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저작권 조항’ 뭐길래…

2023.03.22 09:13:06 호수 1419호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극단적 선택을 해 대중이 충격을 받았다. 고인은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가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저작권 때문인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평소 <검정고무신>을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했었는데 결국 인생을 ‘빼앗긴’ 셈이 됐다. 이런 비극 뒤에는 ‘저작권 불공정 조항’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작권은 시, 소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컴퓨터 프로그램 등과 같은 ‘저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갖는 권리를 말한다. 이 중 만화나 동화책은 출판물 저작권에 포함되고, 만화나 동화책은 그림 창작물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출판사와 계약을 진행해 작품을 출품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때때로 ‘불공정 거래’를 체결하게 된다.

원인은?

추억의 만화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는 지난 11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죽음을 선택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족들은 “이 작가가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소송이 시작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술 한 모금 마시면 쓰러지던 사람이 술고래가 됐다.

유족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라는 말을 가끔 했다”고 전했다.

숨지기 이틀 전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검정고무신>은 내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기재돼, 저작권 소송이 이 작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작가 유족에 따르면 <검정고무신> 사업권을 가진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은 2019년 6월 이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 등을 상대로 2억86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형설앤 대표 장모씨는 2007~2010년 이씨 형제를 포함한 <검정고무신> 원작자들과 5차례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에는 ‘모든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을 장씨에게 양도한다’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이 작가가 만화 속 캐릭터를 개인 창작·출판 활동에 활용하자 형설앤 측은 고소에 나섰다. 작가의 모친이 운영하는 체험농장에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을 틀었다는 게 이유였다.

유족은 장씨와 계약을 체결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검정고무신> 관련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정산됐는지 투명하게 전달받지 못했다. 유족 측은 출판사가 이 작가에게 정산한 총액이 10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2019년 6월 시작된 법적 분쟁은 아직 1심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검정고무신> 캐릭터로 사업은커녕 창작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찾아왔었다. 신인이 참가하는 만화 공모전에 응모해 겨우 생계를 꾸리는 실정이었다.

형설앤은 지난해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형설앤 측은 “정당한 법적 계약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공동 저작자로서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으로 거둔 부당 이익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이다. 사업수익은 계약된 지분율에 따라 분기마다 지급하고 있다. 수익 내역도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화책 <구름빵>을 만든 백희나 작가도 비슷한 경우다. 백 작가는 2004년 출간한 첫 창작 그림책 <구름빵>으로 2005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이 책은 10여개국에 번역 출간됐고 국내서만 45만부가 판매됐다.

원작의 어린이 뮤지컬이 나왔으며, 2010년 KBS에선 78부작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됐다. 2020년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소송 중 받은 ‘큰 상’
“패소해 후배들에 미안”

이 정도라면 백 작가는 <구름빵>으로 큰돈을 벌었어야 했다. 그러나 백 작가 역시 저작권 불공정 거래로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다. 당시 논란은 백 작가가 2003년 출판사 한솔교육과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매절계약’을 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백 작가는 “(출판사가)내 승인 없이 지적재산권을 썼다”며 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한솔교육과 자회사인 한솔수북에 1억원, 뮤지컬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디피에스에 1억원이었다.

이후 백 작가는 2019년 1월 1심, 2020년 2월 2심서 연이어 패소했다. 법원은 당시 계약에 따라 저작권과 캐릭터까지 모두 출판사 측에 양도된 것으로 판단했다. 백 작가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 기각 결정으로 최종 패소했다.

백 작가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출판사와 계약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그는 “처음에 <구름빵>은 잡지에 들어가는 시리즈 중 하나였다. 출판사 한솔교육에서 제시한 계약서를 보고 뭔지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평성 문제 때문에 다른 작가들과 똑같은 계약서에 사인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구름빵> 단행본으로 나올 때는 당연히 출판사에서 ‘믿고 하라’고 해서 믿고 기다렸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주지 않았다”며 “문제가 되니 돈을 돌려주겠다고 언론에 공표하고 기다렸는데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작가 입장에서 제일 속상한 건 의도를 갖고 만든 게 있는데 다른 방향으로 변형이 되어간다. 고양이 남매로 설정한 이유도 아이들에게 성 정체성에 대해 고정관념을 주고 싶지 않아서 설정한 것”이라며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저의 의도와 달라졌다”며 “후배 작가들에게 미안하다. 여기까지밖에 못한 것에 대해. 길을 잘 닦아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백 작가나 이 작가처럼 작가들은 잘못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저작권 문제에 대해 모호하게 규정된 부분이 많은 탓이다. 회사는 저작권 계약기간이 끝나도 작가가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불공정한 조항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출판사나 콘텐츠 제작사의 약관에 저작권, 2차 저작권에 관한 불공정 조항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감시

한 위원장은 이 작가가 극단적 선택 전,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후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콘텐츠 분야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거래 구조와 불공정 관행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연예 기획사의 불공정 계약 강요 등을 중점적으로 감시할 예정이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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