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개편’ 명지대 파문 풀스토리

2023.02.28 06:00:00 호수 1416호

잘못은 재단이 희생은 학생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파산 위기를 넘기고 한숨 돌린 명지대학교. 회생 절차에 매진하는 가운데 또 다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학교가 일부 순수학문 폐과 계획을 담은 학사구조 개편안을 교육부에 제출한 탓이다. 해당 학과 구성원은 물론, 교내 여론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재단이 초래한 재정 위기를 애먼 교내 구성원의 희생으로 극복하는 모순적 상황. 한술 더 떠 ‘희생 방식’마저 강제하려는 태도에 ‘희생양’들은 뿔이 났다.



“철학과 없애면 그게 종합대학인가요?” 이달 초 <일요시사>와 만난 한 명지대학교 타 과생은 이같이 일갈했다. 원론적인 반문에서 시작된 작심 비판은 재단(명지학원)과 학교의 구체적 실책에 관한 지적으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재단이 자초한 재정 위기와 학교의 비민주적 여론 수렴 과정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회생안
통폐합

명지대학교는 지난해부터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명지전문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명지대 일부 학과도 통폐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는 모두 학교법인 명지학원에서 운영 중이다. 여기에 재단이 함께 운영 중인 명지초·중·고까지 합치면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재단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는 등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후 전임 이사장의 무리한 부동산 개발, 재단 사유화 시도 등으로 악재가 누적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재단이 떠안은 부채액은 2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자에게 파산·회생 신청을 당하면서 재단 존속 여부가 잠시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해 법원과 교육부가 재단 측 회생안을 받아들이면서 파산 위기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당시 재단은 회생안에서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일부 부채를 메우겠다고 밝혔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은 본격적인 회생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필수 밑 작업인 셈이다.

교내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와 컨설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전공 경쟁력·학생 수요 등을 기준 삼아 적극적인 학사구조 개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제시한 통폐합안 초안에서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바둑학과 등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부분 순수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다.

특히 통추위는 철학과의 폐과 추진 사유를 “자퇴자가 많고 외국인 유학생 유입이 적어 등록금 창출 기여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철학과는 반발했지만, 결국 통추위는 철학과 등의 폐과 계획이 담긴 개편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2월28일 교육부에 제출됐다.

순수학문 위주 일부 학과 폐지 예고
교내 반발에도 강행 시사…불통 비판

지난달 철학과 교수진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통추위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교수진은 입장문에서 “철학과 교수의 연구 실적과 학생의 취업률은 비교 대상인 서울시 내 소재 대학 중 중간 정도를 차지했다. 명지대학교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인문대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추위가 철학과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학과 실적 지표만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교적 정원이 적은 철학과는 몇 명만 결원이 생겨도 그 비율이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자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지적하기 이전에 이 같은 맥락을 참작해야 한다”며 “그런데 다른 긍정적 지표들은 외면한 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지표를 근거로 드니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내 일각에서는 “통추위가 폐과 대상을 입맛대로 정해두고 자료를 짜맞춘 것 같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교수진은 통추위 결정이 상업주의적 판단에 매몰됐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입장문에 “통추위와 학교의 구조조정안은 ‘순수학문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하고 응용학문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전체 구상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상업주의적”이라며 “철학도 충분히 응용적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학문적 성격과 사회적 효용에 무지한 통추위와 대학은 철학과를 인문캠퍼스 25개 학과 중 유일하게 쓸모없는 학과로 낙인찍어 폐지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다른 교내 구성원들도 이 같은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폐과 등 학사 구조개편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통합 사안과 개편 사안 자체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교직원·학생
집단 반발 중

교내 5개 조직(인문·자연총학생회, 인문·자연교수협의회, 대학노조 명지대지부)은 지난해 11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개편안이 부실하게 작성된 점 ▲구성원과의 협의가 미흡했던 점 ▲개편안이 통합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점 ▲폐과 및 폐과에 준하는 개편안은 교육부 필수 요구조건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통합안 재작성’을 촉구했다.

대학 내 최고 의결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지난해 12월16일 표결에서 통추위의 학사구조 조정안을 부결했다. 총장 요청으로 재심의가 이뤄진 같은 달 29일에도 심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학교 측이 전체 구성원에게 ‘통합’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 80%가 훌쩍 넘는 동의율이 나왔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에 통추위 및 학교 측 관계자는 대학평의원회 측에 “지금까지 교육부에 통폐합을 신청한 학교 중 평의원회 동의를 지참하지 않은 선례가 없었으므로, 통합을 위해서라도 (통합안 및 개편안을) 추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일부 학과의 폐과 여부를 재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들은 일부 학과의 폐과 대신 개편안을 제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학과는 응용통계학과, 물리학과는 융합에너지공학과로 개편될 계획이다. 다만 철학과와 바둑학과는 여전히 폐과 대상이다.

