는 ‘노무현 정신’ ‘노무현 유산’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5월23일 열린 노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노 대통령 앞에서 민주당은 과연 떳떳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자신 없다”고 한탄했다. ‘김남국 코인 논란’ ‘2021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두고도 민주당이 기민하지도, 단호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에 대해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표퓰리스트’로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과 반대되는 길로 국가의 미래를 위함이 아닌, 자신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제도를 개혁해왔다는 비판이다. 이로써 현재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행보로부터 퇴보해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은 노무현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구호”라면서 “지금 정치판서 ‘반칙’과 ‘부정부패’의 상징은 이 대표”라며 “친노 세력이 이 대표를 돕거나 함께하기에는 명분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만일 친노계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뭉살흩죽’ 의지로 힘을 모은다면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꿈틀하는 친노계
긴장하는 친명계

이를 대변하듯 신당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구심점을 잡을 것이란 기대감이 국회를 맴돌고 있다. 초대 정의당 대표를 지낸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의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의당을 탈당한 천 이사는 전·현직 당직자 60여명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천 이사는 창당에 도움만 줄 뿐 직접 정치에 가담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노무현재단에 몸을 담고 있는 만큼 향후 친노계 인사들의 합류가 기대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통해 벼랑 끝 진보 정치를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보다 노무현다운 모습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밖에도 눈에 띄는 인물은 지난달 24일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다.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던 이 전 대표는 입국 후 가장 먼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그의 첫 행선지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가 친노계, 친문(친 문재인)계 세력 끌어안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의 창당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표적인 친노계 인물인 이용섭 전 광주시장은 지난 3일 간담회를 통해 이 전 대표의 창당설에 힘을 실었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가 장기간 대립각을 세운다면 혁신 신당의 출연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책임론이 불거지고 ‘네 탓 내 탓’이 길어질수록 흙탕물 정치밖에 더 되겠냐는 주장이다.

이 대표를 향한 친노계의 아낌없는 쓴소리도 이어졌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의 각종 리스크를 두고 “오만 정이 떨어졌다. 염치와 상식을 잃은 민주당 의원을 향해 무너지는 정당은 빨리 무너뜨려져 새 살이 돋게 하는 게 낫다”며 일침을 가했다.


선택의 시간

노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조직 특별보좌역으로 활약한 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민주당의 운명이 이 대표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이 대표가 “총선서 지면 인생이 끝난다”고 말한 것을 두고 각종 리스크를 짊어진 그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것이란 설명이다.

이 대표의 돌파구는 까마득해보인다. 이대로 총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면 직진하겠지만 어깨가 무겁다면 법의 심판을 받고 당의 지도부를 내려놓는 방법도 있다. 갈림길에 선 이 대표의 발끝에 국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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