대학 평의원회는 이달 초 관련 안건을 재논의했다. 평의원회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통합안에 우선 동의하되, 조건부 동의 의사를 강조하기 위해 별지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별지에는 ‘향후 정원 증원 가능성이 발생했을 때 철학과와 바둑학과의 폐과 철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를 권고’ ‘통폐합 추진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원의 의견 수렴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작금의 사태 
구조적 모순

<일요시사>는 학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통추위 고위관계자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송부했다. 해당 관계자는 답신에서 “교육부 심의가 진행 중인 사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구성원과 간담회·공청회를 진행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최선의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용이 수정되고 발전적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학사 조정에 얽힌 지표 선택 논란에 대해서는 “대학의 학사구조 조정은 대학서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라며 “이를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경쟁력 지표 등은 기밀사항 중 하나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내 구성원들은 현 사태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학교가 통폐합을 사실상 강제로 진행하게 된 데에는 재단의 책임이 큰데, 이로 발생한 피해는 애꿎은 구성원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성원들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애교심을 가지고 희생을 결심했는데, 재단과 학교가 구성원들을 최대한 보호하기는커녕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재단을 둘러싼 빚더미 대부분은 유모 전 이사장 때 만들어졌다.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명지건설 회장이었던 유 전 이사장은 무리한 사업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명지건설을 살리기 위해 재단을 끌어들였다. 재단의 알짜 자산을 명지건설이 가져가는 대가로 재단에 명지건설의 적자 사업을 떠넘겼다.

명지대 관련 공사는 명지건설이 모두 맡는, 일감 몰아주기가 발각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 전 이사장은 임금 돌려막기, 기금 횡령 등을 일삼다가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2012년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돼 2018년 출소했다. 채권자가 신청한 파산·회생 절차 또한 유 전 이사장 재임 당시 재단서 진 빚에 근거한 것이다.

현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유 전 이사장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도 필수 아니라는데…폐과 추진, 왜?
파산 초래한 재단, 구성원 희생 강요 논란 

하지만 유 전 이사장의 친·인척은 여전히 재단과 학교 요직을 맡고 있다. 2020년 교육부는 부실 재정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포함한 재단 이사 10명과 감사 2명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선이사 파견을 추진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가처분신청과 본안소송 등을 통해 이를 저지했다.

재단의 실책은 계속됐다. 얼마 전 재산을 큰 폭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그르치며 입길에 올랐다(1364호 명지대 위험한 땅거래 내막). 2020년 재단은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교내 유휴용지 매각에 나섰다. 인문캠퍼스 인근 부지 일부(면적 172㎡)와 자연캠퍼스 16개 필지(면적 36만5273㎡)가 그 대상이었다. 

당시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대상 부지들은 교육부의 매각 허가가 있어야만 처분할 수 있었다. 

교육부는 재정이 어려운 재단 측 사정을 고려해 절세 및 교육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유휴용지 처분을 먼저 권유했다. 하지만 2021년 재단은 교육부령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매각 계약을 진행하다가 이를 교육부 정기 감사에서 발각당했다. 

교육 재산 소유권은 매각대금을 모두 받은 뒤 넘겨줘야 하는데, 당시 재단은 계약금만 받은 채로 부지 소유권을 매수자에게 넘겨줬다. 이는 일반 개발사업 중 흔히 볼 수 있는 매각 방식이다. 미리 넘겨받은 소유권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대출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선 엄연히 불법이었다.

결국 교육부는 재단에 연말까지 매각대금을 회수할 것을 지시했지만, 재단은 잔금 확보에 실패했다. 교육부가 매각 허가를 취소하면서 재단의 재산 처분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2월 명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매각 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지만,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시적으로 답보상태에 놓였어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재단은 지난해 5월부로 해당 부지에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가처분신청을 걸어둔 상태다.

좌절된 매매계약 규모는 약 43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진행만 됐다면 명지대 어반캠퍼스 준공비용(약 500억원 추산) 대부분이나 채무 상당 비율을 메울 수 있었을 만한 액수다.

계속될
책임론

지난해 들어 교육부의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당 부지를 처분할 길도 재차 열린 것으로 보인다. 채무 변제 자체가 쉬워지면서 “한숨 덜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교내 여론이 꾸준히 재단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만큼, 관련 논란에 대한 비판과 ‘철학과 구명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철학과 관계자는 <일요시사> 측에 “학교 측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과 구조적 모순을 끝까지 지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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